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달걀 깨기에 아이들의 추억은 늘어갔다

서울시 가족학교 ‘패밀리 셰프’ 현장

등록 : 2016-06-09 16:40 수정 : 2016-06-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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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8일 강남구건강가정지원센터가 세곡동 세명초등학교와 연계해 연 서울시 가족학교 프로그램 ‘패밀리 셰프’에서 송가현양과 한태호군의 가족이 서로 도우며 오색전을 만들고 있다.
“그렇지! 달걀 깨기 선수 되겠네.” “칼질 처음 하는데 잘한다.” “밀가루 골고루 잘 묻히네.”

지난달 18일 오후 강남구 세곡동 세명초등교 실과실에는 칭찬과 격려의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초등생과 부모, 모두 12가정 34명이 모여 함께 요리하느라 시끌벅적하다. 가족상담사 김민영 강사의 조언에 따라 부모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칭찬을 이어가려 애썼다. 처음 해 보는 달걀 깨기, 애호박 썰기에 굳었던 아이들 표정이 시나브로 밝아진다.

강남구건강가정지원센터가 이날 연 ‘패밀리 셰프’ 프로그램은 서울시 지원 가족학교 사업의 하나다. 자녀와 부모가 이웃과 함께 동네 시장에 가고, 요리하며 가까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와 이웃에 관심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석자들은 전체 6개 테이블에 두 가정씩 나눠 앉았다. 1모둠에는 송가현이네와 한태호네가 함께했다. 가현이네는 휴가를 내고 참석한 아빠, 엄마, 언니(가희) 온 식구가 함께했다. 태호는 엄마와 같이 왔다. 가현이와 태호는 같은 3학년이라 금세 친해졌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부모들도 스티커 붙이기 놀이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같이 퀴즈를 풀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모둠별로 어린이·어른 모둠장을 뽑았다. 어린이 모둠장은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는 몫을, 어른 모둠장은 불과 칼을 조심해 쓰도록 하는 책임을 졌다. 1모둠의 어린이 모둠장은 태호가, 어른 모둠장은 가현이 아빠가 맡았다.

요리 실습에 들어가기 전 동네 장터를 둘러보기도 했다. 세곡동에는 전통시장이 없어 대신 학교 옆 아파트 장터를 찾았다. 아이들은 김 강사가 내준 과제를 하느라 색깔별 음식 재료를 찾아보고, 특징 있는 가게를 알아본다. 가현이와 몇몇 아이들은 처음 보는 생선이나 채소를 신기한 듯 보며 부모나 상인들에게 이름을 물어보기도 한다.

실과실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하기 전 김 강사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장면을 참석자들에게 보여 준다. 음식을 이웃집에 나르는 봉황당 골목 아이들 모습이 재미난 듯 참석자들은 깔깔 웃는다. 드라마 보기가 끝난 뒤 그는 “오늘 요리하기는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좋은 이웃들과 사귀는 데 의미가 있다”며 세 가지를 당부했다. 부모와 아이들 서로 눈을 자주 마주치고 칭찬 많이 해 주기, 누군가 실수하면 ‘괜찮아’ 하고 격려해 주기, 이웃과 같이 서로 도우며 요리하기였다.

요리 메뉴는 일상에서 이웃들과 나눠 먹기 좋은 ‘오색전’과 ‘호박전’이다. 각자 어떤 일을 맡을지부터 의논한다. 1모둠은 꼬치 끼우기는 다 같이, 달걀 깨기는 가현이와 태호, 애호박 썰기는 태호와 가희, 굽기는 엄마들이 맡았다. 가현이 아빠는 아이들을 돕기로 했다. 달걀 깨기, 애호박 썰기를 처음 해 보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무서워하다 금세 재미있어한다. 가현이 아빠는 애호박에 밀가루 묻히기를 하면서 가현이 얼굴에 밀가루를 살짝 묻히며 장난을 걸기도 한다. 가현이 엄마와 태호 엄마는 전을 붙이며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40여분 만에 6개 모둠의 테이블에는 맛난 오색전과 호박전이 차려졌다. 가정마다 음식에 이름을 붙였다. 가현이는 ‘가족의 건강 밥상’, 태호는 ‘먹방의 음식’이라 적은 예쁜 이름표를 만들었다. 뒷정리는 아이와 부모들이 서로 도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1모둠 가현이네는 식구가 적은 태호네의 뒷정리를 같이 도왔다. 음식 나눠 먹기 손님으로 초대받은 학교 선생님들이 실과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우와!” 함성을 지르며 반갑게 맞았다. 선생님들은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아이들은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하고 자랑하며 전을 선생님 입안에 넣어 줬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4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참석자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즐거워한다. 요리하기, 손님 초대해 음식 나눠 먹기가 끝난 뒤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아쉬워한다. 이 틈을 타 가현이가 장기자랑에 나섰다. 실과실은 요리실에서 장기자랑 무대로 바뀌었다. 가현이는 ‘픽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다른 아이들도 차례로 나와 동요 부르기, 고래 소리 흉내내기 등 자신이 가진 장기를 선보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깜찍한 모습에 흐뭇해했다.

가현이와 태호는 자신들이 요리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전에도 엄마 아빠와 요리를 했지만 그때는 엄마 아빠가 다 만들고 우리는 먹기만 했어요. 달걀도 처음 깨어 보고, 애호박 썰기도 재미있었어요.” 가현이 엄마 하월순(39)씨는 “이사 온 지 3년째인데도 동네 이웃이 많지 않았는데, 이런 프로그램에서 이웃들을 사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가족 간에도 추억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도 지금처럼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이런 시간을 더 자주 가져야겠죠?”

글·사진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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