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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양지설렁탕에 양지육개장
미꾸라지 박힌 두부 썰어 넣은 ‘추탕’
최고 음식 대접받던 민엇국까지
펄펄 끓는 뚝배기에 여름이 선선하다
마당 너른 집 삼계탕. 한옥 방에 앉아 삼계탕 한 상 받으면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그때 서울 사람들은 여름을 나며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3대를 이어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름 음식의 대표인 삼계탕을 비롯해 양지설렁탕, 양지육개장도 그 목록에 들었다. 미꾸라지 박힌 두부를 썰어 넣은 ‘추탕’은 별미였다. 여름 음식 중 으뜸은 민엇국이었다. 집안마다 요리 방법이 달랐지만 보통 고추장으로 민엇국을 끓였다고 한다. 민어 요리는 서울에서도 잘사는 집에서만 먹었는데, 무엇보다 민어 알로 만든 어란은 귀한 음식이었다. 옛 서울 사람들이 먹던 여름 음식을 찾아 찜통 같은 삼복 더위를 뚫고 거리로 나섰다.
삼계탕과 ‘추탕’
용금옥 추탕 한 상.
3대를 이어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 몇 사람을 만났다. 옛날에 서울 사람들이 여름을 나며 먹던 음식 중 추탕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두부가 담긴 큰 용기에 미꾸라지를 넣으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가는데, 그 두부를 썰어서 탕을 끓인 게 추탕이란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추탕을 끓여 먹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반 사이 형제추탕, 용금옥, 곰보추탕 등 추탕집이 문을 열었다. 추탕은 인기를 끌었고 단골이 생겼다. 지금도 명맥을 이어 영업을 하는 집이 몇 집 있는데, 그중 중구 다동에 있는 용금옥을 찾았다.
용금옥 밥상에 앉으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통으로 드릴까요? 갈아서 드릴까요?”다.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이느냐, 갈지 않고 그냥 끓이느냐 묻는 것이다.
갈아서 끓인 것은 국물이 걸쭉하고, 통으로 끓인 것은 덜 걸쭉하다. 뚝배기에 담긴 추탕에 기호에 따라 파와 고추 다진 것을 넣어 먹는다. 후추와 산초가루도 있다. 국수 사리는 탕에 넣어 끓이지 않고 따로 준다. 유부와 버섯도 맛을 보탠다. 깍두기 모양으로 썬 두부는 옛 추탕의 흔적이 아닐까? 옛날에 추탕을 끓일 때 미꾸라지가 박힌 두부를 썰어 넣었다고 했는데, 그때도 두부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넣은 것은 아니었을까?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여름 음식인 삼계탕도 빼놓을 수 없다. 마당이 있는 한옥에서 삼계탕을 파는 집을 찾아갔다. 음식은 눈으로, 향기로, 맛으로도 먹지만 분위기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도로 옆 골목에 한옥 기와지붕이 보인다. 지붕 한쪽에 ‘마당 너른 집’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마당이 있다. 마당에 놓인 들마루가 정겹다. 들마루 위에 밥상이 놓였다. 툇마루 아래 손님들 신발이 가지런하다. 서까래가 보이는 한옥 방에 앉아 삼계탕을 먹는다. 대접받는 기분이다.
설렁탕과 육개장
잼배옥 설렁탕.
설렁탕과 육개장은 언제나 먹는 음식이지만, 서울 사람들의 여름나기 음식이기도 했다. 1933년에 문을 연 잼배옥과 1952년에 문을 연 문화옥에서 설렁탕을 맛봤다. 두 집 모두 3대를 이어 서울에서 살면서 설렁탕을 끓이고 있다.
설렁탕의 내력보다 먼저 알고 싶었던 게 식당 이름 잼배옥이었다. ‘잼배’의 유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염천교 동쪽 철도 부근에 붉은 바위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자암동(잼배마을)이라 했는데, 사람들은 자암을 ‘잼배’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숭례문을 통해 한양도성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그 바위에서 하루 운수를 점쳤다고 한다. 점을 치던 바위라고 해서 사람들은 그 바위를 점바위라 불렀고, 후에 ‘잼배’가 됐다고 한다. 그 바위 부근에 설렁탕집을 차리면서 식당 이름을 잼배옥이라고 했던 것이다.
