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릉 가는 이유? 짙은 여름 녹음의 유혹 때문

전유안 기자가 추천하는 여름철 가볼 만한 서울의 왕릉들

등록 : 2020-07-02 15:41

크게 작게

유네스코 유산인 ‘서울 정취’ 가득한 곳

명성황후 능이었던 홍릉의 숲을 걷고

선정릉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하면

봉분의 굴곡만 봐도 명상에 빠져든다

선정릉 공원

서울만의 정취가 가득한 여행지를 찾는가. ‘조선 왕릉’이 답이다. 유교적 세계관을 모신 조선 사회의 유적으로만 보면 아쉽다. 선대의 엄숙한 추모지가 후대의 시원한 산책지로 변모한 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기운이 편안한 땅을 택했던 역사적 사실, 여기에 대를 물려 자연과 식생을 보호하는 등 엄격한 관리를 수반하자 자연스레 몇백 년 내공을 쌓은 ‘공원’의 모습을 갖췄다. 봉분이 만든 선의 굴곡도 다분히 명상적인데다 오늘날까지도 산 자와 죽은 자의 길을 구분하는 모습을 보면 ‘길’에 대한 동양적 세계관을 사유해볼 기회도 된다.

잠깐 우리의 상식을 점검해보자. 서울과 서울 근교엔 조선 왕릉이 몇 기 있을까? 답은 40기다. 북한 개성에 있는 태조 왕비 신의왕후 제릉과 정종 후릉을 합해 총 42기 왕릉이 한반도에 있다. 500년 역사를 지닌 왕조의 무덤이 대도시 가까이 보존된 건 드문 일이다. 이 때문에 조선 왕릉은 그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40기 모두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유유자적 여름날 숲길 산책 ‘홍릉수목원’

여름엔 왕릉을 걷는다. 코로나19로 주말 나들이가 힘겨운 요즘 호젓한 기운이 감도는 왕릉 나들이는 숨통 트이는 선택이다. 서구식 대중공원(public park)을 흠모해 굳이 벤치마킹해 건설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뒤따른다.

왕릉 중에서도 ‘홍릉수목원’은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녹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6호선 고려대입구역에서 가까운 홍릉수목원은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관장한다. 총 2035종(목본 1224종, 초본 811종) 식물이 자생하고 2만여 본의 자생식물을 수집·보존한다. 침엽수원, 활엽수원, 초목원 등 탐방로가 여름날 제대로 빛을 발한다. 1930년대 일본 식물학자가 처음 발견해 ‘기준 표본목’이 된 문배나무, 속리산 정이품송의 후계목, 풍산가문비나무 후계목 등 ‘이름난’ 나무들도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홍릉수목원 숲길

홍릉수목원 어정

‘홍릉’(洪陵)은 명성황후의 능이었다. 일제에 시해당한 조선의 마지막 왕비, 명성황후의 능을 모셨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고 남양주로 이장해 합장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같은 자리에 임업시험장이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 수목원’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지만 터의 역사를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연유다. 천장산 중턱에 ‘홍릉 터’가 남아 있다. 산책길엔 고종이 잠시 앉아 목을 축였다는 우물 ‘어정’ 등이 남아 옛 시간을 전해준다.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30분 남짓 걸린다.

코로나19로 이용 수칙이 바뀌었다. 평일엔 예약자에 한해 숲해설가와 돌아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토·일 자유입장만 가능하다. 입장시 마스크는 필수다. 월요일은 쉰다.


경춘선 숲길이 지척 ‘태릉과 강릉’

노원구 공릉동엔 ‘태릉과 강릉’이 있다. 태릉은 제11대 중종의 둘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강릉은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를 모신다. 태릉과 강릉 사이에 대한체육회 소속인 태릉선수촌이 있어 지명이 익숙한 편이다.

태릉과 가까운 경춘선숲길

태릉의 소나무숲은 계곡까지 품은 호젓한 숲길이다. 제한개방으로 관람 해설은 3~6월과 9~11월, 도보로 약 1시간 걸리는 숲길 개방은 5~6월과 10~11월에 한다.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보니 대안으로 많이 찾는 곳이 태릉과 강릉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경춘선 숲길’이다.

경춘선숲길

공릉동에 남은 옛 간이역 ‘화랑대’ 역사에서 시작하는 경춘선 숲길은 여름날 멀리 떠나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도 달랠 수 있다. 1930년부터 서울과 춘천을 내달려온 경춘선은 유독 청춘과 낭만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이었다. 1999년 경춘선 복선 철도를 착공하며 무궁화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2010년 성북역~화랑대역 구간을 폐지하며 버려진 철길을 지난해 숲길로 연결했다.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과 우거진 숲을 넘나드는 구불구불한 산책길이 매력이다.


북적이는 도시 속 허파 ‘선정릉 공원’

선정릉 공원

9호선과 분당선이 교차하는 선정릉역에서 10여 분 거리엔 ‘선정릉 공원’이 있다. 4월부터 솔향기와 꽃향기가 흐드러진 숲길이 여름이면 절정에 오른다. 선정릉은 조선 제9대 성종과 그 계비 정현왕후 윤씨를 모신 선릉, 제11대 중종을 모신 정릉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강남 한복판에 있어 사람들로 붐빌 법하지만, 오히려 사계절 고즈넉한 정취가 으뜸인 곳으로 여름에 놓치면 아쉽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