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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 1932년 신인 가수 2위 입상
뒤늦게 오케레코드에 스카우트 뒤 ‘히트’
1935년생 돼지띠 대표 가수 최희준 1947년 김세레나·박인수·트윈폴리오
1935년생 돼지띠 대표 가수 최희준 1947년 김세레나·박인수·트윈폴리오
지띠 가수 최희준과 트윈폴리오 송창식·윤형주 합동공연(위)과 1947년생 박인수, 이장희, 김세레나, 조동진의 데뷔 시절(중간)과 황규현의 고교생 시절 미8군 밴드 클럽 공연(아래) 사진들.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띠의 해를 맞아 중요 돼지띠 가수들의 데뷔 앨범에 얽힌 이야기를 준비했다. 중요 가수들의 풋풋했던 데뷔 시절 사진이 앨범 커버를 장식한 LP는 보는 재미까지 안겨준다. 데뷔곡부터 히트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가수도 많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해 데뷔 음반의 실체가 불분명한 유명 가수들도 상당하다. 돼지띠 가수의 역사는 1911년생 고복수로부터 시작된다. 1911년생 돼지띠는 109세의 고령이기에 생존 가수는 없다. 고복수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주최한 국내 최초의 전국 신인 가수 선발대회에 참가해 2위에 올랐다. 관심은 여자 입상 가수에게만 쏠렸고 남자 가수 고복수는 찬밥 신세였다. 뒤늦게 1934년 동아일보 학예부가 주최한 ‘당선가 발표 음악대회’에서 경쟁사 오케레코드 이철 사장이 그의 노래를 듣고 스카우트했다. 데뷔곡 ‘타향’(타향살이)을 수록한 고복수의 데뷔 유성기 음반은 크게 히트해, 소녀 가수 황금심과 결혼까지 성사시켰다. 난관은 있었지만 고복수는 돼지띠 가수의 시작을 멋지게 장식했다.
돼지띠 가수의 원조인 1911년생 고복수와 1935년생 돼지띠 가수 최희준, 한명숙, 블루벨즈의 데뷔 시절 사진.
1923년생 돼지띠는 중요 가수를 찾지 못했다. 85세가 된 1935년생 돼지띠 가수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찐빵’ 최희준이 대표다. 그는 1957년 서울대 장기자랑 대회에서 법대 대표로 입상하면서 ‘노래 잘하는 서울법대생’으로 입소문을 탔다. 1958년 사법고시에 낙방한 그는 진로를 고민했다.
1961년 창립한 뷔너스 레코드의 첫 작품인 최희준의 데뷔 음반은 한명숙, 블루벨즈 등 여러 명의 돼지띠 가수들을 동시다발로 배출한 특별한 음반이다. 블루벨즈의 멤버 서양훈, 현양, 김천악, 박일호는 모두 동갑내기 돼지띠다.
이 음반은 뷔너스 레코드에 성장 동력을 안겨준 빅 히트작으로 세 번에 걸쳐 발매되었지만, 처음 발매 때는 전국의 레코드 가게에서 무더기 반품 사태가 빚어졌다. “한명숙이란 여가수, 진짜 가수 맞느냐. 목소리가 쉰 것처럼 이상하다”는 이유였다. 당시는 꾀꼬리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가 대세였다.
60년대 남성사중창단 전성시대를 주도했던 블루벨즈의 ‘이별의 종착역’은 오리지널 가수 손시향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다시 녹음한 것이다. 한명숙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고 나머지 가수들은 대부분 고인이 되었다.
가수 고복수 데뷔곡 ‘타향살이’가 수록된 10인치 LP와 1935년생 돼지띠 가수 최희준, 한명숙,블루벨즈가 동시에 데뷔한 뷔너스레코드 첫 앨범의 세 가지 버전.
