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핀 인왕산 산수화, 봄에도 움츠린 세상 위로하고…

장태동의 한양도성 순성 ① 인왕산 구간

등록 : 2020-03-19 14:46
한양도성 북쪽 길 4㎞ 반나절 걸으니

기암괴석 바위절벽 이룬 산 기운차고

푸른 소나무 생명력은 희망으로 빛나

통쾌하게 트인 전경, 마음도 툭 열린 듯

격주로 연재하던 ‘서울의 작은 박물관’을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중단합니다. 그동안 조선의 수도 한양의 경계였던 한양도성 성곽 18.6㎞를 돌던 이른바 ‘순성놀이’를 네 번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한양도성 성곽을 잇는 인왕산, 백악산(북악산), 남산, 낙산 구간에 남아 있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고 1396년에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 18.6㎞의 한양도성 성곽을 완공했다. 한양도성은 세계에 남아 있는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514년) 도성 기능을 했다고 한다.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순성이라 했는데, 조선시대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해 질 녘까지 순성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중 인왕산 구간을 걸었다. 기암괴석 너럭바위 절벽이 이룬 산은 기운찼고, 그 산이 피워낸 봄꽃과 푸른 소나무의 생명력은 희망으로 빛났다.

무리지어 피어난 산수유꽃, 별처럼 총총한 생명의 기운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은 원래 돈의문 터에서 시작해서 경교장, 월암공원, 인왕산 순성 안내 쉼터, 인왕산 곡성, 범바위, 인왕산 정상,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창의문(자하문)까지 이어지는 4㎞ 구간이다.

원래 구간을 걷지 않고,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서 무악공원 산수유 군락지, 선바위를 지나 한양도성 성곽을 만나 범바위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이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산수유꽃 군락지와 선바위 때문이었다.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걷다보면 선바위와 국사당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 전에 무악공원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서 현 위치를 확인하고 무악배드민턴장 방향으로 간다. 중간에 만나는 이정표에서 인왕정 방향으로 걷는다. 인왕정으로 오르는 길에서 산수유 군락의 옆 풍경을 본다. 인왕정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데크 길로 걷는다. 가파른 경사의 바위 절벽이 산 그 자체다. 산수유꽃 군락이 점점 가까워진다.

인왕산 개나리꽃과 산수유꽃 군락. 산수유꽃이 지고 개나리꽃이 많이 남았다. 사진 오른쪽에 선바위가 보인다.

산수유꽃 군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른다. 내리막 계단 양쪽 옆에 산수유꽃이 피었다. 겨우내 긴 시간을 움츠렸던 새 생명의 기운이 꽃망울을 터뜨리던 그 순간의 폭발력은 얼마나 위대한 것일까. 살아 숨 쉬는, 꽃의 생동이 새봄이 와도 새 생명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안한다. 산수유 꽃밭이 ‘하늘 별밭’의 별들처럼 총총하다.

산수유꽃 군락지에서 흥에 취했다. 솟구치는 기운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걸었다. 산수유꽃 군락지에서 계단을 따라 다시 올라가서 원래 가던 방향으로 걷는다. 산수유꽃 전망대를 지나 선바위로 향한다.

인왕산 한양도성 순성 첫머리에서 만난 산수유꽃 군락지 하나만으로도 새봄 순성놀이는 충분하다 싶었지만, 이 길에 남아 있는 선바위에 얽힌 옛이야기를 놓칠 수 없었다.

선바위는 약 1억5천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형상의 거대한 바위다. 선바위는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점찍은 ‘왕기 서린 길지’이며, 조선의 문을 연 태조 이성계가 선바위 아래 인왕사에 들러 조선의 번창을 기원하기도 했다.

선바위 이야기와 성곽을 따라 걷는 사람들

인왕산에 있는 국사당.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이 있다. 원래 국사당은 남산에 있었다. 태조 이성계부터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 국사당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남산에 신궁을 지으면서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국사당은 중요민속자료 제28호, 선바위는 서울시 민속자료 제4호다.

