김란기의 서울 골목길 탐방
김환기 화가가 살던 집은 감나무만 남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실핏줄 골목 (상)
등록 : 2016-12-01 16:02 수정 : 2016-12-02 10:19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성북동 일대.
김용준이 김환기 김향안 부부에게 내준 '노시산방'이 있던 집터. '성북동 역사문화 현황'(성북구청)에 나타난 화가 김용준 집터(김환기 집터)로 표시된 위치의 집이다. 감나무는 마당에 아직도 서 있다.
김용준이 그린 '수향산방 전경'(1944. 환기미술관 소장). (최병렬.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 인용)
김환기는 부잣집 지주의 장남으로 목포 근해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1937년), 훗날 자기 집을 내준 김용준은 그를 알아봤고 언론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변동림은 일본의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이상이 저세상으로 가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관부연락선을 타고 있었다. 건축가이자 천재 시인인 이상의 마지막을 지켜본 변동림이 딸 둘을 가진 이혼남 김환기와 부부로 연을 맺은 이야기는, 부모의 극구 반대에 저항해 가출과 함께 이상과 극적인 결혼을 한 만큼이나 큰 사건이었다. 문득 이상이 도쿄로 가서 폐인이 되기까지 기거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중요하지도 않는데 궁금하다. 변동림이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이상의 죽음을 지켜볼 때 김병기란 사람도 옆에 있었다. 수년 전 나는 이상이 기거했다는 신주쿠의 김병기 하숙집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는 ‘센베이’ 과자로 유명한 일본의 나카무라야 본점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 김병기가 기거를 했고 이상은 거기에 얹혀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김병기는 5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가 살았는데 후에 변동림(김향안)과 김환기의 뉴욕 생활을 지켜봤다고 했다. 사람의 연이란 이렇게도 얽힌다. 그나저나 변동림과 김환기가 어떻게 만나 평생 부부로 연을 맺었을까? 노리다케 가쓰오라는 일본인 잡지 편집자(후에 시인)가 있었다. 노리다케는 ‘이상’의 부인이었던 변동림을 끔찍이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변동림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노리다케는 잔머리를 굴려, 변동림을 꼬셔 집으로 오게 할 목적으로 김환기까지 불러 두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독자들은 짐작했겠지만, 김환기의 열정적인 눈빛이 변동림에 가서 꽂히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잔머리 굴리지 말고 좋아하는 여성이 있으면 늦지 않게 고백을 하든지, 치맛자락을 붙잡든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계속)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