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따쿵~따’ 옛 가락에 ‘동시대성’을 입히다

창조적 전통연희 만들어가는 서울문화재단 ‘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 사업’

등록 : 2020-01-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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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연희에 예술성 북돋우기 위해

지난해 ‘전통연희 증강랩’ 등 교육 진행

타 예술분야와 교류 통해 새로움 보태

“올해는 창작품 공연 기회 많이 만들 것”

지난 12월2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어울림광장에서 전통연희그룹 연화 단원들이 빛이 들어오는 모자를 쓰고 투명인간의 망토 같은 공연복을 입고 풍물굿판을 벌이고 있다. 전통연희에 바탕을 두면서도 새로움을 선보인 이날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이 2019년 9~12월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전통연희 증강랩’을 통해 개발된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쿵~따쿵~따 쿵~따쿵~따. 그랑~그랑~ 그랑~그랑~.”

지난 12월27일 저녁 7시15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광장. 어둠이 깔린 광장에서 익숙한 장구와 꽹과리 소리가 나자 연말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이 반사적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시민들이 발견한 것은 6명 연희그룹의 ‘익숙하지 않은’ 복장이었다.

연희그룹 단원들이 쓴 모자에선 반짝반짝 밝은 빛이 흘러나왔고, 그들이 입은 공연복은 마치 투명인간의 망토처럼 겹겹의 투명한 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짧은 시간에 연희그룹 주변으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나이 든 이들은 익숙한 가락에 귀를 쫑긋하고, 젊은층은 복장의 새로움에 눈을 떼지 못한다. 디디피의 빛축제인 ‘서울라이트’ 행사의 하나로 펼쳐진 이날 공연은 연희그룹 연화(대표 이지희)가 펼친 ‘투명인간’이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지난 12월2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어울림광장에서 전통연희그룹 연화 단원들이 빛이 들어오는 모자를 쓰고 투명인간의 망토 같은 공연복을 입고 풍물굿판을 벌이고 있다. 전통연희에 바탕을 두면서도 새로움을 선보인 이날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이 2019년 9~12월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전통연희 증강랩’을 통해 개발된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전통연희에 기초하면서도 어딘지 낯선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서울문화재단이 2019년 9~12월 진행한 ‘전통연희 증강랩’을 통해 탄생했다. 전통연희 증강랩은 서울문화재단이 2019년 처음 시작한 ‘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 사업’의 하나다. 전통연희를 실험적 방법(랩)을 통해 새로움을 강화하겠다(증강)는 취지다.

서울문화재단은 이 증강의 목표가 “동시대성을 담은 새로운 연희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동시대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희에서 예술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증강랩 사업을 주관한 서울문화재단 예술축제팀 서금슬 대리는 “개별 연희그룹의 역량은 굉장히 뛰어나지만, 연희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진부하다. 항상 있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며 “이는 연희 부문이 예술임에도 다른 예술 부문과 교류가 거의 없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왜 이런 ‘분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사실 연희 공연은 어쩌면 가장 흔하게 길거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예술이다.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전국적으로 연희그룹은 114개, 회원 수는 3700여 명이다. 이 중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41곳, 1천여 명에 이른다. 40여 곳일 정도로 적지 않은 숫자가 수도권에 있지만, 이들의 일정은 항상 바쁘다고 한다. 지자체 등에서 하는 축제 등에 대부분 전통연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지희 연희그룹 연화 대표는 “축제 등에서 공연하는 전통연희는 고정된 틀로 짜여 있어 ‘나만의 작품’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이런 고정된 틀은 시민들이 “진부하다”고 느끼게 한다. 이에 따라 이 대표는 ‘나만의 작품’ ‘동시대성’ 등에 대한 열망을 안고 전통연희 증강랩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증강랩에는 이 대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39살 이하 전통연희 전문가가 10여 명 참여했다.

‘동시대성을 구현하기 위해 실험적 방법’을 추구한 덕에 증강랩의 강사 구성 또한 독특하게 이루어졌다. 강사진에 김난령 스토리텔링 연구가, 김윤진 무용단을 이끄는 김윤진 대표, 시각예술작가인 장성진씨, 예술기획사 팩토리의 홍보라 대표, 가수 하림씨 등 전통연희와 무관한 사람이 다수 포함됐다.

이 대표는 증강랩 수업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김난령 스토리텔링 연구가와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장성진 시각예술작가는 워크숍 때 현장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소품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 대표는 “그런 활동을 난생처음 해봤다”면서도 “그 활동을 거치면서 현 시기 다른 분야 예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연희그룹 연화는 한국예술종합대학 전통예술원 연희과 졸업생들이 2018년 구성한 팀이다. 전통연희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지만, 증강랩 교육이 전통연희의 동시대성과 예술성을 고민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연희그룹 연화가 디디피에서 공연한 ‘투명인간’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지난 12월2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어울림광장에서 전통연희그룹 연화 단원들이 빛이 들어오는 모자를 쓰고 투명인간의 망토 같은 공연복을 입고 풍물굿판을 벌이고 있다. 전통연희에 바탕을 두면서도 새로움을 선보인 이날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이 2019년 9~12월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전통연희 증강랩’을 통해 개발된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사실 전통연희는 그 전통성과 친숙성 때문에 동시대성과 예술성이 잘 조화를 이룬다면, 그 대중적 파급력이 다른 분야에 비해 클 수 있는 장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놀이가 대표적 사례다. 1978년 탄생한 사물놀이는 기존의 풍물가락을 실내 연주에 적합하게 재구성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그 이후 그런 창의적인 새 작품이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연희의 동시대성을 강조한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 사업’이 주목되는 이유다.

서울문화재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는 더욱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투명인간’과 같은 새로운 작품을 공연하는 기회도 더욱 많이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통연희 부문에서 40여 년 전에 탄생했던 사물놀이와 같은 ‘새로운 히트 상품’이 출현할지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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