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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수필이 전자우편으로 배달됐다…고독이 떠나갔다

코로나발 발견 ③ 배달되는 문화

등록 : 2020-05-28 15:50 수정 : 2020-05-28 17:25
에세이 구독 서비스 ‘북크루’ 등 인기

면도기 등 상품을 넘어서 문학 등 문화 전체의 전달방식이 달라져

에세이 구독 서비스 ‘북크루’ 누리집 갈무리 화면. 다양한 작가를 직접 섭외할 수 있고, 작가의 글을 전자우편으로 만나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상품뿐만 아니라 문학 등 다양한 문화까지 배달하는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북크루 제공

코로나19 사태 이후 문화의 전달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집, 휴대전화, 전자우편 등을 통해 다양한 상품과 문화 콘텐츠를 배달받을 수 있는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구독) 서비스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비대면으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게 인기의 이유로 꼽힌다. `비대면 라이프’가 일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한 예로 면도날처럼 구매 주기가 잦은 제품의 경우 구독 서비스로 받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매번 쇼핑하는 번거로움 없이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어 간편하기 때문이다. 면도용품 구독 서비스 업체 `와이즐리’ 김동욱 대표는 “구독자의 소비 패턴에 따른 수요 예측을 통해 업체는 재고 운영 등으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덕분에 고객은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정기적으로 배달받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제품을 정기적으로 배송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게 구독 서비스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한다. 단순히 면도날을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체 고객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피부 유형과 면도 습관을 파악한 뒤 면도날을 추천하거나 교체 시기를 알려준다. 생활 습관까지 관리해주는 셈이다.

비단 면도날뿐만 아니다. 속옷, 샐러드, 꽃 등 구독 서비스 종류도 다양해졌다. 휴대전화, 전자우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개인 운동 강습도 정기 구독할 수 있다. `리트니스’(Litness)는 집에서 전문가 지도를 받으며 운동할 수 있는 홈 트레이닝 구독 서비스다. 정해진 일시마다 트레이너가 영상통화로 실시간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정확한 자세로 다양한 운동(유산소, 필라테스, 폼롤러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 휴대전화와 모니터만 있다면 외출하지 않고도 비대면 강습이 가능하다. 패션 팁에서부터 옷 세탁도 구독 서비스 하나면 해결된다. 비대면으로 다양한 옷을 빌리거나 세탁을 해결할 수 있어 인기라고 한다. 공유패션 앱 ‘클로젯셰어’는 전문가가 추천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배달받고 약속한 기간 착용한 뒤 반납 날짜에 맞춰 문 앞에 두면 자동 회수된다.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도 외출 없이 집 밖에 세탁물을 놓으면 다음날 저녁에 세탁된 옷이 배송된다.

이처럼 비대면 라이프가 뜨면서 야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졌다. 차에서 숙박하는 여행을 뜻하는 `차박’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권장하는 여행법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호텔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숙박업소에 들르지 않고 개인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비대면에 가까운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차박 커뮤니티 플랫폼 `밴플’의 영상과 매거진을 구독하는 이가 증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초보 `차박’인들이 참고할 만한 다양한 차박 정보를 배울 수 있다.

“구독 서비스는 그동안 주로 제트(Z)세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라이프 시대가 열리면서 자연히 세대 구분 없이 각광 받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한 비영리법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스타트업 네트워킹 모임 ‘테헤란로 커피클럽’을 기획 진행한 신나리씨는 이같이 말한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업체들이 내놓는 구독 서비스를 거의 모두 경험해본 그는 구독 서비스 전문가다.


