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목소리와 느슨한 연대’, SNS에서 강한 힘이 되다

정다정의 ‘소셜미디어 살롱’ ⑤ ‘사람이 모이고 움직이게 하는 메커니즘’을 바꾼 소셜미디어

등록 : 2024-02-15 15:41 수정 : 2024-02-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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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가 작은 목소리들을 모아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등 사람이 모이고 움직이게 하는 메커니즘을 크게 바꾸어놓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1유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코끼리빌라의 모습. 무상으로 입주한 ‘가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10여 개 브랜드는 다양한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시민들과 접촉하고 있다.

90년대엔 미디어 주도 캠페인 효과적

SNS 확산하면서 패러다임 바뀜 현상

개인 목소리, 더 크게 연결되고 전달돼

상권·문화에 영향주고 축제도 개최해


굿즈 판매해 모은 47만원 ‘지구 장학금’

‘느슨한 연대’ 이어주며 가치 확산 기여


‘마르쉐@’, 생산-소비 연결해 시장 창출

“이제 당신도 ‘소셜’에서 목소리 낼 시간”

1990년대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신호등을 지키며 정지선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양심 냉장고’를 선물하는 <문화방송>(MBC)의 공익성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한 영향력을 이끌어내는 캠페인이 이전에는 이렇게 힘 있고 영향력 있는 매스미디어의 주도로 관심을 일으키고 인식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상당히 달라졌다. 이제는 쌍방향 혹은 다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각자 관심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작은 힘을 모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코로나 시기에 ‘#택배기사님감사합니다’와 같은 해시태그가 있었다면, 요새는 음식포장으로 나오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도로 다회용기에 음식을 포장해오는 ‘#용기내챌린지’가 유행이다.

사람들은 행동하면서 해시태그로 문화로 만든다. 소셜미디어는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팔로만 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행동을 이끌어내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장으로 진화했다. 2023년 메타가 발간한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가치실현을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인 응답자 59%가 환경 관련 사건이 정신건강(46%)과 신체건강(22%)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응답했다. 페이스북에서 친환경자동차, 인스타그램에서 생분해성 쓰레기 관련 대화도 각각 278%, 290%나 급증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도시재생, 풀뿌리 지역운동, 로컬 생태계, 환경 보호 등 다양하다.

정원이 도시의 일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그린 라이프스타일 개발자 ‘서울가드닝클럽’(@seoul_gardening_club)도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지역 상권과 문화도 바꾼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진행되는 ‘1유로 프로젝트’다.

1유로 프로젝트는 유럽에서 처음 시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인구감소로 도심에 버려진 빈집이나 건물을 사람들에게 1유로(약 1450원)에 임대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성동구 송정동에서도 2023년에 ‘오래된공간연구소’가 ‘1유로 프로젝트 @코끼리빌라’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다. ‘오래된공간연구소’는 송정동에 있는 오래된 4층짜리 빌라를 3년간 1유로에 빌렸다. 사람들이 떠나고 2년여간 방치된 4층짜리 코끼리빌라를 1유로로 임대하는 대신, 3년 뒤 이 공간을 리모델링된 상태 그대로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오래된공간연구소’는 이 공간을 ‘가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10여 개 브랜드들에 무상으로 임대했다.

이곳에서는 혼자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1인스파 위크엔더스(@official.weekenders), 핸드메이드 가죽 브랜드 베데레(@vedere.kr),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베러얼스 제로웨이스트샵(@better_earth_zerowaste) 등등 다양한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브랜드들은 ‘퇴근 뒤 요가’ ‘도시농부가 되기 위한 교육’ 등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행사를 한다. 일요일에는 7일장이라는 이름으로 벼룩시장도 연다. 외진 주택가였던 코끼리빌라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가볼 만한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해 5월20일부터 6월4일까지 마포구에서 열린 ‘어랏! 오브 동네책방 페스타!’는 독립서점이자 크리에이터 ‘쿨디가’(@kuldigainseoul)의 기획에서 출발한 축제다. 마포구의 24개 동네 책방이 함께했다. 정다정 상무 제공

이런 모임을 알리고 사람들을 모으고 동참하게 하는 데 소셜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유로 프로젝트 역시 ‘@1_euro_projects’라는 계정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입점한 브랜드들도 각자의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커뮤니티를 만든다.

한국에서 소셜미디어는 다양한 풀뿌리 지역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동가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지지자들을 모은다.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계정을 팔로하며 관심을 표명하고, ‘좋아요’를 보낸다.

