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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중독’ 30년, 병이 더 깊어지다

재즈 LP 수집 에세이 ‘째째한 이야기…’ 펴낸 심장내과 의사 방덕원씨

등록 : 2020-01-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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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80장의 재즈뮤지션·구매기 소개

30년간 수집 CD·LP 등 4500장 모아

“50달러 이하 음반에서 명반 찾기 재미”

올 하반기 재즈 LP 가이드북도 낼 생각

최근 재즈 LP 에세이집 <째째한 이야기…>를 펴낸 방덕원 순천향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15일 병원 근처 한 카페에서 <서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 앞에는 그가 낸 책과 책에서 소개한 재즈 LP가 놓여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재즈 음반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머리에서 엔도르핀이 뿜어져 나온다. 그런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재즈 중독’이라는 중병에 걸린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최근 펴낸 저서 <째째한 이야기-째지한 남자의 째즈이야기>(책앤 펴냄)에서 자신을 일러 ‘재즈 엘피(LP) 수집이라는 중병에 걸린 환자’로 비유한 방덕원(50)씨는 현역 의사이다. 순천향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방씨는 그러니까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신분이지만, 스스로는 30년 넘게 재즈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환자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89년 대학 1학년 때 라디오 ‘황인용의 영팝스’ 프로그램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의 ‘세인트 엘스웨어의 테마곡’을 듣고 감동받은 그날부터 30년째 재즈 판을 모으기 시작해 현재 시디(CD) 1500장, LP 3천여 장의 재즈판을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음반 컬렉터 중 한 명이 됐다. 테너 색소폰의 거장 소니 롤린스의 명반 ‘색소폰 콜로서스’(1956년 프레스티지 출시)는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초반만 빼고 모노와 스테레오반 등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5종류나 보유하고 있다. 소니 롤린스의 또 다른 명작 앨범인 <웨이 아웃 웨스트>(1957년 컨템포러리)는 무려 7종류의 LP를 구했다고 하니, 그의 재즈 LP 수집 병도 중증인 셈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자신이 보유한 4500장의 재즈 판 중에서 재즈 음반사적으로 일반적으로 높게 평가받거나, 본인이 들어서 남들에게 권할 만한 판으로 평가한 LP 80여 장을 중심으로 판과 관련한 재즈 뮤지션은 물론, 구매에 얽힌 추억까지 재미있게 풀어냈다. 재즈는 국내에서는 여전히 어렵고 마이너한 음악 장르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재즈 초보자도 술술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특히 태블릿피시를 이용해 LP 재킷과 레이블 모양을 직접 그려서 책 안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보는 재미까지 더했다. 초고는 순수하게 음반 소개 위주였으나 그렇게 해서는 책이 안 팔린다는 주위의 권고로 80%까지 완성한 초고를 몰고하고 완전히 새로 썼다고 한다. 소개하는 음반을 좋아하게 된 계기 등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곁들여 쓰다 보니 자신도 재미있게 썼다고 방씨는 말했다.


30년간 재즈 판을 모은 재즈 컬렉터이지만 본인은 어디까지나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자제력이 있는 환자라는 것이다.

“요즘은 100달러짜리 재즈 판도 한 달에 1~2장 사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론 50달러 이하의 재즈 판만을 구매하는 나름의 구매 원칙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아내와 약속도 했구요. 비싼 판을 한두 장 사는 것보다 저렴하고 안 알려진 판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20~30장 구매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쿨재즈 전문 레이블 모드(MODE)사에서 29장 발매됐는데 다 모았어요. 초반이라고 해도 50달러를 넘지 않아 큰 부담 없이 모았죠. 그리고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재즈 판만을 중점적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자제력이 없으면 좋아하는 취미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는 주변 동호인들에게도 블루노트, 프레스티지 등 값비싼 유명 재즈 레이블의 유명한 초반만 찾지 말고 폭넓게 재즈 LP를 들어보라고 권유한다.

그에게 재즈 음반 수집의 큰 분수령은 2011~2012년 미국 체류 시절이었다. 재즈의 본고장 미국에서 값싸고 귀한 판들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특히 45회전, 78회전 등 지금의 LP 이전 시대에 나온 판들이 의외로 음질이 좋은 것을 알고 많이 수집했다고 그는 말했다.

재작년부터는 “내가 듣는 판만 듣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보유한 LP 3천 장 모두 들어보기를 시도해 1년 반 만에 ‘완청’에 성공했다고 한다. 주중에 2~3시간, 주말에 10시간 이상 음악을 듣는 편이어서 주중에 3~4장, 주말에 10~15장 정도를 들었더니 한 달에 200장 정도 들었다고 한다. 완청 프로젝트를 통해 그전에는 별반 감흥이 없던 판도 새롭게 다가오거나, 왜 명반인지 새삼 “명불허전이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감성이 저절로 커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아내나 아이들로부터 ‘지청구’를 들을 법도 한데 그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의사이다보니 직업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술과 담배, 그리고 골프로 해소했는데 10년 전에 다 끊고 집에 일찍 들어와 거실에서 음악 들으면서 아내 옆에서 책을 많이 읽으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재즈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방씨는 재즈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bbjazz’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부터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등 피시통신에서 재즈 관련 글을 많이 올려 필명을 날렸다. 피시통신 시절 그의 필명을 알던 한 동호인은 몇 년 전 20여 년 만에 ‘bbjazz’의 실존인물을 만난 것을 계기로 그와 함께 재즈카페(JBLinjazz)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올 하반기 본격적인 재즈 LP 가이드북을 낼 생각이다. 재즈 회사별 레이블 가이드와 장르별, 레이블별 필청반 등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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