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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 이후, 독거노인 살리는 ‘대체식’

등록 : 2020-03-12 14:42 수정 : 2020-03-12 15:03
코로나19 사태로 복지관 등 무료 ‘경로식당’ 운영 중단된 지 한 달

송파·성동·강동·광진구 등 취약계층 집 찾아가 식량 꾸러미 전달

지난 5일 송파구 풍납동 반지하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전영자씨 집에 구립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의 신성민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햇반, 국, 잡채, 육개장 등이 담긴 대체식 꾸러미를 전달하고 있다. 전씨는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이 2월 초 문을 닫기 전까지 매일복지관 경로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친구들과 소일하며 지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송파구 풍납1동 낡은 연립주택의 반지하에서 홀로 사는 전영자(79)씨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구립 복지관에 다니는 게 큰 낙이었다. 걸어서 20~30분 거리인 풍납종합사회복지관에 오전 10시쯤 들러 “점심때 경로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웃는 일”은 전씨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2월 초 전씨의 일과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감염 사태 이후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해 송파구 관내 복지관 10곳의 운영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복지관이 문을 닫은 이후 가끔 주변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을 제외하곤 온종일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은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무료한 일상을 달래는 게 일과이다. 그는 가장 힘든 게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복지관에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팔순에 가까운 고령인데다 심장병과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전씨에게 코로나19 감염은 치명적일 수 있지만 코로나보다는 2년 넘게 지속해오던 일상을 빼앗긴 게 더 무서운 것처럼 보였다.

식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복지관 직원들이 직접 집까지 배달해주는 ‘대체식’으로 해결한다. 복지관의 고현옥 과장과 신성민 사회복지사가 5일 오후 1시 반께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비좁은 전씨의 반지하방을 찾았다. 이틀분 햇반과 밑반찬이 들어 있는 대체식 꾸러미를 받아든 전씨는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전씨는 동주민센터에서 제공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행을 맞았다.

“복지관에서 밥 먹을 때도 늘 고맙다고 말해요. 이 많은 식사를 준비하고 배달하느라 얼마나 힘들겠어요. 고맙습니다~. 또 직접 만나지 않는 날에는 복지관에서 안부 전화까지 해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대체식은 전씨와 같은 취약계층에게 생명선인 셈이다.

대체식 배달일인 5일 풍납종합사회복지관 내 무료식당인 ‘경로식당’ 안. 오전 9시부터 조리담당 6명과 포장·배달담당 11명 등 직원들이 총동원돼 평소 경로식당에서 식사하는 65명을 포함해 118가구분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체식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꾸러미 내용은 다양했다. 된장국과 잡채 등 직원들이 손수 조리한 요리를 비롯해 햇반, 육개장과 참치통조림 등 간편식 등 9가지 식품으로 구성돼 있다.


고현옥 풍납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구청에서 지원하는 1식 3500원의 예산 내에서 영양을 고려해 가공식품뿐 아니라 조리식품도 포함하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 전에는 조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했으나 사태 이후에는 전 직원이 나서서 조를 짜서 조리도 하고 포장과 배달까지 하는 등 총동원돼 일한다”고 말했다. 평소보다 업무가 늘어나 힘들긴 해도 어르신들이 너무 고맙다고 하니 그걸로 족하다는 고 과장은 그러나 배달용 차량이 두 대뿐이어서 제시간에 배달하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송파구 풍납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난 5일 신종 코로나(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사태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에게 전달하기 위해 준비한 대체식 물품. 정용일 기자

송파구에서는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을 포함해 경로식당 6곳(가락, 마천, 삼전, 송파종합, 잠실, 풍납)에서 식사를 해결하던 저소득층 어르신 415명을 대상으로 주 1~2회 대체식(즉석밥, 반찬)을 배달한다. 또한 한부모·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서는 지역아동센터 19곳을 통해 546명에게 개학 전까지 주 2회 대체식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 15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밑반찬 배달은 주 1회에서 주 2회로 확대한다.

