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초고를 낭독하니, ‘작가의 상상력’ 높이 날아올랐다

국립극단 ‘창작공감’ 선정 작가들이 진행한 1차 낭독회에서 얻은 것들

등록 : 2021-09-02 17:06
내년 상반기 본작품 완성도 높이려

작가 3명, 8월 말에 ‘1차 낭독회’ 진행

초고를 대본으로 진행한 드문 무대

김도영 작가, 500매 분량 초고 통해

작가의 ‘상상의 나래’ 마음껏 펼쳐내

낭독회 통해 배우·관객 피드백 받으며

2차와 본공연 때 ‘깊이’ 더할 것 기대

“이번 무대 계기, 초고 낭독회 확산 희망”


관객의 작품 제작 과정 참여 확대 등

“연극계 활성화에 도움될 것” 기대감

지난 25일 명동예술극장 지하연습실에서 김도영 작가와 전영지 ‘창작공감’ 작가 부문 운영위원

‘창작공감: 작가 1차 낭독회.’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종로구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낭독회 무대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 제목이다. ‘1차’라는 단어가 낯설게 다가온다. 낭독공연이나 낭독회라 이름 붙여진 무대는 적지 않지만, 거기에 ‘1차’라는 이름을 붙인 공연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차 낭독회’는 어떤 의미일까?

‘1차’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국립극단이 올해 작품개발 사업으로 진행하는 ‘창작공감’의 작가 부문 사업을 이해해야 한다.

‘창작공감: 작가’는 국립극단이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작품개발 사업이다.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신진작가를 선발해 지난 4월부터 내년 상반기의 본공연 제작까지 작품개발 전 과정을 함께한다. 올해는 연극계 안팎에서 촉망받고 있는 젊은 작가인 김도영·신해연·배해률 작가가 선정됐다.

배우들이 진행하고 있는 <금조 이야기> 1차 낭독회 연습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종로구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금조 이야기> 1차 낭독회는 올해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 부문에 선정된 김 작가가 4월부터 쓴 초고를 텍스트로 삼았다. 김 작가는 “지금까지 5회 정도 낭독공연을 진행했지만 초고로 진행된 공연은 처음”이라며 “초고 낭독회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쳤고, 이를 바탕으로 본공연에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을 선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4월부터 국립극단 스태프 등과 함께 특강, 리서치, 워크숍, 자문, 낭독회 등 희곡 완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내년 상반기 본공연 작품의 완성도를 좀 더 높이기 위해서다. 이번에 진행된 ‘1차’ 낭독회와 마찬가지의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1차 낭독회에 이어 12월 2차 낭독회까지 진행하면서 본공연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1차’ 낭독회와 ‘2차’ 낭독회가 단순히 선후관계만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은 성격부터가 상당히 다르다. 2차 낭독회가 관객이 일반적으로 경험했던 낭독회인 데 반해, ‘1차’ 낭독회는 초고를 그대로 낭독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작가는 1차 낭독회 때 각각 <금조 이야기>(김도영 작),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배해률 작), <밤의 사막 너머>(신해연 작)를 무대에 올렸다. <금조 이야기>는 한국전쟁 피난길에 딸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는 <7번국도>로 사회적 참사에서의 ‘피해자다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배해률 작가의 신작으로, 동화작가 영원과 그가 쓴 <작은발톱수달과 구슬>이라는 동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밤의 사막 너머>는 <악어 시>, <체액> 등의 작품에서 인간소외에 대한 독창적 시각을 보여준 신해연 작가의 신작으로, 한 여자와 그의 친구 보리, 그리고 그녀가 기르던 원숭이 ‘보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낭독회의 바탕이 된 것이 모두 4월 이후 쓰기 시작한 새 작품의 ‘초고’라는 점이다.

