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를 밀어낸 북부 ‘송아지 육회’, 시칠리아 ‘밥튀김’

권은중의 나이 쉰에 떠난 이탈리아 요리 유학기 ⑱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지역특색 음식을 좋아할까?

등록 : 2019-11-28 14:43 수정 : 2019-11-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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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파스타 세계적인 음식이지만

이탈리아 안에선 ‘지역색 음식’ 대세

프랑스 가까운 북부에서 육회 인기

헤이즐넛으로 키운 송아지 육회 맛 최고

고기·정어리 넣은 시칠리아 밥튀김은

아랍 등 외세 지배 받았던 역사 농축돼

피지배의 슬픔 담은 음식 지켜온 국민

“지역 음식 아는 건 역사 아는 것” 강조


영국의 인터넷 마케팅 회사 유고브가 지난 3월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 음식이 가장 맛있느냐고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1위는 이탈리아 음식이었다. 이탈리아에서뿐 아니라 영국, 스페인, 스웨덴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90% 이상이 피자·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요리가 가장 맛있다고 대답했다.

이탈리아 음식은 맛만으로 낙점을 받은 게 아니다. 미국의 한 인터넷 기업이 밀레니엄 세대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고 했더니 이탈리아 음식이 역시 1등이었다. 선택 이유 가운데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가장 적합하다”라는 답변도 상당했다. 이탈리아 음식이 맛도 좋고 보기도 좋다는 이야기다.

세계인이 좋아한다는 이탈리아 요리, 그렇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떤 요리를 좋아할까? 한식 가운데 비빔밥·불고기가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꼭 비빔밥·불고기가 아닌 경우도 많다(난 냉면이다). 비슷하게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바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역시 피자나 파스타가 아니었다.

먼저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북부를 살펴보자. 내가 피에몬테 주도인 토리노의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손님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인턴들은 월·화요일 이틀이 휴가였다. 휴일 전날 근무인데다 일도 많지 않으니 어깨춤이 절로 날 수밖에.

그런데 거의 밤 10시쯤 대충 마감했으면 하는 늦은 시간에 손님이 2~3명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얄미운’ 손님이 시키는 음식은 ‘바투타 디 비텔로’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송아지 고기 육회’다. 진공 포장된 송아지 고기를 칼로 다져 올리브유·소금·레몬즙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뒤 샐러드와 곁들여 내놓는 요리다.

내가 인턴으로 일하던 레스토랑 손님들이 가장 많이 시켰던 ‘바투타 디 비텔로’. 우리말로 하면 송아지고기 육회다. 사진은 ICIF 강의 때 학교 셰프가 만든 요리다.

처음에는 일요일 늦은 밤에 레스토랑을 찾아와서 육회를 시켜놓고 레드와인을 마시는 피에몬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북부 사람들의 육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주중 점심에도 이 메뉴는 다른 음식의 주문을 압도했다. 실제 토리노나 볼로냐의 길가를 걷다보면 노천카페에서 이 음식을 빵과 함께 점심으로 먹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스테이크 타르타르’로 불리는 이 음식은 원래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의 전통 음식이었다. 이 음식은 러시아·독일 등을 거쳐 이탈리아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으로 건너가 간편식의 대명사인 햄버거가 된 이 음식을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답게 미학적으로 진화시켰다.

나는 지난 3월 말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서 헤이즐넛을 먹여서 키운 고급 송아지로 이 요리를 만드는 시연을 보았다. 이 고기는 kg당 8만원의 고가였다. 송아지 살은 헤이즐넛의 기름이 배어 윤기가 났고 고기 특유의 역한 냄새도 없었다. 내가 먹어본 최고의 ‘바투타 디 비텔로’였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족발튀김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입맛에는 한두 개 정도는 맛있지만 기름기 때문에 금세 질렸다.

이 메뉴 말고도 북부 사람들의 고기 사랑은 각별하다. 소고기 스테이크같이 ‘단순한’ 메뉴로는 이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갈증을 충족해주지 못한다.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에는 당연히 스테이크 요리가 없었다. 대신 피에몬테의 유명한 육우인 파소네를 밀가루 반죽처럼 얇게 포를 떠 리코타 치즈를 넣고 튀겨냈다. 또 양고기도 양갈비에 헤이즐넛 튀김옷을 입혀 튀겨서 내놓았다. 이 양갈비는 내가 인턴 생활을 하면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느끼한 고기 요리의 압권은 족발튀김이었다. 족발을 오븐에 넣고 습윤 기능으로 돌리면 삶는 것처럼 된다. 그럼 족발을 꺼내 단단한 뼈는 제거하고 껍질과 연골만을 다져서 정사각형으로 만든다. 그걸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 이걸 먹으면 느끼함 때문에 단것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는다.

