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고른 작가, “느슨하지만 동시대성에 주목했다”

인공지능과 예술의 만남 ① ‘사적 인연 없는 예술가 선정’ 시험한 ‘사적인 노래1’

등록 : 2020-08-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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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명 신청자 중 딥러닝 통해서 3명을

AI 알고리즘인 ‘큐라트론’이 직접 선정

인간 선정 때보다 주제 긴밀성 낮지만

선정 작가들, 현대 일상에서 소재 찾아

인공지능(AI)의 영향력이 무섭게 커지고 있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최근 예술에 대한 인공지능의 영향은 ‘인간 닮기’에서 ‘인간 넘어서기’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AI를 활용한 인간 닮기 예술의 대표적 사례는 2018년 10월 인공지능 화가 ‘오비우스’가 그린 ‘에드몽 드 벨라미’라는 작품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린 이 작품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 낙찰가 1만달러보다 43배 높은 43만2천 달러(약 5억원)에 낙찰돼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현재는 인공지능 예술이 ‘인간의 개인적 친분을 뛰어넘는 객관성 찾기’나 ‘인간의 감성을 색깔로 표현하기’ 등 기존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시도를 해보는 단계로 나아가는 듯하다. 최근 진행되는 두 전시회를 통해 인공지능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차례로 살펴본다.

편집자



목홍균 큐레이터

“큐레이터의 사적 인연을 배제하고 객관적 요소만을 가지고 전시 작가를 선정할 방법은 없을까?”

오는 19일까지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사적인 노래1’의 출발점이 된 아이디어다. 이 전시를 기획한 목홍균 큐레이터는 3년 전인 2017년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크리스틴 마셀과 카셀도쿠멘타의 총감독인 아담 심치크가 각각 배우자와 연인을 전시에 초대했다는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고 한다.

목 큐레이터는 ‘사적 인연을 배제한 작가 선정’을 위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가 채택한 알고리즘은 스웨덴에서 개발한 큐라트론(curatroneq.com)이다. 8년 전 개발된 큐라트론은 어떤 전시회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참여 희망 의사를 밝히면, 그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온라인 그룹에 초대한다. 알고리즘 큐라트론은 이후 참여자들에게 ‘전시회를 같이 하고 싶은 작가를 고르시오’ 등의 질문을 던진 뒤, 딥러닝 분석을 통해 최종 전시 참여 작가를 선정한다. 큐라트론은 지난 8년간 이미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에서 15개 정도 전시회의 작가를 선정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목 큐레이터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지난해 4월 ‘2020 두산갤러리 전시기획공모작’으로 선정된 뒤 준비 기간을 거쳐 같은 해 10월 큐라트론에서 전시 참여 작가 선정작업을 진행했다. 10~12월 약 2개월 동안 전세계에서 350여 명의 작가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큐라트론은 이 작가들을 그룹으로 만들고 여러 질문을 던진 뒤 3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선정된 세 작가는 현대의 일상 속에서 작품 소재를 찾았다. 프랑스 작가 발레리안 골렉은 이케아에서 주문한 금속으로 만든 선반 <모듈>을 출품했고,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임스 클락슨은 택배 상자를 펼쳐놓은 모습을 금속 재질로 표현한 작품 <드롭박스>를 내놓았다. 캐나다 작가 알렉시아 라페르테 쿠투는 17세기 영국의 분수 모양 조형물 <생 제임스 공원의 분수: 관(管)>을 만들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콜레라 예방을 위해 분수에서 물을 많이 흘려보냈다고 한다. 현재 코로나19 사태의 빠른 치유를 염두에 둔 작품으로 읽힌다.

발레리안 골렉, <모듈>, 2020, 금속선반, 가변 크기.

제임스 클락슨, <드롭박스>, 2020, 레이저 커팅된 강철.

알렉시아 라페르테 쿠투, <생 제임스 공원의 분수: 관(管)>, 2020, 석고, 유리섬유, 140(지름)×17(높이)㎝.

목 큐레이터는 “세 작가의 작품이 긴밀한 주제 의식으로 엮여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2016년 자신이 직접 작가들을 모두 선정했던 ‘홈리스의 도시’(전시 장소 아르코미술관)라는 전시회와 크게 다른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주거 문제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이번 전시 주제는 조금 느슨해보인다. 그러나 목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 또한 “세 작가가 대중화하고 물질화한 현재 세계의 모습을 자신의 시각에서 전하고, 병든 현대 사회의 빠른 치유를 바라는 등 예술의 시각으로 동시대를 바라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봤다.

목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는 큐라트론이 선정한 2명의 큐레이터와 블라인드 방식을 통해 선정한 3명의 큐레이터가 뽑은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는 전시를 계속 기획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목 큐레이터의 이후 작업에서 ‘인간적 요소와 기계적 요소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에드아르도 레옹, <라스 포사스의 헤로인>, 2019, 종이에 잉크젯, 237×170㎝.

아나 윌드, <테크노 출산-미래 가능한 선물(先物)의 노래>, 2019, 단채널비디오, 15분13초.

유비호, <풍경이 된 자 #4>, 2019, 단채널비디오, 24분13초.

정재희, <홈보이드>, 2018, 스마트텐트, 스마트폰, 태블릿컴퓨터, 다육식물 외,150×255×345㎝.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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