국물 맛이 구수하다. 보통 후추와 소금을 넣어 먹는데,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후추는 타지 않는 게 좋다.
문화옥 설렁탕.
문화옥 설렁탕도 국물이 구수하다. 시어머니를 이어 며느리가 지금도 설렁탕을 끓인다. 새벽에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과 주변 상인들의 아침밥을 위해 문화옥은 예전부터 새벽 6시에 문을 열었다. 새벽 2~3시에 식당에 나와 육수를 끓이고 고기를 손질한다. 사골과 양지머리 등으로 국물을 만든다. 설렁탕의 맛과 잘 어울리는 김치도 인기다.
1939년에 문을 연 한일관에 들러 뜨거운 육개장을 맛봤다. 불로 달군 열판 위에 육개장 뚝배기를 올려서 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뜨겁게 먹을 수 있다. 이열치열이다. 양지고기와 고사리, 대파, 표고버섯, 당면 등이 가득한 뚝배기에 밥을 말아 한술 크게 뜬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양고추 다진 것과 후추를 넣어 먹는다. 세 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깍두기가 육개장과 잘 어울린다. 뜨거운 육개장 한 뚝배기에 여름도 선선하다. 뜨거운 게 싫은 사람들은 열판을 빼달라고 하면 된다.
한일관 육개장
민엇국과 민어 어란
옛 서울 사람들이 여름을 나며 먹던 음식 중 으뜸으로 쳤던 게 민엇국이다. 민어는 귀한 음식이었다.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잘사는 집에서만 먹었다. 민엇국은 집마다 요리하는 방법이 달랐지만 보통 늙은 호박과 대파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민엇국을 끓였다.
민엇국 바로 아래 단계로 쳐주던 것이 암칫국이었다. 암치란 소금에 절인 민어다. 무와 대파를 넣고 끓였다. 민어를 구워 먹기도 했다. 파와 갖은 양념을 넣은 간장에 민어를 담갔다가 구워 먹었다. 이때 대가리와 뼈는 버리지 않고 민엇국에 넣어 끓였다. 대가리와 뼈에서 우러난 맛이 민엇국의 국물 맛을 깊게 만들었다.
민어 어란은 민어 요리 중에서도 귀한 음식이었다. 갖은 재료를 넣은 양념간장에 잰 민어 알을 참기름을 발라가며 말린다. 보통 20~30일 정도 말리는데, 하루에 참기름을 대여섯 번 발라야 한다. 민어 어란 아래치로 쳐주던 것이 숭어알 어란이었다.
민어 요리를 먹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다가 예전명가를 찾았다. 예전명가를 선택한 이유 중 70%는 민어 어란을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사장님도 서울 토박이였다.
예전명가 민어탕.
민어 어란을 씹으며 세 가지 맛을 느낀다. 첫맛은 생선 말린 포의 일반적인 맛, 중간 맛은 양념간장과 참기름을 발라가며 말린 그 맛이다. 마지막으로 처음 경험하는 맛을 느꼈다. 건조와 발효가 함께 진행되며 생긴 맛이 아닐까? 미각에 자꾸 그 맛이 스민다.
민엇국이 끓기 시작한다. 채소가 익으면 먼저 건져 먹는다. 간, 부레, 알 맛을 본다. 결이 살아 있는 쫄깃한 식감을 느끼며 고기 몇 점을 씹는다. 다 먹지 않고 반 정도 남겨놓는다. 국물이 졸았다. 육수를 더 달라고 해서 다시 한 번 끓인다. 민어 뼈와 대가리에서 맛이 완전히 우러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된다. 여름보다 더 뜨거운 한 끼 식사, 민엇국으로 여름을 부순다.
예전명가 민어 어란. 사진 위에 보이는 것이 민어 어란이고 그 아래 접시에 담긴 것이 저민 민어 어란이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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