피에몬테 고유 음식에 고기가 이렇게 많은 까닭은 알프스 아래 넓게 펼쳐진 이 지역의 목초지 덕분이다. 파소네 같은 소고기와 함께 이곳 치즈 역시 유명하다. 거기에 피에몬테는 고기와 버터에 목을 매는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 인턴으로 근무했던 레스토랑에서는 거위 간인 푸아그라와 달팽이 요리인 루마케가 붙박이 메뉴로 있었다.

볼로냐의 한 정육점에서 손님들이 이탈리아 생햄인 살루미를 고르고 있다. 볼로냐가 주도인 북부 에밀리아로마냐는 프로슈토를 비롯한 살루미가 매우 발달했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주도인 밀라노에는 소고기를 얇게 펴서 튀기는 크로켓 요리가 유명하다.

피에몬테와 같은 북부에 있는 주도 비슷하다.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 역시 밀라노식 소고기 커틀릿이, 볼로냐가 주도인 에밀리아로마냐 역시 모르타델라를 비롯한 다양한 돼지고기 햄이 유명하다. 두 지역 역시 고기를 중시하는 국가인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등과 가깝다.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지리적·역사적 이유로 고기에 살고 고기에 죽는 입맛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남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북부와는 다르다(나는 남부는 시칠리아밖에 가보지 않았으니 시칠리아 기준이다. 나폴리가 주도인 캄파니아주는 피자의 고향이다. 북부에서 유명한 피자집은 대부분 나폴리 출신이 운영한다). 가장 다른 점은 시칠리아 레스토랑에서는 고기 메뉴를 보기가 어려웠다. 대신 그들의 시장에 가면 황새치·새우로 대표되는 다양한 생선과 가지·브로콜리로 대표되는 신선한 채소가 가득했다. 소고기로 소스를 만드는 북부와 달리 이들은 생선과 새우로 맛을 냈다.

시칠리아는 시칠리아를 상징하는 황새치를 비롯해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다. 시칠리아의 해산물 요리는 길거리 음식과 함께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시칠리아 사람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던 음식은 이런 멋진 시칠리아의 재료로 만든 정찬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대표 음식은 밥튀김인 아란치니였다. 야구공 크기인 이 음식은 밥 안에 뭘 넣느냐에 따라 라구(고기), 부로(버터), 사르데(정어리)로 나뉜다. 이 가운데 라구가 대표선수다. 두 개에 보통 2.5유로다. 두 개면 끼니가 거뜬하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길거리 음식인 아란치니. 두 개에 3유로 정도다. 한 끼로도 손색없다.

아란치니 외에도 소와 양의 내장을 구워서 파는 스티기올라나 소 내장을 삶아 시칠리아식 깨빵에 끼워 먹는 밀차 같은 길거리 음식도 인기였다. 피자 대신 먹는, 토마토소스에 곱게 간 정어리살을 반죽에 올려 구운 스핀초네라는 독특한 빵도 있었다.

시칠리아가 아란치니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그중에 아랍인들이 이 섬을 지배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시칠리아에 쌀과 사프란 등의 향신료를 전해준 것이 아랍인이었다. 뒤이어 이 섬의 주인이 된 스페인 사람, 프랑스 사람들은 고기 요리와 치즈를 가져왔다. 결국 고기를 넣은 밥튀김, 즉 아란치니는 역사적으로 여러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던 시칠리아의 역사가 농축된 음식이다.

밀차는 시칠리아 길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힌다. 삶은 소 내장을 시칠리아깨빵 사이에 듬뿍 넣어서 치즈와 함께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느끼함이 족발튀김에 뒤지지 않는다.

양과 소의 내장으로 만들던 스티기올라 역시 지배자였던 사람들이 살코기를 먹고 그 남은 부속물을 길거리 음식으로 만들어 팔던 전통에서 비롯됐다. 지배자들이 화려한 스페인과 프랑스 정찬을 먹을 때 시칠리아 주민들은 최소한의 재료와 간편한 조리법으로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섬을 식민 통치했던 지배층의 음식 대신 자신들의 슬픈 역사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준 길거리 음식을 기억해왔던 것이다.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 음식을 만나는 것은 맛, 정신, 영감,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등 다른 지역과는 차별되는 그 지역만의 특징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에서 지역별로 인기 있는 음식은 주마다 다를 뿐 아니라 도시마다 다르다. 같은 주라도 도시별로 먹는 파스타나 치즈가 제각각인 곳이 이탈리아다. 지역 음식은 자연과 역사의 한계에서 그 지역 주민들이 일군 지혜의 결정체다. 그래서 지역 음식을 아는 것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경제사> <독학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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