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길을 묻다

“취미가 일이 되는 ‘덕업일치’…작지만 확실한 노후 행복”

⑪ 여가 영역 두 번째 이야기 김대현 오플밴드 대표

등록 : 2021-11-25 15:18
11월5일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스튜디오 ‘흥얼'에서 김대현 오플밴드 대표가 기타 연주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여가 영역은 노후 준비 관심도 낮지만

실제 은퇴 뒤 삶의 질에 큰 영향 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탐색에 시간 쏟아야 해

50+캠퍼스·센터 등 지원기관 활용을

노력 따라 취미가 일로 이어지기도

기량 향상 위한 시간과 돈 투자 필요


‘커뮤니티’가 활동 이어갈 지지대 역할

건강 돌보며 체력에 맞춰 활동하고

지출 관리하고 경제적 부담 낮추면서

상상력 펼치며 꿈 계속 키워가면 좋아

오플밴드(50플러스 밴드) 대표인 김대현(56)씨는 40대 후반에 퇴직하고 온라인 비즈니스 창업을 준비하며 몇 년을 보냈다.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일에 더 매이면서,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4년 전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문을 두드렸다. 인생학교, 문화기획자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갔다. 중학교 때 배웠던 기타를 다시 잡고 음악 공부도 하며 밴드 활동을 하는 등 취미생활을 활발하게 했다. 성악, 낭독, 뮤지컬 등 영역도 넓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타도 가르치고 공연도 한다.

“이 나이에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이런 것 해도 될까?” 지난 2~3년 동안 그가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이다. 기대수명은 길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는데 경제적인 안정에 더 힘써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인생 후반에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내면을 담금질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노후 준비 4대 영역(재무, 건강, 대인관계, 여가) 가운데 여가에 대한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고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신중년은 재무, 건강에만 중점을 둔다. 하지만 많은 은퇴자가 후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여가 영역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점이다. 그만큼 은퇴 뒤 삶의 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가 영역은 오랜 시간을 들여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등의 목소리가 왕왕 나온다.

11월5일 오후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스튜디오 ‘흥얼’에서 김씨를 만나 여가 영역의 노후 준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취미생활을 시작하고, 취미를 일로 이어가기 위해선 노력과 투자를 쏟아야 한다”고 했다. 취미가 일이 되는 ‘덕업일치’를 삶의 방향으로 정하면서 그는 요즘 하루하루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평생 마음 한편에 품고만 있었던 음악을 하며 (덕업일치로 가는) 과정에 있지만, 방향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생기와 활기를 느끼게 된다”며 “(취미생활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돼준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대현 제공)

만일 좋아하는 게 없다면 시간을 들여 다양하게 시도하고 탐색하며 찾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경험들은 대부분 나중에 서로 다 연결돼 거의 버릴 게 없단다. 유년기, 학창 시절, 청년 시절을 돌아보며 자신이 정말 좋아하거나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는 “인생 후반전의 취미생활은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것이기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좋아하는 것은 오래 할 수 있고, 행복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고, 그래서 잘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취미를 찾지 못한 채 퇴직을 앞뒀거나 퇴직했다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캠퍼스, 센터 등이 좋은 장이 될 수 있다. 그 역시 인생 후반기 시간을 투자해 발전시킬 것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50플러스 서부캠퍼스를 찾았다. 교육 과정에 참여하며 여러 관심거리를 정리하고 음악을 중심에 둘 수 있었다.

그는 “인생학교 과정을 통해 방향을 잡고, 문화기획자 과정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나의 취미로 소소한 일거리 만들기’ 수업에서는 비즈니스 캔버스 툴을 활용해 사업계획서 쓰는 작업을 경험했다. 이때 취미로 소소한 일거리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취미가 더 재미있고 의미 있으려면 기량을 향상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어떤 취미든 잘하게 되면 남을 도울 수 있고, 도울 수 있다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봉사와 일 모두 할 수 있다. 그래서 여건이 되는 대로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을 권했다. 그 역시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기타 교재를 사서 공부했단다. 유튜브나 온라인 강의 등을 듣고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는다. 작사학교, 보컬·재즈 수업에도 참여하고, 음악치료 대학원의 특강 과정도 마쳤다.

커뮤니티를 통한 취미생활도 좋다. 대체로 처음에는 몸도 따라주지 않고 새로 배우는 것들이 기억도 잘 안 된다. 금방금방 실력이 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한다. 때론 지치기도 한다. 그는 오플밴드 멤버들과 활동하면서 때때로 밀려드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단다. 공연, 강의 등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있어 가능했다고 그는 본다. “커뮤니티는 취미 활동을 이어갈 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인생 후반기 취미생활에서 욕심을 내려놓으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의욕이 넘치다 보면 과하게 연습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김씨는 초기엔 하루 반나절 이상 기타 연습을 했다. 나이가 있어 하루라도 연습을 건너뛰면 손이 굳는 걸 느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선 기량을 갖춰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손가락 관절염이 생겨 치료하고 이제는 하루 3시간 정도로 무리하지 않고 나눠 연습하고 있다. 근육 스트레칭, 요가 수업도 곁들인다.

일상생활에서의 욕심 덜어내기도 같이 하고 있다. 경제적인 활동을 접고 음악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자가용을 처분했다. “차량 유지비 등 매달 50만~60만원이 드는 걸 줄이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 악보도 외울 수 있어 얻는 게 훨씬 많다”고 했다. 대학생, 고등학생 두 아들에게도 과외비 대신 나중에 하고 싶을 걸 할 수 있게 목돈을 모아 주고 있다. 사실 끊임없이 벌어서 쌓아둬야 안심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다르게 살기란 쉽지 않다. 그는 가족들과 얘기를 나눠가며 뜻을 맞춰왔다. “아내와 아이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취미생활에서 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을 펼치며 꿈은 더해간다. 그는 싱어송라이터를 꿈꾼다. 음악을 하니까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갖고 싶어졌다. 작곡, 작사 공부를 해가면서 칠순 때까지 10곡 정도를 만들 계획이다. 두 아들과 피아노, 기타, 베이스 연습도 함께 해서 음악회 겸 파티를 열어보려 한다. 사회는 아내가 맡는단다. 이런 방식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모델도 고려한다. 그는 “음악이라는 취미와 함께하는 인생 후반전, 힘든 일과 즐거운 일 모두 하나하나 음표가 되어 화음이 되어갈 것이라 믿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