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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손잡고 다니던 식당을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손잡고
다니고 있으니 밥상으로 나누는
추억 대물림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집
오래된 식당, 오래 묵은 맛은 다 다른 사람들 입맛의 공통분모다. 자고 일어나면 문 닫는 식당이 적지 않은데 50년, 1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그 식당 그 맛은 삶의 비타민 같은 추억이다. 부모님 손잡고 다니던 식당을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손잡고 다니고 있으니, 밥상으로 나누는 추억의 대물림이다. 서울에 있는 오래된 식당 몇 곳을 돌아봤다.
59년 순댓국집, 67년 냉면집
59년 순댓국집, 67년 냉면집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집’은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1957년에 일반 식당으로 문을 열었다가 1959년부터 순댓국을 팔기 시작했다. 식당 문을 처음 열었던 곳이 지금 자리 인근 삼거리였다. 그래서 그때 상호는 ‘삼거리 순대국’이었다. ‘먼지막’은 이 동네 옛 이름인 ‘원지목’의 잘못된 발음이다. 예부터 동네 나이 드신 분들이 ‘원지목’을 ‘먼지막’이라고 부르던 게 사람들 사이에 전해졌던 것이다. 아버지에 이어 지금의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사람들 입에 붙은 이름 ‘먼지막’을 상호에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이름이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이니 식당 이름도 대를 이으며 완성된 것이다.
1959년 순댓국을 처음 팔기 시작할 때 가격은 150환, 1962년 화폐개혁 때 화폐단위가 환에서 원으로 바뀌면서 순댓국밥 한 그릇에 30원을 받았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5천원(‘보통 순대국’)을 유지하고 있다. 순댓국에 고기와 순대, 곱창은 물론 흔히 볼 수 없는 애기보(배 속에서 새끼 돼지가 자라는 곳)도 들어간다. 다진 마늘이 나오는데, 한 숟가락 퍼서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마늘 향이 진하게 우러난다.
식당 문을 처음 열 때부터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돈을 넣는 작은 서랍 딱 하나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손때 묻은 낡은 서랍이 빛난다.
영등포구 영등포동3가에는 1967년부터 냉면을 팔고 있는 집이 있다. 식당 이름이 ‘함흥냉면’이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인 주인이 회냉면, 비빔냉면, 물냉면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재 계산대 앞 작은 공간이 식당의 전부였다. 냉면 뽑는 기계를 중앙시장에서 외상으로 샀다. 일주일 만에 외상값을 다 갚았다. 소문은 퍼졌고 사람들은 모였다. 그동안 두 번 가게를 넓혔다. 그게 지금 모습이다.
이 집에서 눈길을 끄는 건 1960~70년대 식당이나 다방에서 쓰던 고동색 각진 컵이다. 누런색 주전자에 담긴 뜨끈한 사골육수를 그 컵에 따라 마신다. 속이 따듯해지며 풀린다. 손님 층도 다양하다.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식당으로 들어오는 아줌마 나이가 50은 넘어 보인다. 그 옆에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온다. 가족 3대가 밥상에 모이는 것이다.
주문한 비빔냉면과 김치만두가 나왔다. 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 비빔냉면의 양념장이 진하고 거칠다. 오장동 ‘함흥냉면’과 느낌이 다르다.
함흥냉면집 고기비빔냉면
종로의 오래된 식당들
이문설농탕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1904년 문을 열었다고 알려진 ‘이문설농탕’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인이 딱 한 번 바뀌었다. 1960년에 지금 주인의 어머니가 식당을 인수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설농탕을 끓이고 있는 것이다.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이던 것이 가스불로 바뀌었을 뿐 조리법은 그대로다. 설농탕에 들어가는 재료도 변함없다. 다른 설렁탕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혀밑, 만하(지라·비장) 등도 고기와 함께 들어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주 보고 앉아 설농탕을 드신다. 젊은 여자 혼자 앉은 식탁도 있고, 일본인 관광객들도 설농탕을 맛있게 먹는다. ‘설렁탕’이 표준말이지만 메뉴판에는 ‘설농탕’이라고 적혀 있다. 왠지 이집에서는 설농탕이라고 해야 맛이 사는 것 같다.
