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in 예술

대중음악의 숨은 자양분

‘빽판의 전성시대’ 최규성씨

등록 : 2020-07-16 15:17 수정 : 2021-03-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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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싶은 흑역사이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국내 팝송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59)씨가 <빽판의 전성시대>를 발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560쪽이 넘는 이 책은 불법음악이 판치던 시절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대중음악이 걸어온 길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그가 책을 낸 계기는 재작년 청계천박물관에서 열린 ‘빽판의 시대’ 전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빽판들을 보며 많은 관람객이 추억에 빠진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후 최씨는 회현상가, 동묘, 청계천을 비롯해 부평, 동두천, 파주, 대전, 부산까지 전국을 헤매며 2년 넘게 빽판을 수집했다.

그 바람에 주머니가 빌 정도로 수집한 1만 장에 가까운 원판과 라이선스 중 4천 장 정도를 선별해 책을 완성했다. “트로트 일변도의 대중음악에 다양성을 수혈하면서 어느 정도의 자양분이 됐어요.”

1972년 음반법 제정 이후에도 백화점 진열대에서 중심을 놓지 않을 정도로 빽판은 전성기를 달렸다. 심지어 라벨엔 정부에서 발행한 필증까지 붙였으니 저작권 개념조차 없던 시대의 해프닝이라 기억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법음악을 폐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책이 중장년에겐 추억의 대상이지만 다양한 팝송이 언제 유입됐고, 누가 번안했는지에 집중해 그 의미를 더했다.

침체 일로의 음반 시장에 회생의 기운을 수혈한 빽판은 최근 뉴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아날로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추억의 산물이자 한국 팝 문화 형성을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것에 비해 대중음악의 기록이 열악하다고 말한 최씨는 현시대에 던지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100년이 넘는 대중음악사에서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데도 아이돌과 트로트 등 일부만 방송하는 것은 바뀌어야 합니다. 다양한 체질로 개선해야만 음악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거든요.”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 최규성은 강릉KBS 어린이합창단 단원을 거쳐 한국일보 사진기자와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와 대중음악평론가이다. 주요 저서로는 <대중가요 LP 가이드북>(2014), <골든 인디 컬렉션>(2015), <걸그룹의 조상들>(2018)이 있고, 공저로는 <음악가의 연애>(2016), <한국의 인디레이블>(2009),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08) 등이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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