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 마음속 ‘억만겁 시간 간절한 기원’ 느껴져

서울의 작은 박물관 ⑱ 은평구 진관동 샤머니즘 박물관

등록 : 2019-12-05 14:46 수정 : 2019-12-09 15:18
양종승 관장, 1970년대부터 유물 수집

박물관 건물도 ‘금성대왕’ 모시는 곳

무속용 도구·부적·창검·제기 빼곡

악귀 침범 막으려는 ‘조상 희망’ 되새겨

예로부터 임금에서 하층민까지 하늘과 땅과 바다의 신에게 올렸던 기원의 문화가 민속으로 남아 지금도 전해진다. 신과 소통한다는 영매와 무당, 그들을 통해 사람들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기원의 문화, 민속신앙의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샤머니즘 박물관이 은평구 진관동 금성당에 있다.


샤머니즘 박물관 금성당에 자리 잡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믿는 어떤 대상 앞에 간절한 소원을 비는 사람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왕조국가의 지존인 임금도 흉년이 들면 대지의 신에게,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의 신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정화수 한 사발 앞에서 가족의 안녕을 빌고 또 빌었다. 신과 소통하는 영매라고 알려진 무당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이 신에게 닿기를 기원했고, 그 기원이 신으로부터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기원의 의례가 민속으로 남아 전승되는 그 길목에서 하나의 방점을 찍은 곳이 샤머니즘 박물관이다.

금성당. 정면에 있는 공간이 서울 무속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이다.

은평구 진관동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기와집 한 채, 샤머니즘 박물관이 자리 잡은 금성당이다. 2013년 성북구 정릉동에서 문을 연 샤머니즘 박물관은 2016년 금성당으로 옮겨 터를 다졌다. 양종승 관장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집한 무속 유물 2만여 점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금성당을 비롯해 옛 한옥의 작은 방과 대청, 부엌 등에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신들을 그린 무신도와 점을 칠 때 쓰이는 도구, 부적, 악기, 창검, 제기, 종이로 만든 꽃과 같은 무속 관련 유물이 빼곡하다.

금성당 자체도 무속신앙을 상징하는 곳이다. 금성당은 전라남도 나주 금성산의 금성대왕과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 그리고 여러 신을 모신 신당이다. 조선시대에는 진관동, 망원동, 월계동 등 세 곳에 금성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진관동 금성당만 남았다.

문화재청은 금성당을 이렇게 설명한다. ‘1880년대 초반 이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전통적 당집 양식으로서, 19세기 서울·경기 지역 민간 무속신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민속 문화재다.’


황해도와 제주도의 무속

1960년대부터 무속에 관심이 많았던 양종승 관장이 70년대 들어서면서 무속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발걸음은 황해도 무속 유물로 향했다. 그렇게 수집한 황해도 무속 유물들이 한 공간에 전시됐다. 무신도와 함께 방울, 부채, 신복 등으로 신당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황해도 무속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황해도 무속 의례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신령을 대접하여 액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의 대동단결과 안녕을 기원하는 만구대탁굿이다. 이 굿은 보통굿의 두세배 많은 45거리로 짜였으며 쌍장구(암장구 수장구), 쌍징(소징 대징), 쌍바라(소바라 대바라), 태평소, 쌍피리, 해금, 대금이 동원되고 3일, 5일, 7일, 15일에 걸쳐 펼쳐진다.

제주의 무속을 볼 수 있는 작은 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주 ‘내왓당’ 신당의 10폭 병풍 무신도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40호로 지정된 원본은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원래는 12폭이었는데 현재는 남신상 6폭과 여신상 4폭 등 10폭만 남았다. 제주 내왓당은 고종 19년(1882)에 헐려 없어졌다.

10폭 병풍 그림 하나하나에 꽂혔던 눈길을 병풍 앞에 놓인 작은 석상으로 옮긴다. 작지만 강한, 강하지만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 석상은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워주는, 아기를 점지해준다고 알려진 삼신할머니다.

삼신할머니상. 제주 무속 전시실에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인 ‘뱀돌’이 눈에 들어온다. 돌 위에 또 하나의 돌이 올려져 있고 그 옆에 작은 절구같이 생긴 돌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뱀신을 섬겼다고 한다. 뱀신은 삶의 터전이자 근원인 땅, 그곳에서 움트는 생명과 풍요를 상징했다고 한다. 오래전 제주 여인들은 시집갈 때 뱀돌을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서울의 무속, 그리고 금성대왕

샤머니즘 박물관 대전 충청 무속 전시실.

제주의 무속을 살펴볼 수 있는 방 옆에 대전·충청 지역의 무속을 살펴볼 수 있는 방이 있다. 천장에 매달린 종이로 만든 조형물이 팔문금쇄진이다. 한쪽 벽에 걸린 발 모양의 조형물에는 해와 달과 별을 상징하는 빨강, 노랑, 초록색 문양과 24명의 병사, 부적 문양이 보인다. 이 장치들은 악귀를 제압하거나,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인 것 없다는 생각에 전시실에 놓인 물건 하나하나에 눈길을 준다. 방구석에 놓인 두 개의 제웅은 또 무엇을 기원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일까?

망자 혼례굿에 쓰이던 허재비.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물건인 제웅의 이름은 ‘허재비’다. 망자의 ‘혼례굿’에 쓰이는 도구다. ‘허재비’를 통해 우리 조상의 망자에 대한 예우를 엿본다. 산 사람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듯, 죽은 사람도 산 사람과 같이 여겼다.

서울 지역의 무속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은 금성당 대청에 꾸며졌다. 벽 정면에 금성대왕 영정이 보인다(원본은 사라지고 없다).

고려시대 왕실에서 금성대왕을 모시는 제례를 매년 지냈으며, 조선시대에 금성신앙이 서울로 들어와 금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샤머니즘 박물관 서울 무속 전시실. 사진 가운데 부분에 금성대왕 영정이 있다.

금성당의 구조는 본채와 안채로 구성됐다. 본채는 금성대왕 등 여러 신을 모시고 의례를 베푸는 신당이다. 본채 앞에 행랑채가 있다. 본채 동쪽에는 ㄱ자 모양의 안채가 있다. 금성당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58호다. 매년 봄과 가을에 금성당에서 금성당제를 올린다.

금성당 대청 벽에 금성대왕 영정과 함께 여러 무신도가 걸려 있다. 제기와 향, 제물, 삼지창 등 대청에 가득한 전시품을 눈여겨본다. 오래전부터 누대에 걸쳐 내려오는 많은 사람의 마음에 맺혔던 간절한 기원이 서려 있는 것 같다. 그 느낌에 무구 하나하나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