‘초벌로 쓴 원고’라는 의미를 가진 초고는 말 그대로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을 일차적으로 풀어쓴 원고를 가리킨다. 1차 낭독회는 바로 이 ‘초벌로 쓴 원고’를 커다란 수정이나 보완 없이 그대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번 1차 낭독회, 즉 ‘초고 낭독회’를 가장 기다린 사람은 작가들이다. 전쟁 범죄자와 전쟁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왕서개 이야기>로 2020년 제57회 동아연극상을 받은 김도영 작가도 ‘초고 낭독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작가는 지금껏 5차례 정도 낭독회와 낭독공연을 경험했다. 그중 4차례가 낭독공연만을 위한 공연이고 나머지 한 차례는 본공연을 위해 먼저 진행한 낭독공연이었다.

그런데 이 5차례의 공연 중 어느 것도 ‘초고’를 대본으로 한 공연은 없었다고 한다. 낭독공연 자체를 위한 공연이든 본공연을 위한 낭독공연이든 모두 각각의 공연에 맞게 다듬어진 원고를 텍스트로 삼았다.

하지만 이번 1차 낭독회는 이런 제약 없이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김 작가는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만든 초고를 이미 5월 말에 완성했다. 국립극단이 정한 초고 마감은 7월 초였지만, 한 달이나 더 앞서 완성한 것이다. 김 작가는 이렇게 빨리 초고를 완성한 이유에 대해 “국립극단 스태프를 비롯해 배우나 관객으로부터 더 많은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1차 낭독회 과정을 통해 이런 자신의 목표가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우선 그는 자신의 초고를 바탕으로 한 <금조 이야기>의 1차 낭독회가 장장 200분 동안 진행됐다는 점을 꼽았다. 초고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500매가 넘었다. 본공연을 위한 완성된 원고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면, 어쩌면 선택하기 쉽지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목표였던 1차 낭독회의 취지에 맞춰 김 작가도 분량 등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쭉 밀고 나간 것이다.

김 작가는 또 공연 전인 지난 25~26일 이틀 동안 진행된 연습 과정을 통해 배우들에게 초고가 어떻게 다가갔는지 파악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낭독회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받은 질문이나 피드백을 통해서도 자신의 의도가 관객에게 어느 정도 전달됐는지 파악했다. 가령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만든 오픈 채팅방에는 “필력이 너무 좋다” “조연들이 마음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좋았다”는 칭찬에서부터 “공연 분량이 너무 긴 것 같다”는 평가 등이 올라왔다.

김 작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초고에는 자신의 의도가 60% 정도는 담긴 것으로 스스로 파악한다. 그리고 1차 낭독회를 거치면서 작가가 배우나 관객과 소통하며 느낀 내용은 이후 2차 낭독회와 내년 상반기 본공연을 위한 귀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 작가는 “이번 1차 낭독회를 거치면서 2차는 좀 더 탐구하고 펼치는 깊이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본공연에서는 더욱 깊은 통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창작공감 1차 낭독회를 경험하면서 ‘초고 낭독회’가 좀 더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연극은 공연하지 않으면 대본을 읽어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고를 읽은 낭독공연이 많아지면 관객과 작가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작가는 초고 낭독회가 활성화되면 작가뿐 아니라 관객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극 관련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초고 낭독회는 작가가 관객 등의 피드백을 통해 작품을 고칠 수 있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기 때문에, 관객은 ‘창작의 과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렇게 작가와 관객에게 모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초고 낭독회가 지금보다 보편화하면 그만큼 연극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김 작가는 짚었다.

“연출에게는 현재 워크숍 공연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어떤 공연의 주제나 소재를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완성된 공연이 아닌 워크숍 공연에 호기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관객층도 존재합니다. 워크숍 공연은 초고 낭독회의 개념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 초고 낭독회가 정착돼 작가들에게도 연출가들의 워크숍 공연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립극단이 본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시도한 ‘낯선’ 초고 낭독회가 ‘낯설지 않게’ 되었을 때, 어쩌면 연극계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도 싹이 틀 것 같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