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꽃샘추위 매서워도, 숲은 따뜻하게 ‘아이 마음’ 선물

㊸ 서대문구 백련산, 궁동산, 작은 안산, 마포구 매봉산과 난지천공원

등록 : 2022-02-10 16:19
마포구 난지천공원 유아숲체험원에 있는 힘센 황소 모양의 놀이기구. 황소 뒤에 고개를 치켜든 커다란 새도 보인다.

바람 지나는 길목 키 작은 소나무들은

거센 바람에 맞서다 줄기가 ‘구불구불’

그 바람 뚫고 ‘유아숲 놀이터’ 들어서니

나무로 된 놀이기구에 동심 되살아나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키 작은 소나무들이 무리 지어 바람에 맞선다. 솔가지 사이를 뚫고 온 칼바람에 손끝이 아리다. 손이 곱았다. 혹독한 입춘 추위를 뚫고 서대문구 백련산, 궁동산, 작은 안산 숲을 걸었다. 백련산 정상에서 지난번 소개한 봉산의 팥배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을 보았다. 궁동산 아랫마을에는 장희빈 우물터와 104고지 전적비가 있다.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주변 난지천공원 유아숲체험원은 아이들 마음을 선물했다. 살아 있을 때 나무 생김새를 최대한 살려 만든 동물 모양의 놀이기구에 자꾸만 올라타고 싶었다.

백련산 정상에서 본 봉산 팥배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


747년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백련사 한 쪽에 15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산비탈집들이 절과 한마을을 이루었다. 절에서 나온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골목에서 비스듬히 자라는 거대한 고목 줄기를 어루만지며 기도한다. 고목은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그렇게 어울려 살고 있다.

돌아가는 길,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가 팔각정에서 백련산 숲으로 들어갔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능선을 만났다. 능선을 넘는 칼바람이 매섭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은평정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초록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다. 넓은 숲길 흙을 밟는 느낌이 부드럽다. 아까시나무, 은사시나무, 소나무가 전체 숲의 7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푸른 소나무가 유독 눈에 띈다.

숲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등줄기에 땀이난다. 바람도 길이 있어서 한시도 쉬지 않고 바람이 부는 곳이 있다. 바람이 지나는 고갯마루에 키 작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거센 바람에 맞서다보니 줄기가 구불거리며 제멋대로 자랐나보다. 솔숲을 지나온 칼바람에 땀이 금세 식는다.

옷깃을 여미고 다시 걷는 길, 소나무 두 그루가 대문처럼 버티고 섰다. 그 아래를 지난다. 백련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자로 올라가 경치를 즐긴다.

서대문구 백련산 꼭대기에 있는 정자.

지난번 소개했던 봉산과 앵봉산 산줄기가 보인다. 한강 북쪽에 솟은 봉산 줄기가 북쪽으로 내달리다가 앵봉산을 세웠다. 그 산줄기가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형국을 굽어본다. 그 풍경 속에서 봉산 팥배나무 군락과 편백나무 군락을 발견했다. 그 숲속을 걷던 생각에 편백나무 숲 향기가 떠올랐다.

한강 건너 멀리 인천의 계양산까지 펼쳐진 풍경에 마음이 시원해진다. 북한산 넘어경기도 파주의 산줄기까지 눈에 들어온다. 막힘없이 펼쳐진 전망에 손끝을 아리게 하는 칼바람도 통쾌하다.

가수 성시경의 데뷔15주년을 기념해 디시인사이드 성시경 갤러리에서 꾸몄다는 ‘성시경숲’을 지나 산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궁동산 아랫마을 장희빈 우물터와 104고지 전적비

궁동산 아랫마을에 있는 장희빈 우물터.

갑자기 흐려진 날씨에 궁동산과 ‘작은 안산’은 다음날 가기로 하고 궁동산 아랫마을에 있는 장희빈 우물터와 104고지 전적비만 들렀다.

서대문구 연희동 궁동산 아랫마을 골목에 있는 장희빈 우물터에는 조선시대 숙종임금 때 희빈 장씨가 서인으로 강등돼 사가에 머물 때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야기의 증거가 되는 기록은 없으나 이 마을에서 대대로 그런 이야기가 내려온다고 한다.

