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강감찬의 지팡이였던 굴참나무, 그를 통해 영웅을 본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⑫ 서울시 관악구 오래된 나무와 숲

등록 : 2020-12-03 14:32 수정 : 2021-04-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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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벌린 관악산 가운데 있는 낙성대

귀주대첩의 영웅, 나무들은 기억한다

공원 전시관엔 ‘강감찬 향나무’ 반기고

굴참나무는 장군 대신 마을을 지킨다

강감찬 향나무.

서울 남쪽에 우뚝 솟은 관악산의 지맥이 서쪽으로 흐르며 삼성산을 세우고 북서로 흘러 호암산에 닿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산줄기는 이내 북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진다. 관악산이 양팔을 벌려 품고 있는 가운데 낙성대가 있다. 낙성대, 별이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는 강감찬 장군과 함께했다는 향나무와 그 후계목을 보았다. 강감찬 장군이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자랐다는 설화 속 나무는 굴참나무다. 강감찬 장군의 나무들을 돌아보고 관악산 품으로 들어가 ‘숲속의 숲’에서 싱그러운 숨을 쉬어본다.


2014년 밑동 찾아낸 강감찬 향나무


948년 어느 날 관악산 북쪽, 산줄기가 감싸 안은 마을 어느 집으로 큰 별이 떨어졌다. 그 집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치고 귀주대첩의 대승을 이룬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의 탄생 설화다. 후대 사람들은 별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그곳을 낙성대라 했다.

관악구 낙성대동 주택가 골목 나무들이 빼곡한 작은 쉼터에 비석이 보인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을 알리는 ‘강감찬 장군 낙성대 유허비’다. 유허비 옆에 170년 넘은 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원래 이곳에는 강감찬 장군과 함께 자랐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있었다. 1968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높이 17m, 둘레 4.2m 정도로 서울에서 제일 큰 향나무였다고 한다. 고사한 이후 지정 보호수에서 해제됐다. 고사한 향나무는 생가터 소유주가 바뀌면서 잘린 뒤 사라졌는데, 2014년에 두 갈래로 갈라져 자란 나무의 밑동 중 하나를 겨우 찾았다. 지금 있는 향나무는 1996년에 원래 있던 향나무 대신 심은 것이다.

향나무와 유허비가 어울린 작은 쉼터 양지바른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걸음마를 막 뗀 아이와 엄마가 유허비 앞을 지나며 고양이를 보았다. 아이는 이곳에서 고양이를 자주 본 모양이다. 무서워하지 않고 아장아장 걸어서 고양이에게 다가간다. 고양이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사뿐사뿐 걸어 자리를 옮긴다.

강감찬 장군 생가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낙성대공원으로 향했다. 2014년에 찾은, 강감찬 장군 집터에 있던 향나무가 공원 내 강감찬 전시관에 있다. 전시관 문을 열자마자 ‘강감찬 향나무’가 보였다. 두 줄기로 자란 밑동 중 한 줄기의 일부였지만 단단하고 기운찬 모습이었다.

전시관을 나와 강감찬 장군을 모신 사당인 안국사로 향했다. 그 마당에서 3층 석탑을 보았다. 강감찬 장군 생가터 옛 향나무 옆을 지키던 탑이다. 석탑에 ‘강감찬 낙성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73년 낙성대공원을 만들 때 안국사를 신축하면서 석탑을 지금의 자리에 옮긴 것이다.

안국사에서 강감찬 영정을 보고 발길을 돌린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길, 광장에 세워진 말을 타고 내달리는 강감찬 장군상 뒤로 관악산의 불꽃 같은 능선이 보인다.

강감찬 장군 낙성대 유허비와 170년 넘은 향나무.

천연기념물 굴참나무와 보호수 느티나무

낙성대에서 서쪽으로 직선 거리 4㎞ 정도 되는 곳에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나무가 또 한 그루 있다. 관악구 신림동 건영2차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71호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가 그것이다.

