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대한제국 때 하수로, 지하 보행로 됐다

동작구, 국내 최초로 하수로를 통행로로 만든 ‘노량진 지하배수로’ 개방

등록 : 2022-06-23 15:51
동작구는 5월26일 국내 처음으로 하수로를 일반 시민들이 다닐 수 있는 통행로로 만든 ‘노량진 지하배수로’를 개방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890년대부터 시대별 ‘흔적’이 남은 곳

노량진역~수산시장 ‘판타지길’ 재탄생

근대 토목시설 견학장 등 교육에 활용

“올해 서울시 지정 문화재 등록도 계획”

대한제국 시대 만든 지하 하수로가 시민을 위한 보행로로 다시 태어났다. 동작구 노량진동 노량진역 7번 출구를 나와 대방역 쪽으로 200m가량 곧장 걸어가면 ‘노량진 지하배수로’ 출입구가 나온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m를 내려가서, 판타지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동굴길을 지나면 노량진 수산시장이 나온다.

동작구는 지난 5월26일 노량진 지하배수로를 시민에게 개방했다. 노량진 지하배수로는 동작구가 국내 최초로 사용하지 않는 지하배수로를 일반 시민이 다닐 수 있는 지하 보행로로 만든 곳이다.

“노량진 지하배수로는 근대 이후 국내 하수로 형태와 서울의 도시 발달 과정을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노량진 지하배수로는 총길이 92m, 높이 3.3m, 폭 2.5m로 건설 시기별로 5개 구간으로 나뉜다. 1890년대 만들어진 2구간, 1950년대 만들어진 4구간, 1960년대 경부선 복선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3구간 등이 공존한다. 김상훈 동작구 치수과장은 17일 “시기별로 하수관 형태가 모두 달라 근대 이후 하수관로 형태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며 “학문적 가치나 역사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노량진 지하배수로 입구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노량진 지하배수로는 10여 년 전만 해도 우수(빗물)와 오수를 내보내던 곳이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여름 장마철이 되면 물을 흘려보내는 통수 용량이 작아 하수가 넘치는 일이 잦았다. 구는 2011년 노량진 지하배수로 옆으로 통수 용량이 큰 새 하수로를 만든 뒤 이곳을 폐쇄했다. 구는 2017년 서울시와 함께 폐쇄된 구간을 조사했다. “2구간이 1910년께 만들어진 ‘서울광장 지하수관로(서울시 문화재)’보다 20년 정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돼 서울시비 35억원을 들여 원형 보존에 나서 지난달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노량진 지하배수로에서 가장 대표적인 구간은 위로 경인선(1호선) 철로가 지나는 2구간(20m)으로 대한제국 시대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옆 벽면은 사각 형태의 석재, 천장은 적벽돌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둥근 말굽 형태를 띠고 있다.

경인선은 대한제국 시대 인천에서 서울까지 총 4개 공구로 나눠 건설됐다. 노량진 일대는 4공구에 포함되는데 ‘경인철도 건설공구 약도'를 보면, 공사 기간이 1899년 9월30일부터 10월까지로 기록돼 있다. 이를 놓고 볼 때 노량진 지하배수로 2구간이 만들어진 시기는 1899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김 과장은 “서울광장과 남대문로 인근 지하에도 일제강점기에 만든 하수로가 있지만 여전히 하수가 흘러 일반인이 직접 볼 수 없다”며 “노량진 지하배수로는 이보다 앞선 대한제국 시대 만들어진 하수로로 시민들이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노량진 지하배수로는 2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1950년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과장은 “2구간 외 나머지 구간도 모두 형태가 달라 당시까지만 해도 하수로의 표준 형태가 보편화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2구간 다음으로 오래된 4구간(12m)은 노량진로와 경인선 사이에 있는 녹지구간 아래 있다. 4구간은 말굽형 철근콘트리트 구조물로 1952년 7월3일 영등포~노량진 구간 전차선로 개통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한다. 김 과장은 “4구간은 3구간과 단면 형태가 확연히 달라 3구간보다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위쪽에서 전해지는 토압을 분산해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급격한 압력 변화를 막아 물흐름에 유리하다”고 했다.

역시 경인선 철도 부지 아래 있는 3구간(11.2m)은 1969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사각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었는데, ‘헌치’를 시공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현대의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은 사각 모서리 부분에 헌치를 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헌치는 구조물에 가해지는 외부 힘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사각형 구조물의 모서리 부분을 깎아 단면을 만든 형태를 말한다. 김 과장은 “경인선 복선화 구간 중 노량진역을 지나는 영등포~용산 구간이 1969년 6월 완공된 것을 고려하면 1969년 6월 이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노량진 지하배수로 5구간에는 하수로 연결을 위해 뚫은 구멍이 남아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5구간(36.3m)은 위에 차량이 다니는 노량진로가 지나는 부분으로 사각 형태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어졌다. 노량진로 개설 즈음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건설 시기는 알 수 없다. 5구간에는 하수관로를 연결하려고 상부 곳곳에 구멍을 뚫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 과장은 “위쪽과 아래쪽에 헌치가 시공돼 있다”며 “물흐름을 원활하게 하려고 하부 헌치가 수평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1구간(12.5m)은 사각 형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었다. 발견 당시 하수로 바닥이 상류보다 1m 정도 높은 역경사로 형태였다. 김 과장은 “경인선 철길 아래 하수로를 만든 이후 다시 하수로를 여의도 샛강까지 연장하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작구는 앞으로 노량진 지하배수로를 시민들의 통행로뿐만 아니라 근대 토목시설 견학장, 문화와 역사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과장은 “올해 안으로 노량진 지하배수로를 서울시 지정 문화재로 등록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동작구를 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