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만한 전시&공연

5·18의 고통, 배우의 신체, 행위, 오브제 통해 변주·반복돼

휴먼 푸가(18~29일)

등록 : 2020-11-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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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할 때, 연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슬픔, 분노, 연민 등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고통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방법이 궁금했다. 예를 들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존자와 망자의 경험과 증언을 토대로 서사 방식으로 연극을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초연 이후 오는 18~29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재연하는 <휴먼 푸가>는 이런 경우에 오브제(상징적 물체)를 활용해 인간의 감정을 표현했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가 원작인 이 공연은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이후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그려냈다. 작품은 소설을 무대화하는데,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배우는 단지 연기와 춤, 노래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과 기억, 행동은 무대 위 배우의 신체, 행위, 오브제를 통해 이미지의 고리를 따라 변주되며 반복된다. 한 사건에서 파생된 ‘고통’이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는 전개는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데, 마치 음악에 등장하는 푸가(모방 반복 형식의 악곡)와 닮아 보인다. 각 장면이 독립적이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교차하며 새롭게 직조되는 방식.

공연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허물어진 극장에서 거대한 죽음과 사회적 고통을 관객 앞에서 펼쳐낸다. 서사의 맥락은 처음부터 끊어져 관객은 인물의 기억과 증언을 단편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소설을 무대화하는 데 오랜 고민을 했다는 배요섭 연출가는 “이미 소설로 충분한 작품을 연극으로 제작하는 것은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고, 각인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연극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 21일에는 한강 작가와 배요섭 연출가가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이어진다. 올해 <휴먼 푸가> 입장권을 소지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장소: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시간: 화~금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3시 관람료: 3만원 문의: 02-758-2150


글 홍지형 서울문화재단 홍보아이티(IT)팀

사진 남산예술센터 이승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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