선바위 뒤 너럭바위에 올라 선바위 뒷모습을 본다. 그 앞으로 한양도성 성곽이 길게 이어진다. 남산과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선바위.

선바위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에 선바위의 뒷모습이 처연하다. 한양의 도성 경계를 정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무학대사는 인왕사와 선바위를 도성 안에 넣으려고 했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려고 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뜻을 따랐다. 선바위는 지금도 수도승의 모습을 한 채 한양도성 성곽 밖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보고 있다.

선바위의 뒷모습을 보고 왔던 길로 돌아간다. 산수유전망대 이정표에서 한양도성, 인왕산 정상 방향으로 간다. 한양도성 성곽을 만났다. 지금까지는 성곽 밖이었고 이제 성곽 안쪽 길을 따라 인왕산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성곽을 왼쪽에 두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펄펄 뛰어다니는 청춘들, 뒷짐 지고 자신의 호흡에 맞게 천천히 걷는 사람들, 아이들 발걸음에 맞춰 걷는 부부, 강아지와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 주말 인왕산은 만원이다. 순성놀이가 현대에 더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가파른 계단을 다 올라서면 범바위다. 시야가 통쾌하게 트인다.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성곽 길도 보인다.

인왕산은 산 자체가 웅장하지는 않다. 다만 기암괴석과 너럭바위, 거대한 바위가 겹치고 깎인 채 드러났고, 땅에 뿌리를 박은 바위가 산비탈 벼랑을 이루어 공중에 뜬 것같이 보이니,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것 같은 형국이다.

그 풍경을 보고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인왕제색도>를 남겼다. 한양도성 순성 인왕산 구간을 걷는 사람들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풍경 속을 거니는 것이다.

범바위에서 사방으로 트인 풍경을 감상하며 쉬던 사람들이 지금 막 올라온 사람들에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가슴 통쾌한 풍경, 그 안에 담긴 한양의 모습을 상상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 두 다리와 두 팔을 써서 올라가야 하는 바위 구간이 나온다. 길 바로 옆이 허공인 벼랑길은 아니다. 쇠말뚝을 박고 밧줄을 이어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구간이 짧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오히려 이런 구간이 있어서 산길의 재미를 더한다. 가파른 바위 오르막길을 다 올라설 무렵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본 풍경에 의미가 담기는 것은 인왕산의 지맥이 어떻게 남산으로 이어지는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성곽 길과 범바위를 지난 산줄기가 도심으로 잦아들다가 남산을 만나 다시 솟구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인왕산이 곧 백호가 된다. 그 산맥이 돈의문·서소문·숭례문을 지나 다시 솟아 남산이 되어’라는 글이 나온다. 인왕산 백호의 기운이 남산으로 이어지는 형국을 말하는 것이다. 인왕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지맥 위에 세워진 궁궐이 경희궁이다.

인왕산 정상부 곳곳을 돌아다니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한다. 인왕산, 남산, 낙산, 백악산이 품은 옛 한양도성의 울타리를 가늠하기도 하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까지 꼼꼼하게 짚어본다. 인왕산 북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북한산 능선이 늠름하다.

바람이 세게 분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자하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 사선을 긋는 인왕산 바위절벽이 서울 도심의 풍경도 그렇게 자른다. 산을 다 내려와서 작은 너럭바위에 선다. 경복궁이 멀리 보인다. 그곳은 조선시대 과거를 치른 사람들이 궁궐을 바라보며 합격을 빌던 바위라고 한다. 바위 윗부분이 닳고 닳아 바위의 형태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양도성 순성 인왕산 구간 도착 지점인 창의문(자하문).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이어진 길은 창의문에서 끝난다. 한양도성 순성 인왕산 구간을 놀며 쉬며 구경하며 반나절 동안 걸었다. 다음에는 백악산 구간을 걸을 것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