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78억 마리 벌들의 죽음…인간이 만든 온난화 등 ‘주범’

㉙ 남산에서 배우는 꿀벌과 인간의 관계

등록 : 2022-04-14 17:03
남산공원이 ‘신비한 꿀벌 교실’ 운영을 위해 관리하던 벌통 셋 중 맨 오른쪽 한 통의 벌들만 지난겨울에 살아남았다.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지난겨울 잇따른 벌들의 폐사 소식에

남산 꿀벌에 ‘해법’ 들으러 찾아갔지만

여기서도 벌통 3개 중 1통만 벌 남아

지난 9월 태어난 벌, ‘저온화’로 몸 약해

12월엔 꽃 피는 바람에 나갔다 몸 ‘혹사’

응애와 천적인 등검은말벌 등도 극성

꿀벌은 인간 식량 75% 가루받이 담당


“꿀벌이 멸종하면 인간도 멸종” 전망도

도심서도 벌 생존 여건 조성 노력해야

꿀을 따서 돌아온 남산 꿀벌. 그러나 기생충에 감염돼 날개가 잘 발달하지 못했다. 이윤서

지난겨울 갑자기 죽은 양봉용 꿀벌이 전국에서 78억 마리에 이른다는 뉴스를 함께 보다가 열 살짜리 딸이 말했다.

“우리 학교엔 꿀벌 많아.”

“얼마나 많은데?”

“개미 다음으로 많아. 개나리꽃에 제일 많이 와.”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서울에서도 도심인 명동, 그것도 큰 도로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다. 시골의 넓은 초야에서 키우던 양봉장 꿀벌들도 실종됐다는데 어떻게 도심에 꿀벌이 그리 많다는 걸까?

남산공원 꿀벌.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제공

도시양봉으로 유명한 어반비즈서울에 문의했다. 그곳의 박찬 도시양봉가는 명동에서 꿀벌을 봤다면 남산공원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고 추정했다.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에 물었다. 남산공원 교육용 양봉장에 2만여 마리의 꿀벌이 있다고 했다. 그 벌들이 인근 초등학교까지도 날아갔을 것이란다.

꿀벌은 인간 식량 75%의 수분(가루받이)을 담당하는 매개체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간도 멸종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존재다. 전국 꿀벌이 실종되는 와중에도 남아 있다는 남산의 꿀벌들에게서 꿀벌을 지킬 해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맘으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뒤편의 양봉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서 목격한 장면은 뜻밖이었다. 벌통 3개 중 1개에만 벌들이 있었다. 교육프로그램 ‘신비한 꿀벌 교실’의 이윤서 운영자가 맨 끝 벌통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소비, 즉 벌이 벌집을 지으라고 넣었던 나무틀도 이미 뺀 상태였다.

“이 통엔 벌이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여왕벌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른 통을 열어보니 2㎝ 정도 죽은 벌이 쌓여 있었어요.”

지난겨울, 관리자들은 예년처럼 꿀벌의 월동을 도왔다. 천적인 등검은말벌은 10월말까지 잡아줬다. 12월까지 응애 방제약을 뿌렸다. 단백질과 비타민을 넣어 빚은 꽃가루떡 즉 화분떡도 넉넉히 넣어뒀다. 이곳에선 꿀을 채취하지 않기에 벌들은 꿀의 풍부한 영양소도 다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벌들이 사라진 걸까.

당시 빈 벌통을 처음 발견했다는 중부공원녹지사업소의 남경래 공원여가팀장은 방제약에 내성이 생긴 응애를 범인으로 추정했다. 꿀벌응애는 1㎜ 남짓한 진드기다.

이 녀석들에게 체액을 빨린 꿀벌은 체중이 감소하거나 불구가 된다.

“1월 말이었을 거에요. 벌들이 월동을 잘하고 있나 벌통을 열어보니, 한 통은 응애 피해를 당해 폐사했더라고요. 벌이 완전히 사라진 벌통의 경우엔 다른 벌통으로 옮겨간 것일 수도 있다고 보고요.”

