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보공개심의회를 벤치마킹하라

기고│김지미 변호사 서울시 제1정보공개심의회 위원장

등록 : 2020-01-09 14:43

변호사로서 법원이나 경찰, 검찰에 제출할 서면은 물론이고 토론회 등 이런저런 외부 활동에서 요청받은 원고를 쓸 일이 많다. 글 쓰는 일이 주업임에도 글재주가 없다보니 내가 쓴 서면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할 때나 여럿이 공동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작업물을 공유할 때, 토론회 발제문이나 토론문이 책자로 공개될 때가 되면 난처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글을 공개하기 싫어하는 심리의 근저에는 글을 잘 못 써서 부끄럽다는 마음이 제일 크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지적받고 싶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 간섭받기 싫다는 생각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발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꺼려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에 간섭받고 지적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 공공기관에서 문서 공개를 꺼리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직무상 작성해 보유, 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이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민주공화국에서 공공기관이 행사하는 모든 행위는 국민이 위임한 권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공공기관의 권한 행사를 감시하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생산하고 보유한 정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도 이러한 취지 아래 정보 공개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비공개할 수 있는 8가지의 예외 사유를 들어 안보나 외교관계 등의 국가적 이익, 다른 기본권과의 조화 등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정보 공개 청구를 당하는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정보를 공개하면 이해관계 있는 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언론에 보도되어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되니 정보 공개가 반가울 리가 없다. 아직도 많은 공공기관의 원문 공개율이 낮고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한 비공개 결정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정보공개법에서 정보 공개 여부를 심의하는 정보공개심의회의 절반을 외부 전문가로 위촉하도록 한 것은 공공기관이 아닌 시민의 관점에서 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공공기관 중 정보 공개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추어진 기관은 서울시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첫 취임 당시 핵심 공약으로 투명한 시정을 위한 ‘누드 서울’을 선포하고 정보공개정책과를 신설하여 정보소통광장(opengov.seoul.go.kr)을 통해 선제적으로 정보 공개를 실행했다. 서면 심의로 진행되던 정보공개심의회도 2개로 늘려 대면 심의를 원칙으로 한 실질적인 심의가 가능하게 하였다. 7명의 위원 중 외부 위원이 5명으로 철저히 시민의 관점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한 점도 높이 평가할 지점이다. 정보공개심의회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거나 구성돼 있더라도 대부분의 심의를 서면으로 하는 현실에서 보면 정보 공개를 위한 서울시의 재정과 인력 투여는 혁신이라고 부를 만하다.

4년 가까이 서울시 정보공개심의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보 공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도 많이 변했다. 한 달에 1회 정도 심의회를 개최했으니 내가 속해 있는 제1심의회에서 그동안 심의한 안건만 해도 100건이 넘을 것이다. 주무 부처 담당자의 대면 설명과 다른 위원들의 질의를 듣는 과정에서 투명한 시정의 필요성이나 국민의 알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예산이나 인력을 고려하면 다른 공공기관들이 당장 서울시처럼 정보 공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정보공개심의회만큼은 서울시처럼 시민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심의가 가능하도록 바꾸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투명하게 공개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적받고 간섭받으면 당장은 아프겠지만 그만큼의 발전이 있고 부패가 스며들 틈도 사라질 것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