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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옛 하숙집 “문제적 공간이었죠”

등록 : 2019-06-27 16:11 수정 : 2019-06-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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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주 기자, 서울문학기행 ‘윤동주의 서시’편 4시간 동행 취재

정원 40명에 50명 몰려…“윤동주 문학관, 후쿠오카 감옥 느낌”

지난 19일 점심께 윤동주 시인이 머문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앞에서 ‘서울 문학기행’에 참여한 50여 명의 시민이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운데)의 설명을 듣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10여 편의 시를 쓴 공간이다.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제공

와글와글했다.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 앞. 지난 19일 오전 10시께 서울시와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마련한 16회차 프로그램 ‘서울문학기행’ 가운데 두 번째 기행인 ‘윤동주의 서시’편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정원은 40명인데 슬금슬금 50명으로 불어났다. 한 중년 여성이 “예약은 탈락했지만, 혹시 안 오는 분들이 계실까 해서 와봤다”며 멋쩍게 웃었다. ‘문학’이 이렇게 매혹적인 ‘서울 여행’ 소재로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뭘까. 일찍이 ‘문학’과 ‘서울’ 사이를 ‘밀월’이라 축약했던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사연 있는 골목 속으로 이들을 안내했다.

윤동주 산책길과 ‘누상동 9번지’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

골목 끝마다 집이 열매처럼 달렸다. 옛 작가들의 집이었다. 참가자들은 꿀벌처럼 이집 저집 머물다 떠났다. 시인 이상이 1930년대 살았던 통인동 집터에서 출발해 청전 이상범 화백의 오래된 누하동 가옥으로. 여기서 윤동주 시인의 누상동 하숙집터로, 기세를 이어 옥인시범아파트와 수성동 계곡을 거쳐 인왕산 숲길 자락을 가뿐히 넘어서면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집에 고여 들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네 시간 가까이 걸었지만 사연을 모두 담기 부족할 정도였다. “우리도 어쩌면 ‘성찰적 존재’로 이 문학기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방민호 교수가 던진 물음은 모처럼 일상을 벗어나 여행길에 나선 이들을 독려했다.

윤동주 시인 하숙집터.

인왕산 수성동 계곡.

1941년 5월부터 9월까지 윤동주가 약 다섯 달쯤 머물렀던 ‘누상동 9번지’ 하숙집터는 이제 다세대주택이 들어섰다. 언덕을 오르기 전 잠시 한눈을 팔면 금천교시장이나 통인시장에 들러 주전부리를 나눌 수 있다. 곳곳에 시인의 ‘담담한 일상’이 스몄다.

“윤동주 시인 후배이자 당시 하숙집 룸메이트, 훗날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정병욱의 회상에 의하면, 윤동주는 아침마다 누상동 9번지 하숙집을 나와 인왕산 중턱까지 걸어올랐고, 수성동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연희전문으로 등교했다고 합니다.”

수업을 마치면 한국은행까지 전차를 타고 들어가 충무로 책방을 순회하고, 음악다방에서 새로 산 책을 들추는 일도 시인의 일과였다. 귀갓길엔 명치좌(명동 예술극장)에 들리거나 관훈동 헌책방을 순례하고, 적선동 유길서점 서가까지 훑고 나면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도 전했다. “무엇보다 윤동주 시인의 성격 중 가장 본받을 점으로 ‘결코 남을 헐뜯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혼이 맑고 깨끗하게 자란 사람이었죠.”

윤동주는 여기 하숙집에서 자신의 시 18편을 묶은 원고 세 부를 필사했다. 한 부는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정병욱에게, 한 부는 은사인 이양하 교수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때문에 누상동 9번지는 분명 ‘문제적 공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여기서 열 편의 시를 썼으니까요. 하숙집 주인이었던 김송의 집을 자주 드나든 문인들을 통해 문단의 흐름을 목도할 수 있었고,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깊이 고민했던 공간일 겁니다. 누상동 9번지 시절의 시를 보면, 윤동주 시인이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예견한 듯한 시들이 있어요. 세계가 태평양전쟁으로 나아간 1941년. 시인의 내적 고민이 상당히 컸을 겁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는 같은 해 11월 <서시>를 창작했다.

‘사라진 별을 찾아’ 탐문하는 길

녹음이 만연한 인왕산 숲길(스카이웨이)을 넘어 도착한 ‘윤동주 문학관’은 폐기된 상수도 가압장을 윤동주의 시 <자화상> 등을 모티브 삼아 재건축한 공간이다.


“강의 들으며 산책하니 풍경 너머가 보이더라”

11월30일까지 수·토요일 진행

서울시와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문학작품 속 서울 탐방 프로그램

지난 12일 오전 미당 서정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 ‘서울 문학기행’에 참여한 시민들이 관악산 둘레길을 걷고 있다.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윤동주 시인이 체포되어 1945년 2월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생을 마친 ‘후쿠오카형무소’ 감방에 있는 기분도 들어요.”

식민지 시대 한복판에서 나고 죽은 시인들의 여정은 답 없는 갈림길에서 운명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별 헤는 밤>은 1941년 11월 윤동주 시인이 누상동 9번지를 떠나 북만주에 다녀온 후 썼습니다. 게오르그 루카치(루카치 죄르지)의 그 유명한 구절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살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하나의 별빛 같은 지향점’이 사라진 오늘날에 이 ‘별’을 음미해 봅니다.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초극의 의지가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평소 <서울&> 열독자이자 ‘서울 여행 정보’를 열심히 모은다는 참가자 최영자(64)씨는 “명퇴 후 삶에 재미와 의미가 생겼다”며 이번 문학기행에 참여한 소감을 말했다. “예약 사이트가 열리면 몇 분 안에 마감될 정도로 신청 경쟁률이 센 프로그램이다. 16회 모두 참가하면 문학 전문가가 될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의 책 외에도 <광화사> 등 오늘 소개받은 책들을 다 읽고 싶어 꼼꼼히 메모했다”고 말했다. 김영화(44)씨 역시 “전에 왔던 장소임에도, 강의를 들으며 서울을 산책하니 풍경 너머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며 “틈나는 대로 다음 프로그램도 신청할 생각”이라 말했다.

“삶에 다시 재미가 붙는” 여행

지난 12일부터 오는 11월30일까지 열리는 ‘서울문학기행’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문학작품 속 배경이 된 서울 속 공간을 문학 전문가와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노주석(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은 “서울은 2천년 동안 역사 문화의 중심 무대가 되었던 곳”이라며 “수많은 작가가 서울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꾸준히 따라가는 것만으로 도시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2일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이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시작으로, 29일 박미산 시인이 진행하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준비하고 있다. 매회 참고 책자와 고성능 오디오가이드 시스템을 제공한다. 참가 신청은 서울시 누리집(news.seoul.go.kr/culture)에서 회차별로 받는다.

문의: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seoulresearch.co.kr | 02-772-9069) 신청: 서울시 (news.seoul.go.kr/culture)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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