남 팀장이 나머지 한 통을 열어봤을 때 많은 꿀벌이 확 날아올랐다. 원래 월동 중 꿀벌은 날아오르지 않는다. 서로 뭉쳐 체온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잠깐! 꿀벌이 겨울을 나는 원리를 살펴보자. 꿀벌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월동 기간 벌들은 봉군 내에 서로 빼곡히 봉구 즉 공 모양으로 뭉쳐 날개로 열을 낸다. 덕분에 봉구 중심부는 평균 약 21도로 유지된다.

꿀벌은 황제펭귄처럼 서로 자리를 바꾸며 겨우내 체온을 유지한다. 대신 생리대사를 억제해 에너지를 절약한다. 이 때문에 겨울 벌(Winter Bees)의 면역력은 여름 벌(Summer Bees)보다 떨어진다.

겨울 벌은 늦여름부터 초가을 사이에 태어나 약 80~160일 산다. 겨울엔 봉군 내부온도를 유지하다가 봄엔 육아를 담당한다.

이들이 키운 여름 벌은 초봄부터 늦여름 사이에 태어나 약 30~40일을 살며 내역 벌과 외역 벌로 일한다.

태어난 지 3일부터 18일 사이의 내역(內役) 벌은 새끼 기르기, 꿀 만들기, 청소 등 벌통 안 일을 한다. 이들은 이후 외역(外役) 벌이 되어 꿀이나 프로폴리스 모으기, 집 지키기 같은 벌통 밖 일을 한다.

남산공원의 교육용양봉장은 지난겨울에도 예년처럼 응애 방제약을 살포하는 등 꿀벌들의 월동 준비를 도왔다.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제공

지난겨울 사라진 건 겨울 벌들이었다. 지난해 9~10월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저온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태어난 겨울 벌들은 몸이 약해졌다. 11~12월에는 거꾸로 고온현상이 일어나 꽃이 피었다. 월동 준비를 하려던 일벌들이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갔다. 그러다 갑작스레 겨울 찬 바람을 맞은 벌들은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체력이 떨어진 벌들에겐 응애가 들러붙었다. 응애는 유충, 번데기, 성충 등 전 생애의 꿀벌에게 기생해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벌통 출입구에선 말벌류가 일벌을 잡아갔다.

특히 등검은말벌의 공격은 막강했다. 원래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 등 아열대 기후에서 산다. 그래서 1990년대 말 부산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만 해도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해 죽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젠 서울에서도 흔하게 목격된다.

남 팀장은 “이렇듯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꿀벌이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며 “도심 속에서 꿀벌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서울 시내 곳곳에서 도시양봉장을 찾을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공원과 자치구 텃밭양봉장 24곳에 2021년 기준으로 약 332통의 봉군이 있다.

남산공원 ‘신비한 꿀벌 교실’ 프로그램의 이윤서 운영자가 꿀벌의 대화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교육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중부공원녹지사업소는 5월부터 꿀벌의 생애를 알아보고 관찰도 할 수 있는 ‘남산의 신비한 꿀벌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광진구청은 오는 21일부터 광장동 자투리텃밭에서 도시양봉 꿀벌학교를 진행할 예정이다. 양천구청은 30일 도시양봉가와 함께 벌과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꿀벌집을 만드는 ‘꿀벌의 세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5월20일 세계 꿀벌의 날이 다가오면 더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될 것이다.

사실 인간이야말로 꿀벌 실종 사건의 진짜 주범이다. 벌 생태학자인 데이브 굴슨 영국 서식스대 교수는 살충제 오염, 전자파 노출, 도시화, 온난화가 꿀벌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라고 밝혔다. 모두 인간 활동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거꾸로 인간은 꿀벌을 지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먹을 식량에 네오니코티노이드 등 꿀벌에 치명적인 농약을 쓰지 않는 것, 도시화로 살 곳이 좁아진 꿀벌들을 위해 도시 속에 살 곳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어렵다면 더 쉬운 일도 있다. 도심속을 날던 꿀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꽃이나 나무를 심어준다거나, 길 잃고 실내로 들어온 벌을 죽이지 않고 내보내준다거나 등등.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 자료: ‘전국 양봉농가 월동 꿀벌 피해 민관 합동조사 결과’(국립농업과학원, 2022년 3월), ‘실내 월동온도 조건에 의한 양봉 꿀벌의 월동 능력과 면역 관련 유전자 발현 분석’(김경문 박보선 김주경 강은진 최용수 이만영 김동원, 2021년).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