그에 따르면 최근 비대면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배송받는 이가 느는 추세다. 초반에는 생필품 등을 구독하는 이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구독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문화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눈에 띄는 ‘취향’ 구독 서비스로 그는 ‘북크루’를 꼽았다. 김민섭, 오은, 김혼비, 정지우, 문보영, 이은정 등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관심받는 작가 7명이 돌아가며 한 편의 에세이를 쓰면, 전자우편을 통해 각 에세이가 구독자에게 매일 배달된다. 서점에 갈 필요 없이 간편히 전자우편으로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받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운동도 배달…트레이너가 영상통화로 운동 피드백 보내

코로나19 사태로 세대 구분 없이 각광

구독 서비스 소개하는 앱도 등장해

상품 구독에서 시작, 범위 넓혀가야

영상통화를 모니터로 연결해 집에서도 전문가로부터 실시간 운동 강습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리트니스 제공

전자우편이나 북크루 사이트에 직접 소감을 남길 수도 있는 점도 이색적이다. 단순히 글을 소극적으로 읽는 것에서 벗어나 작가와 독자의 실시간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독자 ‘도로시도’는 “에세이를 나 홀로 읽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독자들과 비대면으로 감상을 나눌 수 있어서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북크루’는 기존 온오프라인 서점이라는 전통적인 유통 과정에서 벗어나 전자우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독자와 작가가 좀더 친근하게 만나게 됐다는 점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책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책 출판이나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기에 가격 거품도 확 줄었다. 구독료 3만원이면 3개월 동안 매일 작가들의 새로운 에세이를 받아 볼 수 있다. 이런 전자우편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이 각광 받게 된 이유로 코로나19 사태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북크루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박정민씨가 그런 경우다. 박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혼자 과제 하고 강의 듣는 시간이 답답하고 외로웠는데, 작가의 글을 이메일로 받아 보니 친구가 생긴 기분이 들고 위안도 됐다”고 말한다. 그는 “에세이 구독을 계기로 평소 알지 못했던 작가의 글을 읽게 돼 독서량도 풍부해졌다”고 덧붙였다.

필요한 구독 서비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꾸준’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구독 서비스를 원하는 사용자를 연결해주는 앱이다. 국내 이용 가능한 약 300개의 구독 서비스를 비교 검색할 수 있다. 정기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상품도 약 120개에 이른다. 구독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항목별로 분류하고 추천한 이 앱은 출시 5개월 만에 다운로드 수 1만 건을 넘어섰다.

`꾸준’ 김홍만 대표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맞아 비대면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구독 서비스를 찾는 이가 크게 늘었다. 최근 꾸준 앱 접속 수가 200% 늘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초반에는 꽃, 그림 등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인기 있었지만, 최근 코로나19 이슈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구르트, 견과류, 건강즙 등 건강식을 찾는 구독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담양에서 생산한 건강 유제품, 김치 명인이 만드는 해담촌김치 등 각 지역 특산품을 손쉽게 받을 수 있어서 찾는 이가 많다”고 그는 설명했다.

구독 서비스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를 위한 구독 서비스도 있다. 유튜브 채널 `날갱티비’가 그렇다. 날갱티비는 다양한 스타트업 서비스를 소개하고 일상에서 구독 서비스를 사용하는 방법을 담은 스타트업 브이로그 채널이다. 이곳에서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적합한 구독 서비스를 소개받을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구독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한 구독 서비스인 셈이다. 구독 서비스를 정리해서 월마다 사용료를 산출해볼 수 있는 구독료 계산기 앱 ‘독구'도 덩달아 인기다. 구독 서비스마다 결제일을 파악해 월 지출을 관리할 수 있다.

정보가 많아지면 선택이 어려워지는 법이다. 범람하는 구독 서비스를 초보자가 지혜롭게 이용할 방법은 없을까? 구독 서비스 전문가 신나리씨는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우선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청소연구소’(청소), `꾸까’(꽃 배달), `와이즐리’ `레이지소사이어티’(면도기), `해피문데이’(여성용품) 등이 그것이다.

집에서 비대면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다면 `넷플릭스’ `왓챠’(영상), `리디셀렉트’ `밀리의서재’(책), `뉴닉’(시사뉴스), `어피티’(경제정보), `캐릿’(Z세대 트렌드) 등 구독 서비스를 통한 볼거리, 읽을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문화 콘텐츠와 기술이 ‘고독’할 뻔했던 비대면 라이프를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