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노후 유람선, 초안산 놀이터로 변신

도봉구 한강 아라리호 기증받아 1호 공공형 실내놀이터로 새단장

등록 : 2020-05-21 15:08
25m 선박 해체해 운반, 공원에 터잡아

외형 살리고 내부 짜임새 있게 꾸며

10살 미만 대상, 6월 시범운영 예정

“놀 권리 보장에 자원순환 가치 더해”

6월 개장을 앞둔 유람선 놀이터에서 조은기·수빈 남매가 잠시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유람선 놀이터가 언제 문을 여나 궁금했어요.” 5월14일 오후 도봉구 창동 초안산 생태공원에 조은기(6)군, 수빈(5)양 남매가 엄마 손을 잡고 산책 나왔다가 놀이터를 구경할 수 있게 돼 기뻐했다. 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유람선 놀이터가 신기해 아이들은 연신 안을 기웃거렸다.

남매는 신발을 벗고 쪼르르 안으로 달려갔다. 모래놀이판, 볼풀장을 거쳐 뱃머리까지 한달음에 다가갔다. 은기군은 조타기 앞에서 파노라마 스크린을 보며 핸들을 연신 돌렸다. 직접 배를 모는 느낌이란다. 마치 항해사가 된 듯 신기해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옆에 있는 낚싯대로 스크린 속 바다 한가운데서 물고기를 낚아보기도 한다. 이내 모래놀이판에서 노는 수빈양 곁으로 갔다. 남매는 천장의 빔이 거리에 따라 만들어주는 화산, 바닷길이 신기한 듯 모래를 쌓았다 헤쳐본다. 볼풀장에서는 스크린에 뜬 만화 캐릭터에 볼을 세게 던지며 즐거워했다.

도봉구의 1호 공공형 실내놀이터 ‘초안산 유람선 놀이터’가 6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건조한 지 약 30년 된 노후 유람선을 새활용(업사이클링)해 공공형 실내놀이터를 만든 전국 첫 사례라 눈길을 끈다. 출발은 2018년 한강 유람선 ‘아라리호’를 기증받아 실내놀이터를 만들어보자는 직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도봉구는 2016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인증 아동친화도시가 되면서 아동친화의 관점에서 행정을 하려 노력해왔다.


5월14일 오후 도봉구 창동 초안산 생태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유람선 놀이터에서 이동진 도봉구청장(왼쪽)이 직원과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날 유람선 놀이터를 찾은 이동진 구청장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설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도봉구는 낡거나 내버려진 버스, 집터, 군부대 진지 등을 활용해 도서관, 놀이시설들을 만들어왔다. 이 구청장은 “환경보호 의미와 함께 ‘산으로 간 배’라는 발상의 전환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길이 25m, 무게 58t의 아라리호를 초안산까지 옮겨 오는 과정은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는’ 큰일이었다. 지난해 9월 전문 운반업체와 도봉구청 직원 30여 명이 한강 둔치에 모였다. 앞서 보름에 걸쳐 아라리호의 엔진, 의자 등 내부 시설물들을 해체했다. 외형 부분을 위아래로 두 조각 내 두었다. 각각 트레일러에 실어 새벽 3시 출발했다. 경찰의 교통통제 지원도 받았다. 2시간 넘게 걸려 동트기 직전 초안산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기중기로 조각난 배를 내렸다. 수평을 맞추고 나뉘었던 두 부분을 붙여 복원하니, 아침 햇살이 배를 환하게 비췄다.

유람선 공간은 130㎡ 규모이다. 배 내부가 생각한 것보다는 넓지 않아, 4개월 걸려 짜임새 있게 새로 단장해 보완했다. 배 특성을 살리며 인터렉티브 등 첨단 기법도 활용했다.

도봉구는 지난해 아이들이 꿈꾸는 놀이터 그림 공모전도 열었다. 수상작의 아이디어를 설계에 고려했다. 마감재는 창문을 빼고는 모두 바꿨다. 내장재, 기구 등은 놀이터 안전 설치 기준에 맞춰 검사를 통과했다. 실내놀이터이기에 공기청정기, 냉난방 시설도 갖췄다. 운반부터 내부시설 조성까지 4억원의 예산은 구비로 마련했다.

초안산 유람선 놀이터 새 단장을 지난 3월 마쳤지만, 도봉구는 코로나19로 개장 시기를 미뤄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된다면 6월에 시범운영을 해볼 계획이다. 유람선 놀이터는 10살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예약제(90분 단위)로 꾸려진다. 이용료는 무료다. 안전을 위해 한 번에 최고 20명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놀이터 개장을 앞두고 관리할 사람 4명을 새로 채용했다. 아이들 안전을 위한 시시티브(CCTV)는 놀이터 안팎에 11대 설치했다.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도봉구에는 군사시설이 꽤 있다. 구는 이전한 군부대의 진지를 활용해 숙박하며 놀 수 있는 모험놀이터 ‘별별 놀이터’를 만들었다. 학교 수업과 연계해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 아이들이 수업과정으로 참여했다. 지난 1월 올해 신청이 다 찰 정도로 인기다. 올여름쯤에는 사용하지 않는 지역의 군사시설에 아이들을 위한 숲속 도서관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내년 초엔 도봉구청 청사 지하 유휴공간을 활용해 실내외 통합놀이터가 문을 연다. 구청 광장과 연결해 밖에서도 놀 수 있고, 미세먼지, 폭염, 폭서 땐 실내에서 뛰어다닐 수 있다. 이동진 구청장은 “낡거나 방치된 자원이나 공간들을 활용하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가 있다”며 “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시설에 자원순환 가치가 더해져 아이들에게 더 소중한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