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악취 잡고 ‘쾌적 환경’ 거듭난 전통시장

코로나19에도 점포 늘어난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

등록 : 2021-03-04 16:36

중학교 동창한테서 중앙시장에서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지하철 신당역 2번 출구로 올라오면 바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황학동 중앙시장은 첫눈에 ‘시장은 으레 이럴 것이다’ 하는 구태의연한 생각에 반전을 선사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시장 중앙 통로를 눈부시게 수놓은 조명들. 높고 길게 뻗은 천장에 노란 불빛을 퍼뜨리는 조명이 끝없이 매달려 있었다. 빈티지 블루, 하얀색, 노란색 세 가지 색상이 혼합된 차광막과 함께 어우러져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프랑스 어느 지방에 와 있는 듯 했다.

불빛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을 친구가 잡아끌었다. 닭발 마니아인 친구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며 시장 양옆에 자리잡은 돈부산물 거리로 향했다. 곱창부터 순대까지 신선한 닭·돼지 부산물이 믿기 어려울 만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5천원을 내고 봉지 한 가득 담긴 닭발을 받아 들었다. 가게 주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부산물 거리엔 젊은이 발길이 뜸했다고 했다. 이곳에서 전국 70~80%에 달하는 닭·돼지 부산물을 공급하는데 손질·이동 과정에서 오폐수가 흘러나와 악취를 유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지금의 쾌적한 모습이 만들어졌냐고 묻자, 구청과 상인들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중구는 지난해 ‘황학 상권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60년대 동대문·남대문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손꼽히며 번성했던 중앙시장과 인근 상권을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가장 첫 번째로 꺼내든 카드는 환경개선이었다. 악취로 골머리를 앓던 돈부산물 거리에 핏물이나 기름이 누출되지 않는 특수 핸드카를 제작해 지원하고, 폐기물 보관 창고를 새롭게 정비했다. 한 주에 두 번은 구청과 상인이 합심해 물청소도 하고 있다. 시장 전반에 걸쳐 아슬하게 얽혀 있던 노후 전선도 1억원의 비용을 들여 안전하게 정리했다. 상인과 주민 모두 ‘여기는 변할 수 없다’며 손사래 쳤던 중앙시장이 구청의 끈기와 애정 그리고 상인들의 동참으로 달라졌다.

중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신당역과 중앙시장 지하상가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지하철 이용객이 지하상가를 거쳐 바로 중앙시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중구는 이렇게 유입된 인구를 바탕으로 신당역부터 중앙시장, 그 뒤편의 주방·가구거리와 곱창골목, 동묘 상권까지 이어지는 직선 코스의 상권을 조성할 계획이다. 볼거리·먹거리·살거리가 모두 갖춰진 작은 탐방코스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동인구 유입에 활력을 더하도록 상반기에는 노후화된 시장 아스팔트 바닥도 자연 석재로 교체할 계획이다.

일련의 변화에 힘입어 중앙시장엔 최근 젊은 상인들이 하나둘 점포를 내기 시작했다. 경리단길의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전통 쌀국숫집부터, 일식집, 퓨전 바까지. 코로나19 시기에도 중앙시장은 점포 수가 오히려 늘어날 정도로 많은 가게가 들어섰다. 자연스레 이곳을 찾는 젊은이도 많아졌고, 최근엔 인근 상점 매출까지 늘어나는 긍정 연쇄효과를 보고 있다.

전통시장이 ‘핫 플레이스’로 재탄생하기까지 그 배경엔 구청과 상인의 뜻과 마음을 합친 노력이 있었다. 이번 주말엔 맛깔나는 협력의 레시피가 있는 서울 중앙시장으로 나들이 나가보는 건 어떨까. 도심 한복판에서 오감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혜정 중구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중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