또 이 우물터 부근에는 조선시대 초기 왕실에서 관리하던 뽕나무밭이 있었으며, 이궁(離宮)인 연희궁도 있었다고 한다. 궁동산, 궁말, 궁뜰 등 지금도 연희궁과 연관된 지명이 남아 있다.

서대문구 궁동산 아랫마을에 있는 104고지 전적비.

104고지 전적비는 궁동산 기슭 마을 꼭대기 부근에 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탈환작전 때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에 세워진 승전비다. 104고지 일대에 요새를 만들어 지키던 북한군에 맞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해병대가 전투를 벌였으며 대한민국 해병 제1대대가 104고지를 탈환했다는 내용이 전적비에 새겨졌다.

다음날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서대문04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궁동산을 갈라놓은 고갯길에서 궁동산 꼭대기가 있는 숲으로 먼저 들어갔다. 산 둘레에 난 길을 따라걷다가 정상으로 올라갔다. 간간이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였다. 그중 한 곳에서 백련산이 보였다. 백련사가 있는 산비탈 마을을 백련산이 품고 있었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서 건너편 숲으로 들어갔다. 추운 날씨에도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됐다. 저마다 개 한 마리씩 데리고 숲길을 걷는다. 개도 사람도 다 편해보인다.

궁동산 자락이 끝날 무렵 이정표에 ‘작은안산’이라고 적혔다. 안산도시자연공원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작은 안산’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는다. 다리를 건너 ‘작은 안산’으로 향했다. 마을 숲마다 ‘유아동네숲터’가 있다. 옛날 같으면 마을 뒷동산이다. 옛날에는 있는 그대로의 숲을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요즘은 ‘유아동네숲터’라는 이름으로 숲을 가꾸어 놀게 했다. 길지 않은 ‘작은 안산’ 숲길이 끝나는 곳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입구 도로(연희로)다. 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안산자락길이 나온다.

난지천공원과 매봉산

마포구 매봉산 숲에 있는 초가. 조선시대에 이곳에 엽전을 만들던 대장간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초가는 대장간을 재현한 것이다.

백련산 꼭대기 정자에서 보았던 매봉산도 찾아봤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로 나와 매봉산 숲으로 들어간다. 초가 한 채가 숲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엽전을 만들던 대장간이 많았던 곳으로, 숲속 초가는 대장간을 재현한 것이다. 대장간에서 사용하던 풀무의 이름을 따 풀무골이라 불렀던 마을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만들면서 풀무골의 옛 흔적은 다 사라졌다.

숲속 초가를 지나 산으로 올라간다. 전망 좋은 곳에 서면 북한산까지 시야가 트인다. 그 풍경 속에 백련산도 있다.

매봉산도 동네 뒷동산이다. 숲속 빈터에 마련된 운동기구는 아저씨와 아줌마들 차지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놓인 의자는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군락을 이룬 소나무 사이로 비끼는 오후의 햇볕에 나무 그림자가 촘촘하게 드리워진다. 전망 좋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숲도, 숲이 끝나는 곳에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도, 멀리 보이는 한강도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난지도 매립지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한 뒤에 꾸민 숲을 시작으로 난지천공원을 돌아봤다. 넓은 풀밭에 눈이 쌓였다. 작은 소나무 군락의 푸른빛이 하얀 눈과 대조적으로 빛난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선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작은 도랑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유아숲체험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도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섰다. 밧줄마당, 모험마당, 관찰마당 등 주제별로 공간을 나눠 잘 꾸몄다. 그동안 돌아봤던 많은 ‘유아숲놀이터’ 가운데 이곳이 돋보였던 건 나무로 만든 놀이시설 덕이다. 살아 있을 때 나무의 생김새를 최대한 살려 다양한 모습의 놀이기구를 만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개, 나무 옆에 앉아 있는 작은 곰, 손가락 모양의 긴 나무 의자, 힘센 황소, 입을 쩍 벌린 악어, 영화 속 외계인 이티(ET), 상상 속 동물인 용의 모습을 한 놀이기구를 보고 또 보았다. 어린 시절 마음이 되살아나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에 자꾸만 올라타고 싶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