고희를 넘긴 1947년생 돼지띠 가수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거나 음악 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건재한 이도 있다. 김세레나의 데뷔 앨범은 라이벌 최숙자, 조미미, 김부자가 같이 등장한 음반이다. 한복을 입은 풋풋한 시골 처녀 같은 커버 사진이 웃음 짓게 만드는 이 앨범에서 김세레나는 ‘풍년이 왔네’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데뷔 1년 만에 가수왕에 오른 펄시스터즈를 지구레코드에 빼앗긴 킹레코드의 박성배 사장은 녹음해둔 곡과 발매했던 곡을 묶어 1970년 몰래 음반을 발매했다. 입길에 오르는 걸 피하려고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만 비공식적으로 배급했지만, 대전 공연을 갔던 펄시스터즈가 우연히 현지 레코드 가게에서 발견해 갈등을 일으켰다. 타이틀곡인 신중현이 작곡하고 펄시스터즈가 노래한 TBC 동양방송 TV 드라마 주제가 ‘나팔바지’는 1947년생 돼지띠 가수 박인수가 코러스로 처음 녹음에 참여했던 데뷔곡이다.
1947년생 돼지띠 중요 가수 김세레나·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의 데뷔 앨범(위 왼쪽부터), 황규현·박인수·이장희·조동진 데뷔 앨범(아래 왼쪽부터).
한국 포크송의 대중화에 공헌했던 남성 듀오 트윈폴리오는 돼지띠 선배 가수 최희준과 함께 공연을 했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1968년 12월 데뷔 앨범을 발표한 1947년생 돼지띠 동갑내기 송창식과 윤형주는 “번안 곡 ‘렛 이트 비 미’(Let It Be Me)를 녹음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음반으로 출시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트윈폴리오 데뷔 앨범 발매 직후인 1969년 1월에 발표된 송창식의 솔로 데뷔곡 ‘멀어진 사람’이 실린 앨범도 가수 본인과 함께 활동했던 윤형주도 실체를 몰랐던 희귀 앨범이다. 윤형주는 송창식보다 2년 늦은 1971년에 후배 김세환과 함께 솔로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디제이 이종환이 기획한 이 음반에서 윤형주의 솔로 데뷔곡 ‘라라라’와 ‘비와 나’가 크게 히트하며 통기타 문화를 주도했다.
콧수염 포크 가수 이장희도 1947년생 돼지띠다. 어린 시절 울보였던 그는 친구들에게 음치라고 놀림을 당했다. ‘자정이 훨씬 넘었네’는 고등학생 때 음치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만든 그의 첫 습작이었다. 연세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이장희는 밴드와 포크 그룹을 결성해 아마추어 가수 활동을 했지만 정식 데뷔를 하지는 못했다. 홍익대생 화가 이두식의 주선으로 화실에서 생활하면서 창작곡 작업에 몰두한 그는 선배 이종환의 주선으로 1972년 11월에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희귀한 이 음반의 재킷은 콧수염을 기르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청년 이장희의 파격적인 모습이 젊은층의 관심을 끌었다.
1947년생 돼지띠 가수 황규현은 차중락의 동생인 친구 차중용의 집에서 키보이스의 연주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1969년 여름, 트로트 작곡가 박진하는 밴드 쉐그린의 리드 보컬 황규현의 애절한 허스키 목소리에 반해 신곡 ‘애원’의 악보를 건넸다. 황규현은 “촌스러운 가요를 왜 부르냐?”며 거부했지만 계속된 간청에 미도파 살롱에서 시험삼아 불렀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이 일어났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킹레코드의 사장 ‘킹박’이 녹음을 제안했다.
1970년 발매된 황규현의 솔로 데뷔곡 ‘애원’이 담긴 음반은 8만 장이 팔려나가는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는 1980년대까지 중·고생들이 가사 중 “목이 메여 불러보는 내 마음을 아시나요”를 “목이 메여 불러본다 지금은 연습이야”로 장난스럽게 개사해 불렀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1966년 록밴드 쉐그린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던 조동진은 가수보다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양희은은 그가 창작한 ‘작은배’를 가장 빠른 1972년에 녹음했다. 음악 활동 13년 만에 가수 데뷔 음반을 발표한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은 1970년대 초반 김세환이 먼저 녹음했지만 활동 금지로 봉인된 사연이 있다. 30만 장이 넘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명반으로 평가받는 조동진의 데뷔 앨범은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1979년 대도레코드에서 발매한 초반이 가장 희귀하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