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한계 절감…그러나 이탈리아 소스를 얻었다

권은중의 나이 쉰에 떠난 이탈리아 요리 유학기 ⑳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마치며…얻은 것과 잃은 것

등록 : 2019-12-26 14:23 수정 : 2019-12-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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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 전부 쏟아부어

올해 3월초 만 50살에 떠났던 유학길

체력 고갈로 레스토랑 개원 꿈 접고

전문 조리인 되리라는 기대도 무너져

인턴 생활 동안 매일매일 만들던 소스

이질적 재료 잇는 징검다리 깨달으며

서양 요리 이해하는 지름길 되어주고

내년에 다시 나를 이탈리아로 불러내


나는 12월 초 이탈리아에서 귀국했다. 올해 3월 초 만 50살이라는 나이에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지 9개월여 만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탈리아 유학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 대부분을 투자한 유학길에서 나는 어떤 미래 가치를 만들었을까? 나의 요리 유학 대차대조표를 공개한다. 대차대조표라는 회계 용어를 쓰는 것은 나의 유학 생활을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①자본의 변동과 현금 흐름

내가 이탈리아에서 본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고대 로마의 유적도 중세 성당도 아니었다. 올리브 과수원과 포도밭이었다. 그곳에 이탈리아 음식의 뿌리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에 나의 열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탈리아 음식을 멋지고 맛있게 만드는 전문 조리인에 대한 열정이었다. 20년 넘게 앉아 있던 책상에서 일어나 이제는 불 앞에 서서 칼을 휘두르고 싶었다. ‘펜보다는 칼’이 유학의 슬로건이었던 셈이다. 나머지 하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인식론적인 열정(앎의 열정)이었다. 요리와 역사에 관련한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음식이 어떻게 서양 음식의 뼈대가 됐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나는 사실상 레스토랑 개업 꿈을 접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내 체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가 유학을 오기 3년 전부터 스쿼트과 등산으로 아무리 하체의 힘을 단련했다고 하지만 나의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두 달이면 충분했다.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의 한국인 동기를 비롯해 브라질·미국·러시아 등 전세계에서 온 학생들은 수업 뒤 기숙사 마당에서 축구를 하거나 와인을 마셨다. 봄의 이탈리아는 찬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바닥난 체력을 한탄하며 그날 배웠던 레시피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나는 재학 중에 딱 하루, ‘밤의 교장’이라고 불린 구내식당 주방장인 마리오의 생일 파티에만 참석했다.

이어진 인턴 생활은 약간이라도 남아 있는 나의 체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냈다. 하루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쉴 새 없이 노동해야 했다. 이탈리아에서 인턴 노동은 슬프게도 무급이다. 나는 지금도 이 ‘슬픈 노동’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 유학에서 조리 전문가의 식견을 키웠을지는 몰라도 체력과 열정이라는 요리사로서 가장 중요한 핵심 자본의 상당 부분을 잠식당했다.

셰프로 성장할 가능성도 3월 초 떠날 때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나의 거의 유일한 현금 자산인 퇴직금을 투자해 유학을 떠났지만 귀국 후 나의 현재 수익은 제로에 가깝다. 체력과 열정을 잠식당했으니 미래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안이 없는 손익계산서와 현금 흐름표는 ‘투자자’이신 아내의 지청구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초라한 대차대조표에도 불구하고 나는 초조하지 않다. 숫자로는 잡히지 않는 무형의 자산 덕분이다.


②자산의 증가와 회생 가능성

인턴을 했던 레스토랑은 매일 소스 20여가지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다. 사진은 냉장고 청소를 위해 꺼내놓은 소스통들이다.

나의 가장 큰 자산은 소스에 대한 이해다. 학교 졸업 뒤 인턴 레스토랑에서 내 담당은 셰프를 도와 식자재를 정리하고 소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하자마자 매일 4~6㎏의 빵을 만들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녁 시간 전까지 채소나 생선을 손질하거나 소스를 만들었다. 소스를 만드는 일은 고된 인턴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소스를 이해하는 건 서양 요리를 이해하는 지름길이었다. 소스는 이질적인 재료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재료가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준다. 나는 소스로 서양 요리의 문리를 깨우쳤다. 소스가 나를 언제든 다시 주방에 설 수 있게 해줄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인턴 레스토랑 ‘라베툴라’의 셰프 프랑코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는 책과 학교에서는 가르쳐줄 수 없는 소스의 핵심을 몸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인턴을 했던 레스토랑 ‘라베툴라’의 셰프 프랑코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덕분에 나는 소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턴이 끝나고 10월 초 시칠리아로 떠나기 전날 그와 어깨동무를 처음 해보았다.