지구숨숨(@jigusumsum)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것을 예술로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창작그룹이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고민을 ‘중랑천에서 노올장’ ‘우이천의 행복한 시간’ 등 지역사회 주민이 산책하는 공간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로 만든다.

지난해에는 전시회가 끝난 뒤 굿즈를 판매한 돈 47만원을 장학금으로 만들어서 지구를 생각하고 보호하기 위해 실천하는 활동가와 예술가들에게 전달하는 ‘숨숨장학금’ 릴레이를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주변의 호응을 받으면서 점점 큰 목소리로 성장하기도 한다. 지구숨숨(@jigusumsum)이 만든 숨숨장학금도 그중 하나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들은 장학금을 사용하고 자신들의 기금을 보태 다음 사람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한 식문화 플랫폼 ‘벗밭’(@butground)은 장학금을 교육프로그램에 사용하고, 다음 주자로 생태 농사를 짓는 오와린 농장(@owalin_farm)을 선택했다. 오와린 농장은 받은 장학금을 농사에 사용하겠다고 하고 다음 주자인 못생긴 채소를 잼과 같은 먹거리로 만드는 울퉁불퉁팩토리(@wtbt_factory)에 바통을 넘겼다. 느슨한 연대로 작은 활동가들은 소셜미디어상에서 연결되고 서로 응원한다.

소셜미디어는 이제 시장 구실도 해낸다. 2019년부터 시작한 ‘마르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마르쉐(marche)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뜻이다. 마르쉐@은 지역 상품을 파는 생산자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시장이다. @ 뒤에 지명을 붙여 ‘마르쉐@혜화’ 등 서울 곳곳에서 열린다. 마르쉐 채소시장은 지역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 농산물을 가지고 와서 판매하는 시장이다.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예술로 알리는 창작그룹 ‘지구숨숨’이 지난해 9월 중랑천에서 연 축제 ‘중랑천에서 노올장’ 포스터. 지구숨숨은 전시회를 열어 굿즈를 판매한 돈 47만원을 ‘숨숨 장학금’으로 만들어서 지구를 생각하고 보호하기 위해 실천하는 활동가와 예술가들에게 전달했다. 장학금을 받은 사람들은 장학금을 사용하고 자신들의 기금을 보태 다음 사람에게 전달한다.

팔로어가 8만9천 명인 ‘@marchefriends’ 인스타그램 계정은 장터에 나오는 농산물을 소개하고 시장이 열리는 날을 공지한다. 당근 꽃, 무꽃 등 보기 힘든 물품은 물론이고 제철 채소를 만나는 최고의 장소다. 색다른 장보기와 새로운 시장문화를 체험하고 즐기는 엠제트(MZ)세대가 많이 방문한다. 마르쉐에서만 살 수 있는 식재료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팬이 되어, 시장에 방문한 경험을 자신의 소셜미디어나 블로그에 올린다.

소셜미디어가 매개된 축제 또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5월20일부터 6월4일까지 마포구에서 열린 ‘어랏! 오브 동네책방 페스타!’는 마포구의 24개 동네 책방이 함께한 축제였다. 블록체인 커뮤니티 마켓 ‘어랏’과 독립서점이자 크리에이터 ‘쿨디가’(@kuldigainseoul) 기획으로 다양한 동네서점에서 공연, 전시 등을 개최해 사람들에게 동네 책방을 알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행사였다.

숨숨장학금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이미지.

‘페스타!’에 참여한 시민들은 경의선 책거리를 기점으로 작가와의 만남 등을 통해 서점 주인만의 취향과 철학이 깃들어 있는 서점에 방문하며 책방을 경험했다. 책방은 고루하고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즐겁게 알렸다.

행사는 끝났지만, 독립서점 쿨디가의 소셜미디어를 팔로하면 책방에서 열리는 다양한 음악회와 행사에 참여하며 동네책방과의 특별한 교감을 이어갈 수 있다. 참여한 24개 서점 모두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소셜미디어는 작은 목소리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세계에서 만날 힘과 계기를 마련해준다. 무언가 알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누구라도 시작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당신의 목소리는 절대 작지 않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커뮤니티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작은 목소리는 더 크게 전달되고 연결되기도 한다. 주저하는 마음은 저만치 버려두고 한번 용기를 내보자.

정다정 메타코리아 인스타그램 홍보총괄

사진 각 단체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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