앞서 구는 통합사례관리사를 활용해 2월24일부터 27일까지 저소득 위기가구 100여 가구의 필요를 파악한 뒤 50가구에 대해 생필품(4인 가구에 50만원 한도 물품)과 위생용품(마스크 328장, 세정제 50개)을 지원했다. 또 6일까지 27개 동주민센터의 복지플래너 등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인력 150여 명을 통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가구 등 취약계층 1만3500가구를 전수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돌봄취약가구에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일 지적장애인인 최미숙(가명·32·오른쪽)씨가 송파구청의 통합관리사 김서원씨와 함께 송파구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최씨는 이날 메모지에다 장보기 물품을 꼼꼼히 적어와 29가지 식품 25만4910원치의 장을 봤다. 정용일 기자

지적장애인(3급) 1인가구 여성인 최미숙(가명·32)씨는 송파구가 관리하는 저소득 위기가구다. 구의 위기가구 조사 때 생필품 지원을 요청한 최씨는 5일 오전 풍납동의 한 마트에서 송파구 복지정책과 김서원 통합사례관리사와 함께 카트를 끌고 장을 봤다. 2월 장을 본 뒤 한 달 만이라는 최씨는 메모지에 구매 목록을 잔뜩 적어 왔다. 이날 쇠고기, 돼지고기 등 29가지 품목 25만4910원어치 한 달분 정도 식료품을 구매한 최씨의 얼굴에는 묘한 안도감이 퍼졌다. 장보기 비용은 구청의 사례관리 비용으로 처리됐다.


어르신들 “집에 갇혀 복지관 친구 못 만나는 게 더 힘들어”

송파구, 식사 가정 배달하며 안부 물어

장애인과 어린이도 특별 관리 시행 중

“외부와 단절 안 되도록 연계 역할” 자임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집 안에만 있었어요. 돈도 부족하고….” 어눌하게 말을 이어간 최씨는 집 안에만 있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에는 열이 나서 혹시 하는 마음에 코로나 확진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 텔레비전 보는 게 유일한 낙인 그는 텔레비전이 고장 났는데 비용이 비싸서 아직 수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최씨는 배우자와 이혼한 뒤 세 살짜리 아들을 어떻게 하든 키우려 했으나 우울증과 수면 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최근 아들을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 맡겼다.

기초생활 수급자이자 장애인 등록자인 최씨는 얼마간의 생계비와 주거비 보조금에 의존해 생활하는 형편이어서 수중에 여윳돈이 없다고 옆에 있던 김 관리사가 말을 거들었다.

김 관리사는 “사회복지사들도 코로나 사태 이후 직접 접촉은 60~70% 정도 줄어든 것 같다”며 “대신 전화 모니터링을 통해 이상 여부 확인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관리사는 “미숙씨가 희망하는 장보기를 해주니 본인도 좋아해서 보람을 느낀다”고 하자 인터뷰 내내 무표정하던 최씨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차영미 송파구 희망복지팀장은 “코로나19 이후 저소득 취약계층에 복지 서비스 중단은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며 “사례 관리 대상에 대한 식료품·마스크 지원이나 경로식당 이용 어르신들에 대한 대체식 전달은 경제적 부담 완화의 목적도 있지만, 안부를 확인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외부와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연계 역할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파구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은 2월 초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이후 이곳 경로식당을 이용하던 취약계층을 위해 매주 월, 목요일 대체식을 준비해 손수 집까지 배달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서울시는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기초생활 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피해가 커지자 대책 마련을 요청하는 공문을 서울 25개 자치구에 보냈다.

성동구는 2월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지역 내 홀몸어르신과 중·장년 1인 가구 등 건강 취약계층 총 1만968명의 안부 확인을 마쳤다.

노인복지관 4곳의 무료급식소 운영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에게는 햇반, 국, 밑반찬 등으로 구성된 대체식 4~5일분을 집으로 직접 배달하거나 원하는 이는 방문해 받아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향후 급식소의 영양사와 조리사가 직접 조리한 조리식 제공을 늘릴 예정이다.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에 대해선 현재 간편식이나 사회적기업에서 조리한 ‘행복도시락’ 304개를 매일 조리해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강동구도 무료급식이 중단돼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 어르신을 위해 즉석밥, 장조림, 조미김 등 가정간편식으로 구성된 대체식을 배달해 어르신의 식사와 건강을 챙기고 있다.

아울러 서울강동지역자활센터(센터장 임종훈)에서 운영 중인 자활근로 사업단 ‘맛조아 베이커리’는 경로식당을 이용하지 못하는 어르신 246명에게 빵 738개를 후원하기도 했다.

종로구는 쪽방 거주 주민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게 휴대용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지원하고 있다. 돈의동과 창신동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과 노숙인 등 500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예방수칙 안내문과 함께 휴대용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제공했다.

아울러 구는 주거 환경과 위생이 열악한 돈의동과 창신동 쪽방 지역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주 1회 이상 쪽방촌을 방역하고 있으며, 돈의동과 창신동 쪽방상담소는 매일 건물 내부를 방역하고, 상담소 방문 주민에게 감염병 예방수칙을 안내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재 쪽방상담소 내의 모든 주민 모임 프로그램은 중단했으나, 쪽방 주민의 보건 위생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세탁실, 샤워실, 화장실 등은 정상 운영하여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