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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데 자격증 필요한 건 아니죠”

‘침구 인술로 아름다운 황혼’ 책 펴낸 재야 침구사 정일교씨

등록 : 2023-07-20 15:00 수정 : 2023-07-20 15:02
정일교씨가 지난 7일 종로구 권농동 허임기념사업회에서 미얀마에서 침·뜸 봉사활동을 한 내용이 담긴 자신의 책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십여 가지 직업 전전, 역경 헤쳐와

암으로 아내 보내고 봉사 삶 결심

2013년부터 미얀마서 침술 봉사

“주한 미얀마 대사가 고맙다고 해”

“감히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주위에서 도와줘 책을 내게 됐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미얀마에서 침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재야 침구사’ 정일교씨가 미얀마에서 침술 봉사활동을 한 내용을 담은 책 <침구 인술로 아름다운 황혼>(허임기념사업회)을 펴냈다. 지난 6월19일 종로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올해 82살인 정씨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태어나 구두닦이, 아이스크림 장사, 제빵사, 벌목꾼, 광부 등으로 일하다, ‘파독 광부’로 독일에 다녀왔다. 이후 생선도매상, 중동 건설노동자, 화물운송업자, 토목회사 사장 등으로 인생 역정을 헤쳐왔다. 지난 7일 종로구 권농동 허임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씨는 “미얀마 대사관에 책을 전달하고 미얀마 대사도 직접 접견했다”며 “한국의 침·뜸을 높이 평가하고, 미얀마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힘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씨는 64살에 침술을 배워 미얀마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2004년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실의에 빠져 우울증으로 6개월 동안 약을 먹었어요. 좀 나아지니 사회에 좋은 일 하고 가야겠다고 마음이 바뀌더군요.” 정씨는 2005년 총신대 평생교육원에서 침·뜸 교육을 받았다. “목사, 전도사들과 함께 1년6개월 정도 침과 뜸을 배웠어요.” 정씨는 이후에도 독학으로 침·뜸 공부를 계속했다.


정씨는 2013년, 그의 나이 72살 때 한국을 떠나 미얀마 남부 오지 타닌타이주 피지만다이에서 농장 개발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침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인연이 닿아 양곤 인근 탈린시 타바와 명상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은 연고가 없는 환자 800여 명이 사는 곳으로 중풍, 전신 마비, 치매, 에이즈, 피부병 등을 앓는 사람이 많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환자들이 침 몇 대만 맞으면 나아질 것 같았어요. 그냥 멈춰서 마음 가는 대로 침을 놓았습니다.” 정씨는 “침술이 효과를 보이자 환자가 줄을 섰다”고 했다. “주지 스님이 가능하면 우리 센터에 와서 환자를 보살펴달라더군요.” 정씨는 이때부터 타바와 명상센터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로 침술 봉사활동을 펼쳤다.

정씨는 하루 평균 50명 이상 환자를 치료하는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타바와 명상센터에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2016년 9월, 하반신이 마비된 14살 소녀를 아버지가 업고 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병원에 6개월을 있었는데, 차도가 없어 데리고 왔다고 해요. 2개월 정도 치료하니 보행기를 짚고 다닐 정도가 됐죠. 이듬해 3월에는 보행기 없이 걷게 됐습니다.” 정씨는 “의료 환경이 열악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침을 맞고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허임기념사업회 손중양 이사장이 미얀마 봉사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높은 평가를 해줬어요.” 정씨는 현재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 국제침구협력단 미얀마 본부장이다. 정씨는 2013년부터 허임기념사업회와 인연을 맺었는데, 세미나 등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허임기념사업회는 2017년 2월 국외에서 활동하는 침구인들과 교류 협력을 위해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침·뜸 한류 세미나’를 개최했다. 정씨는 이 자리에서 미얀마에서 활동한 침구 봉사 내용을 소개했다. 그 뒤 침구인들이 정씨의 침법에 큰 관심을 보여 ‘중증 환자의 치료 사례와 침법’ 특별 세미나도 열었다.

정씨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에 돌아왔다가 2022년 6월 다시 미얀마에 갔다. 그는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침구 교육도 활발하게 한다고 했다. “간호보조원과 전통의사들에게 침을 가르치고 있어요. 6개월 과정 교육을 받은 간호보조원 6명이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정씨는 “한국 침·뜸으로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교육과 봉사체계가 미얀마에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국내 침구사는 일제강점기에 면허제도가 있었으나, 1953년 한의사 제도가 신설된 이후 1962년 의료법 개정으로 침구사 자격이 폐지됐다. 이후에는 의료법 개정 이전 침구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동안 재야 침구사들은 침구사가 행하는 침·뜸을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2010년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 법’(의료법 제27조1항)이 합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났다. 한의사가 아닌 정씨가 국내에서 침·뜸 행위를 한다면 불법이다. 침구사들은 다시 헌법소원과 침구사 제도를 부활해달라는 요청을 계속하고 있다. 정씨는 “침구사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경로당에서 무료 진료 봉사를 해보고 싶다”고 바랐다.

“내 나이 80을 넘겼습니다. 뒷방 늙은이라 하겠지만, 백세 시대 아닙니까. 좀 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정씨는 “세상을 바꾸는 일은 반드시 많이 배운 사람이나 특별한 자격증이 있는 사람의 몫은 아니”라며 “나 혼자만 하는 봉사가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봉사활동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