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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 예술지원에 깊이를 더하다

영화평론가 활동 병행하는 최재훈 서울문화재단 예술기획팀장

등록 : 2020-01-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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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30억 기반지원사업 진행하며

2017년 영화평론가로 정식 등단해

예술활동-행정 거리 만만치 않지만

둘 사이 ‘소통의 가교’로 성과 나타내

정식 등단한 영화평론가이기도 한 최재훈 서울문화재단 예술기획팀장이 지난 23일 서울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영화평론과 예술지원사업의 관계를 얘기하며 밝게 웃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영화평론가’ VS ‘평론가들을 지원하는 서울문화재단 팀장’.

언뜻 보면 대립돼 보이는 두 가지 직함이다. 하지만 최재훈(48) 서울문화재단 예술기획팀장은 이 두 직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최 팀장은 지난해 12월 영화평론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평론가에게 수여하는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받았다. 이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발행하는 ㈜르몽드코리아가 수여하는 상이다. 공연·예술 전문지 <객석>에 몇 년 동안 써온 영화평론 등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최 팀장은 이에 앞서 3년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제37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 ‘늦깎이’로 등단했다. 당시 최 팀장은 김기덕 감독론 등으로 응모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평상은 씨네21평론가상과 함께 영화평론가가 되는 양대 관문으로 평가받는 상이다.

하지만 최 팀장은 영화평론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써온 베테랑이다. 씨네서울, 예스24 등에 게재한 시절부터 치면 벌써 20년 이상 영화평론을 써온 것이다. 최 팀장은 또 대학 재학 시절 “단편소설이나 영화평론이 일간지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르는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해왔다”고 말한다.

최 팀장은 1999년 한예종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서 5년간 브로드웨이 연극을 체험하는 등 견문을 넓혔고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기획 활동을 한 뒤 2010년 서울문화재단에 합류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서울무용센터 매니저, 문래예술공장 매니저 등으로 현장에서 직접 지원활동을 한 뒤 2019년 예술지원체계개선 TF팀장을 맡아 재단의 예술가 지원활동을 개선하는 작업을 지휘했다. 그리고 지난 13일부터 예술기획팀장을 맡았다. 1년에 30억원가량을 예술창작기반 조성 사업으로 지원하는 일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여기에 영화평론은 포함되지 않지만, 연극평론 등은 그의 팀에서 진행하는 지원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최 팀장의 활동을 보면, ‘한 마리도 잡기 힘든 토끼를 두 마리나 성공적으로 잡아온’ 느낌이다. 그런데 이 두 마리 토끼가 서로 크게 갈등을 빚는 것은 아닐까? 최 팀장은 오히려 “두 토끼는 서로 힘이 되는 관계”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평론을 접한 사람들에 따르면, 그의 평론은 쉽게 읽힌다. 최 팀장의 영화평론이 쉬우면서도 좋은 평론으로 평가받는 데는 그가 경험한 다양한 문화활동이 큰 힘으로 작용한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국립오페라단에서 오페라 음악을 접하고, 다시 서울문화재단에서 무용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경험한 것이 영화를 생생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공연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으니까 영화 속에 공연이 어떻게 녹아 들어갔는지, 공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원작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쉽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영화평론 활동도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영화평론가’라는 직함 자체가 예술가들과 서울문화재단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큰 힘이 된다. 사실 예술가 중에는 예술행정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이도 있다. “예술행정가들이 예술의 창의성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재단은 행정만 알지 예술가를 모른다”는 얘기를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최 팀장이 영화평론가로 정식 등단한 사실을 들으면,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활동에 대한 이해도를 다시 평가하고 호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영화평론 활동은 실제 예술행정에도 도움이 된다. 최 팀장은 “영화평론을 병행하면서 재단의 예술가 지원활동에서 좀더 균형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평론가와 서울문화재단 예술기획팀장이라는 두 역할을 감당한 덕에 최 팀장은 예술행정이 갖춰야 할 ‘엄격한 관리’와 예술창작자들이 요구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균형을 갖추는 능력을 좀더 갖게 됐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이런 균형감을 더욱 키우기 위해 직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발급하는 ‘예술인 패스’를 받으면서 어떤 행정절차가 예술가들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가는지 체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최 팀장은 올해 예술가들이 일일이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지원 프로그램을 다수 만들었다. 물론 예술행정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다.

최 팀장은 앞으로도 영화평론과 예술행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빠듯하게 시간을 쪼개 쓴다. 즉 주중에는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을 힘있게 진행하고, 주말에는 영화를 5~6편씩 몰아보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개봉관에서 꼭 봐야 할 영화는 평일 퇴근 뒤 극장을 찾아 본다.

“영화를 어렵게 비평하고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영화를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시에 현장 예술가와 소통할 수 있는 행정 전문가로 커가는 꿈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주중과 주말을 모두 빽빽한 일정 속에 보내면서도, 최 팀장은 예술가와 예술행정가를 잇는 더욱 커다란 다리로 성장하겠다는 꿈이 가득하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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