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in 예술

타지의 ‘소수자 삶’ 조명

‘피어리스’ 연출 이오진

등록 : 2020-01-0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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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신을 또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는 경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시안 2세의 쌍둥이 자매가 저지른 살인을 다룬 블랙코미디 <피어리스: 더 하이스쿨 맥베스>(9~19일,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를 연출한 이오진(33)씨는 작품의 원작가가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의 한 대목을 이렇게 인용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연극 비평을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에 우연히 접한 한인 1.5세 극작가인 박지해의 ‘피어리스’를 토대로 만든 연극이다. 줄거리는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은 쌍둥이 자매가 소수인종 특별전형에 같은 반의 백인 남자가 합격하자, 그를 죽이고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이다. 이 연출가는 “작품이 웃기면 웃길수록,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의 폭력을 생각하게 됐다”며 전장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인을 선택한 그들에게 “과연 무엇 때문에 비극이 초래됐을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작품의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파국의 길을 선택하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모티브로 따왔다.

연출가 자신도 “자매가 선택한 대안이 과연 이것뿐일까?”라 되묻지만, 자신도 유학생으로서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말하든지 미국 사회는 저를 ‘20대 동양인 여성’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수줍고 약한 존재처럼요.” 그는 이것은 최근 솔직함 때문에 사회로부터 죽임을 당한 한 여자 연예인의 자살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타지에서 당했던 소수자의 삶과 그들이 겪었던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여성·청소년·소수자가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무기가 필요할지 고민했어요.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공감대라도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 이오진의 본명은 이정현으로 극작가와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 비평’을 공부했다. <가족오락관>(2009)의 극작가로 데뷔하여 <바람직한 청소년>(2014), <오십팔키로>(2016) 등을 썼고 <페미니즘 청소년극>(2017),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2018)를 연출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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