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대립’ 사이의 DMZ

‘DMZ의 역사-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등록 : 2024-01-04 16:57

크게 작게

“비무장지대(DMZ)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역사학자 한모니까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교수가 신작 (돌베개 펴냄)에서 던지는 핵심 질문이다. 남북한의 대립·화해 정책에 따라 적지 않은 변화를 보여왔던 디엠제트의 모습이 ‘강대강’으로 치닫는 최근 남북 관계 아래서도 큰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엔사(UNC) 군사정전위원회 자료 등을 발굴해 디엠제트의 탄생과 변화를 소상히 짚어냈다. 책에 따르면, 비무장지대를 최초 제안한 것은 영국이다. 1950년 10월 중국군이 참전하자 한국전쟁이 세계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을 우려한 영국이 같은 해 11월 최초 제안했다. 당시 개전 직후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남한군과 유엔군은 9월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10월 초 압록강까지 진격한 상태였다. 처음엔 “비무장지대는 자유 진영의 패배”라며 거부하던 미국도 결국 찬성으로 돌아서며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의해 설정됐다.

디엠제트는 평화와 대립 사이를 오갔다. 우선 1960년대에는 무장화와 군사충돌의 상징이었다. 1960년대는 주한미군이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들여오고, 북한이 4대 군사노선을 수립하면서 격하게 대립하던 시기다. 이때 디엠제트에도 철책이 쳐지고 사실상의 무장이 강화되는 등 그 대립의 여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1970년대 초 비무장지대는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당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데탕트의 기류가 흘렀고,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둔 동독과 서독이 만났다. 이에 유엔사는 군정위에서 디엠제트의 비무장 상태를 회복하자는 제안을 했고, 남북한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방안을 제시했다.

는 이 밖에도 북한의 기정동마을과 남한의 대성동마을이 각각 ‘평화의 마을’과 ‘자유의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체제선전에 앞장서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평화도 자유도 맛볼 수 없는 현실 등도 전하고 있다.

최근 다시 디엠제트의 변화가 전해지고 있다. 남북이 2018년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해가자, 디엠제트 내 북한 경계초소(GP) 복원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비무장지대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대립의 디엠제트가 아니라 평화의 디엠제트가 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