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남산 경술국치 터 고목들, “역사 잊지 말자” 외치는 듯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⑰ 중구 첫 번째 이야기, 남산의 오래된 나무와 소나무 숲

등록 : 2021-01-21 16:34 수정 : 2021-04-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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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강제병합조약 맺은 통감관저 터

400년 은행나무, 역사를 이야기한다

일제의 만행, 그리고 조국 광복까지


안중근광장 앞 와룡매 빈 가지 또한

추운 겨울 이겨내고 다시 올 봄, 그린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 있는 460년 넘은 느티나무와 400년 넘은 은행나무.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곳에 있는 고목 두 그루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을 들려주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훔쳐간 창덕궁 매화나무의 후계목이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서 매년 봄꽃을 피운다. 천만 인구 도시 서울 한복판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 바람 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푸르른 기상이다. 해거름까지 걸었던 남산에서 오래된 나무와 소나무 숲의 기운을 느꼈다.



통감관저 터에 남은 고목 두 그루

507번 시내버스를 타고 명동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버스 진행 방향으로 걷는다. 남산공원 이정표를 따라가다 만난 ‘기억의 터’라는 제목의 담벼락 조형물이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로 발길을 안내한다. 기억의 터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라는 안내글을 읽고 주변을 돌아본다.

기억의 터가 자리한 곳은 1910년 8월22일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이른바 경술국치, 그 후 조선총독관저로 사용됐다. 통감관저 터를 알리는 푯돌 주변에 거꾸로 세운 동상이라는 제목의 설치물이 있다. 일제는 한일강제병합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이곳에 세웠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상의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것이다.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거꾸로 세운 동상 옆 또 다른 조형물에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 있는 거꾸로 세운 동상.

겨울나무 빈 가지 얽힌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풍경 속 나무 한 그루가 눈에 익다. 조금 전에 봤던 거꾸로 세운 동상 안내판에서 본 나무다. 안내판에 일제강점기 한국통감관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 나무가 분명하다. 이 나무는 400년 넘은 은행나무다. 주변에 460년 넘은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두 고목은 그 자리를 지키며 일제의 만행과 치욕의 역사, 조국의 광복을 후대에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남산둘레길(북측 순환로) 이정표를 따라 남산으로 오른다. 숲길이 끝나고 남산 북측 순환로를 만나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그 길에서 와룡묘를 만났다. 이곳은 제갈량과 함께 관우, 단군, 산신을 모시는 신당으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1924년에 화재로 소실됐다는 것으로 봐서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조지훈 시비를 지나서 활짝 웃는 남녀의 얼굴을 조각한 나무를 보았다. 하회탈과 각시탈을 닮았다. 신랑이 신부를 업은 모양 같다. 신랑 신부가 활짝 웃는다. 죽은 나무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강풍으로 쓰러진 75년 정도 된 뽕나무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 이수자인 김종홍씨가 한국인의 미소라는 주제로 조각한 것이다.

강풍에 쓰러진, 75년 정도 된 뽕나무에 조각한 웃는 얼굴.

돌아온 매화나무

남산에 있는 서울시교육청 과학전시관 옆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앞에 도착했다. 남산에 쌓았던 한양도성 성곽의 흔적을 보았다. 한양도성 축성 당시 성 돌에 축성 구간, 축성 담당 지방, 공사 책임자와 석공의 이름을 새겼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성 돌에는 ‘내자육백척’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한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남산에 세웠던 조선 신궁 건물터가 있다. 일제는 조선 신궁을 지으면서 한양도성 성곽을 허물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쪽으로 향한 발길을 멈춘 곳은 안중근 의사의 말과 글을 새긴 거대한 돌과 나무가 어울린 안 의사 광장이었다. 그곳에 가는 줄기 빈 가지로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작은 매화나무가 있다. 이름이 와룡매(臥龍梅)다.

임진왜란 때 다테 마사무네는 창덕궁을 지키던 매화나무를 뽑아 일본으로 가져갔다. 1609년 일본의 한 절에 심긴 매화나무는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해마다 꽃을 피웠다. 꽃이 피고 지던 수백 년 세월 동안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 역사는 쓰였다. 절의 주지 히라노 소조가 지난 역사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창덕궁에서 뽑아 간 매화나무의 후계목을 우리나라에 반환했던 것이다. 1999년 안중근 의사 순국 89주기를 맞아 이곳에 그 매화나무를 심었다.

겨울 한복판에서 봄을 생각했다. 와룡매가 꽃을 피우는 봄을 생각했다. 어느 해인가 와룡매가 피운 꽃을 본 적이 있다. 남산 푸른 소나무 숲과 남산 꼭대기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곽을 배경으로 피어난 매화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산도서관을 지나 김소월 시인의 시 ‘산유화’가 새겨진 시비 앞에서 잠깐 쉰다. 남산 순환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길가에 줄지어 선 커다란 벚나무가 높은 곳에서 빈 가지를 엮고 있다. 남산둘레길(야외식물원쉼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도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다. 길머리부터 소나무가 반긴다.

와룡매.

남산의 소나무 숲

숲길이 호젓하다. 도로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온전한 숲을 느낀다. 소나무 숲이 오솔길 양쪽 옆에 펼쳐진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서 있는 소나무가 숲을 이뤘다.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인 것처럼 한겨울 칼바람 앞에서 오히려 더 푸르다.

오솔길 옆 도랑물이 하얗게 얼었다. 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와룡매에 꽃 필 때면 겨울잠 자는 개구리들도 깨어나겠다. 남산에 반딧불이도 산다는 안내 글에 반딧불이 서식처 규모가 1811㎡라고 적혔다.

갈림길에서 남산둘레길(야외식물원쉼터) 방향으로 간다. 길은 좁아지고 숲은 울창해진다. 길가 소나무 숲에 햇볕이 걸려든다. 그 숲에 솔향기가 그윽하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가 살아 있는 숲이 천만 도시 서울의 한복판, 서울의 중심 남산에 그대로 남아 있다.

2015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남산 남측사면 소나무 군락지는 46만㎡가 넘으며 이 군락지에 자생 소나무 500그루 정도가 함께 자란다. 수령이 100년 가까이 된 것도 있다.

소나무가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을 만나 잠시 쉬어간다. 솔숲 밖으로 도심 빌딩이 어렴풋이 보인다. 솔숲에서 보는 빌딩숲, 남산 솔숲이 자연과 문명의 경계다.

길은 남산야외식물원으로 이어진다. 남산둘레길(한남유아숲체험장) 방향 이정표를 따른다. 이끼정원과 한남유아숲체험원을 지나 팔도소나무단지로 가는 길 양쪽 옆도 소나무 군락지다.

팔도소나무단지는 2000년대 초반 조성된 작은 소나무 숲이다. 당시 전국의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각 지방의 소나무를 가져와 심은 것이다. 다만 당시 세종시는 없었기 때문에 세종시 소나무는 볼 수 없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의 모습이 인상적인 강원도 소나무, 안면도 적송군락의 소나무를 생각나게 하는 충청남도 소나무와 함께 충청북도 보은에 있는 정이품송의 자식나무인 정이품송 장자목이 눈에 띈다.

해 기운 겨울 저녁 공기에 갑자기 한기가 돈다. 남산둘레길(남산약수터쉼터) 이정표가 남아 있는 남산 숲길을 걸으라고 유혹한다. 팔도소나무단지를 뒤로하고 해 지는 남산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산 팔도 소나무단지에 있는 충청북도 소나무. 보은군 정이품송의 자식나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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