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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감사 편지에서 절실함 느껴져”

지역 시각장애인들에게 ‘격한 감사 편지’ 받은 강서구의회 정정희 의원

등록 : 2020-09-03 16:15 수정 : 2020-09-03 17:40
지역신문기자 출신 첫 여성 재선의원

낡은 쉼터 이전 위해 물심양면 공들여

장학금·교육복지서비스 받도록 연결

“장애인 자녀 자존감 함양 교육 도울 것”

8월26일 오전 강서구의회 4층 본회의장 엘리베이터 앞에 정정희 구의원이 서 있다. 강서구의회 첫 여성 재선의원인 그는 시각장애인·농인·발달장애인 등 어려운 주민들을 돕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강서구지회 하임출 회장은 지난 8월 초 강서구청 누리집과 구의회 누리집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시각장애인 감사의 편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하 회장은 정정희(57) 강서구 의원(더불어민주당·등촌3동, 가양2동)에게 받은 도움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절절히 썼다.

8월26일 강서구의회 의원사무실에서 <서울&>과 만난 정정희 구의원은 “작은 도움에도 격하게 고마워하는 모습에 그들의 절실함이 느껴졌다”며 “스스로 권리 주장이 어려운 이들은 필요한 지원조차 받지 못해 관심을 더 갖게 된다”고 했다.

정 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 때 시장통 컴컴한 뒷골목 건물 2층의 낡고 좁은 시각장애인 전용 쉼터를 찾은 적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수시로 찾는 공간이지만 환경이 열악했다. 활동 도우미나 봉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좀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다. 구청 장애인과에 알아보니 예산이 문제였다.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던 진성준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아 예산을 마련했다. 공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민간 건물들은 장애인단체에 임대를 꺼렸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임대하는 상가를 찾아냈다.


사회적 편견으로 장애인이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적잖다. 시각장애인은 자판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소프트웨어로 얼마든지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데도 공공기관의 피시 지원 사업에서 빠지기 일쑤다. 정 의원은 자신도 쉼터에서 자판 소리를 들으며 컴퓨터 작업을 하는 시각장애인을 보고 알게 됐다며 “편견을 버리면 보이는 게 훨씬 많아진다”고 했다.

지난 5월 그는 가양동 시각장애인 전용 새 쉼터를 다시 찾았다. 함께 방문한 임성호 강서약사회장과 시각장애인 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들었다. 임 약사회장은 해마다 시각장애인 자녀 3명을 강서약사회의 장학사업 대상자에 포함하기로 약속했다. 영양제 100통도 선물했다.

시각장애인이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녀 교육이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늘 마음 아파한다. 쉼터 방문 뒤 정 의원은 강서교육복지센터에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녀 교육 서비스를 알아봤다. 센터는 필요한 가정에 일대일 학습 멘토를 붙여주고, 부모와 아이들의 소통을 돕는 심리치료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강서구에는 3만 명의 장애인이 산다. 서울 자치구에서 가장 많다. 시각장애인, 농인, 발달장애인은 각각 10%가량이다. 정 의원은 장애인을 장애 유형에 무관하게 하나로 묶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초선 시절인 2017년 농인들을 위한 센터 마련에 발 벗고 나섰다. 그해 12월 농인 쉼터가 문을 열었다. 올해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과 지원을 위한 조례 전부개정안을 발의해 강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설치 근거 마련에 앞장섰다. 평생교육센터는 하반기 마곡지구에 문을 열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렵게 문을 연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서진학교’에 평생교육센터가 같이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정 의원이 시각장애인·농인을 위한 공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자녀들의 자존감을 길러주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장애 당사자들의 복지 서비스와 더불어 자녀들이 자존감을 갖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사회가 도와야 한다”고 했다. 쉼터나 교육센터에 자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내년엔 운영될 수 있게 올해 강서교육복지센터의 준비를 지원하려 한다.

그는 전업주부에서 지역신문기자를 거쳐 구의원이 됐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결혼해 아이들 육아에 전념했다.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면서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학원을 찾았다. 포토샵 등 배운 걸 활용하고 싶었다. 1998년 강서양천신문사의 직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편집 일도 하고 취재하며 기사도 썼다.

거의 15년 기자로 일하면서 지역의 많은 사람을 만났다. 2013년 지역 국회의원(신기남 의원)에게서 구의원 비례를 제안받았다. 구의원에 대해 좋은 기사를 쓴 기억이 없고, 구의원이 된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 여러 차례 거절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을 누구보다 잘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권했다. 친한 친구들이 당 지역위에 이력서를 대신 내줬다. 정 의원은 “지금은 어려운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한다”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지역구로 다시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강서구의회 첫 여성 재선의원이 되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