강감찬 장군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나무로 자랐다는 설화가 전한다. 사람들은 이 나무가 1000년 정도 됐다고 아는데, 실제 나이는 250살 정도로 추정된다. 1000년 나무는 원래 있던 나무이고 그 나무가 죽고 나서 후계목이 자란 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굴참나무가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굴참나무 출입문 옆에 ‘여러분의 소원을 잘 들어주는 굴참나무 굴참마을의 자랑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천연기념물 제271호 신림동 굴참나무.

아파트 단지 도로보다 낮은 곳에서 뿌리를 내린 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져 자란다. 가지 끝에 몇 개 남지 않은 갈색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무 옆에 재활용 분리수거 통이 있어 사람들이 종종 그곳을 찾는데, 사람들은 고목의 겨울맞이가 익숙한 듯 앙상한 가지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지나친다.

관악구 난곡동 697-40에 400년을 넘긴 느티나무를 보러 발길을 옮긴다. 신림동 굴참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걷기로 했다. 느티나무 고목은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었다. 언뜻 보기에 400년 넘은 나무로 보이지 않았는데, 나무 둘레를 돌며 자세히 보니 그 세월이 느껴졌다.

겨울 해는 짧아서 서너 시만 돼도 거리가 을씨년스럽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굴참나무와 느티나무를 생각해본다. 겨울나무의 서정이 잎 진 자리 빈 가지에 가득했다.


절벽 위의 소나무, 숲속의 숲

다음 날 오전에 관악산을 찾았다. 서울둘레길 5코스 중 일부 구간을 걷기로 한 이유는 바위 절벽에서 자란 어린 소나무 한 그루와 관악산 숲속에 있는 숲속 쉼터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했다. 넓은 시멘트 포장길을 걷다가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부터 호압사까지는 숲이 좋은 길(도란도란 걷는 길)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이름대로 숲이 좋은 길이다. 서울둘레길 5코스와 길이 겹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가에 장승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나왔다. 장승들은 해학적이고 친근한 표정이다. 장승의 호위에 호젓하게 걷다가 서울둘레길에서 잠시 벗어나 돌산 국기봉에 올랐다.

태극기 휘날리는 바위 봉우리 뒤쪽으로 가면 벼랑 끝에서 자라는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보호수도 아니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나무도 아니다. 어린나무 한 그루가 벼랑 끝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서울 도심을 굽어보는 모습이 무슨 상징 같아서 자꾸만 보게 된다. 세월이 한참 흘러 저 나무가 저 자리에서 100년이 되고 200년이 됐을 때 모습을 생각해본다. 기암괴석 위에 낙락장송, 생각만 해도 멋진 풍경이다.

어린 소나무 옆에 서서 드넓은 서울을 바라본다. 관악산과 서울대가 눈앞에 보이고, 북한산, 남산, 한강, 롯데월드타워, 서울 서쪽부터 인천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돌아서서 걷는다. 깃대봉에서 내려와 서울둘레길로 다시 접어든다. 보덕사 앞을 지나 관악산 산림 쉼터에 이르렀다.

돌산 국기봉 뒤 벼랑 끝에서 자라는 어린 소나무.

이곳은 ‘숲속의 숲’이다. 잣나무와 메타세쿼이아, 단풍나무가 숲을 이룬 쉼터다. 단풍나무에 마른 단풍잎이 남아 있었다. 잣나무 푸른 숲에서는 저절로 숨을 깊게 쉬게 된다. 메타세쿼이아 숲에서는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 곧게 자란 나무들 줄기 끝에서 밝은 갈색으로 물든 잎들이 햇볕에 반짝인다.

이런 숲이 오솔길 바로 옆에 있어서 길을 걷던 사람들이 일부러 숲으로 들어와 숲을 한 바퀴 돌고 가기도 한다. 아예 숲속에 앉아 쉬는 사람들도 보인다. 숲속의 숲에서 머무는 동안 싱그러움이 물들었다.

관악산 산림 쉼터 메타세쿼이아 숲.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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