와인에 대한 이해도 내 중요한 자산의 하나다. 유학을 오기 전까지 나는 포도주는 단순히 과시의 수단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와서 포도주가 서양 음식의 한 축이라는 걸 알게 됐다. 헤이즐넛을 묻혀 튀긴 양고기를 레드 와인 없이 마신다는 것은 이탈리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치킨을 맥주와 함께 먹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무형의 자산인 와인은 나를 뜻밖의 세계로 이끌었다. 10월 초 인턴을 마치고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 1500㎞ 떨어진 남쪽 시칠리아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학교 와인 수업에서 내가 가장 맛있게 마셨던 시칠리아 포도주를 마셔보기 위해서였다. “귀국 전에 시칠리아를 꼭 가보라”는 이탈리아 현지 친구들의 한결같은 조언도 한몫했다.

날 시칠리아로 이끌었던 지빕보 와인 리게아(맨 오른쪽 화이트 와인). 리게아는 바다의 요정 이름이다. 와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칠리아는 신화와 역사가 뒤엉켜 있는 에너지 넘치는 곳이었다.

시칠리아 와인은 내륙의 그것과 달랐다. 신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시칠리아 특유의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시칠리아는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다. 중동이 원산지인 포도주가 이탈리아에 가장 먼저 소개된 곳은 시칠리아였다. 그러나 아랍의 다디단 아프리카 포도 품종인 지빕보(알렉산드리아 모스카토)를 저온 발효시켜 상큼한 화이트 와인으로 변신시킨 것은 이탈리아인의 지혜였다.

와인뿐 아니라 파스타, 젤라토, 리조토도 비슷하다. 하지만 유럽으로 퍼진 그것들은 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커피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지만 에스프레소 원산지는 이탈리아인 것처럼 말이다. 시칠리아는 지금도 아랍의 활력과 유럽의 냉철함이 교차한다. 그 현장은 생생하다 못해 거의 날것에 가깝다. 시칠리아에서 나는 음식과 관련된 내 시야를 중동과 아프리카로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③‘음식 공부 2.0’의 미래 가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레스토랑 개업도, 주방 스태프로의 취업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제안은 달콤했다. 게다가 이탈리아 전체가 아니라 1~2개 지역을 음식으로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시칠리아를 염두에 둔 것 같은 제안이었다. 나는 제안을 수락했다.

와인에 대한 이해는 아무 연고 없는 시칠리아로 나를 떠나게 했다. 그 덕분에 출판 제의를 받았고 내년에도 이탈리아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덕분에 철없는 남편이 레스토랑 개업 같은 허황된 꿈을 접길 바라는 아내에게 내년에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좀더 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내년 초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다. 내년의 ‘음식 공부 2.0’은 첫번째 유학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번에는 셰프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쓰기 위해 짐을 꾸린다. 올해 초 내가 그렇게 억누르고자 했던 인식론적인 열정이 두 번째 여행의 출발점이라는 점도 큰 차이다. 이탈리아에서 나를 구한 것은 전문 조리인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그 뒷전에 있던 인식론적 열정이었다. 이 열정은 때때로 먹물들의 쓸데없는 호기심쯤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의 중요한 자산이 된 소스와 와인에 대한 이해도 맨 처음 지적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했다. 결국, 칼이 아니라 펜이 나를 구한 셈이었다.

인턴 때 처음 낸 요리는 안티파스타였다. 오른쪽 보라색 꽃이 올라간 것부터 시계 방향으로 인살라타 루사, 바투타 디 비텔로(우리나라 육회와 비슷함), 비텔로 톤노다. 대부분 수셰프가 만들었고 나는 소스를 만들거나 플레이팅을 했다.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와 달리 이탈리아 요리학교나 레스토랑의 주방을 빼고, 시칠리아의 올리브 과수원, 토스카나의 포도밭, 에밀리아로마냐의 프로슈토(이탈리아 생햄) 제작 현장 등을 돌아볼 계획이다. 올리브오일·포도주·프로슈토 등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탈리아 요리의 뼈대를 이루는 재료다.

내가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런 재료에 대한 앎의 열정을 충실하게 채운다면 나는 첫 번째 유학에서 포기했던 레스토랑 개업에 대한 꿈을 다시 갖게 될 수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만으로도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내년 이탈리아에서의 ‘음식 공부 2.0’을 기대하는 이유다. <끝>

글·사진 권은중 <음식경제사> <독학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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