이강순 실비집 낚지볶음
청계천 장통교 부근에 있는 ‘이강순 실비집’은 낙지볶음으로 50년 된 집이다. 매운 낙지볶음으로 유명하다. 매운 맛은 네 단계다. 그중 ‘옛날 매운맛’이 있다. 예부터 사람들에게 내던 그대로 만드는 것이다. ‘무교동 낙지골목’은 원래 현재 광화문우체국에서 에스케이(SK) 본사 사이 골목에 있었다. ‘유정낙지, 명일옥, 낙지센터, 미정낙지, 서린낙지, 실비옥, 실비집’ 등 선술집 골목의 안주 중 하나가 낙지였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매운 낙지볶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집집마다 낙지볶음 맛이 달랐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일부는 광화문우체국 건너편 종로구청 가는 길로 가게를 옮겼다. 그곳도 재개발되면서 낙지골목은 없어지고 식당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954년에 문을 연 ‘미진’은 메밀 요리로 유명한 식당이다. 지금의 광화문 교보빌딩 부근에서 문을 열었다. 냉메밀·온메밀·비빔메밀·메밀전병·메밀묵밥 등 메밀 요리와 우동, 돌솥비빔밥, 낙지비빔밥 등도 판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면 냉메밀이 인기다. 멸칫가루와 채소 등으로 우려낸 차가운 육수의 맛이 메밀면과 잘 어울린다. 육수에 간 무, 파, 김가루, 겨자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는다.
세월의 맛을 간직한 오래된 음식들
중구 을지로3가역 주변에도 오래된 식당이 몇 곳 있다. 1948년 문을 연 ‘안동장’은 옛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굴짬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그때부터 굴짬뽕을 팔았다면 아마도 전국에서 처음으로 굴짬뽕을 판 곳이 이 집이 아닐까? 배추와 굴 향이 육수의 맛과 어울려 진하게 느껴진다. 실내에 붙어 있는 ‘안동장’ 간판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쓰던 것이다.
안동장 굴짬뽕
을지로3가역 6번 출구로 나가서 조금 가다보면 왼쪽으로 골목이 열린다. 그 골목에 50년 넘은 식당이 세 집이 있다. ‘○○정밀’ ‘○○공업사’ ‘○○금속’ 등의 간판이 붙은 골목에서 오랜 세월 함께한 식당들이다. 소 양념갈비로 유명한 ‘조선옥’은 80년 됐다. 식당 현관문에 2017년에 만든, ‘조선옥의 추억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조선옥과 관련된 1940~70년대의 사진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우일집’은 내장탕과 칼국수 등 점심 메뉴와 곱창볶음으로 유명하다. 갈비와 육개장 등을 팔고 있는 ‘안성집’은 1957년에 문을 열었다.
무교동에는 1968년부터 북엇국을 파는 집이 있다. 식당 이름도 그냥 ‘북어국집’(옛 이름은 ‘터줏골’이었다)이다. 술이 좋아 술을 마시고 그 분위기가 좋아 함께했던 술자리, 무교동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쓰리고 허한 속을 달래고 풀어주던 음식이 북엇국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외국인 등 ‘북어국집’을 찾는 손님 층도 넓어졌다. 식사 시간이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옛날에는 식당 홀 한쪽에 작은 방이 있었다. 방이 없어지고 지금의 모습이 됐다. 방에 앉아 먹는 북엇국은 홀 식탁에 앉아 먹는 것과 느낌이 달랐다. 집에서 집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젊었던 시절, 이른 아침 출근길에 짬을 내어 먹었던 북엇국 한 대접은 속을 푸는 해장국이기도 했지만, 가끔은 타향살이 서울 생활 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기도 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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