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국립극단과 함께, ‘새로운 연극’ 향한 도전 시작합니다”

연극의 탄생 ⑤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부문 선정 이진엽 연출의 ‘도전과 실험의 연출’

등록 : 2021-08-0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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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연출 시작한 뒤 만든 작품들

한 번도 ‘극장’에서 공연한 적 없이


자신의 빌라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재개발 지역 찾아 주민들 무대에 세워

시각장애인을 배우로 출연시키거나

시각 아닌 청각 중심 공연 펼치기도



국립극단과 함께 하는 것, 새로운 도전

“지난 10년 돌아보고 향후 10년 계획하려

다양한 예술가 만나 다양한 시도 할 것”

이진엽 연출이 7월28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올해 국립극단 ‘창작공감’ 프로그램으로 개발 중인 연극을 설명하고 있다. 한 번도 극장에서 공연을 하지 않았던 이 연출에게는 ‘최고의 무대’를 추구하는 국립극단과 함께 작업하는 이번 프로그램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 위한 큰 도전이 될 듯하다.

‘새로운 연극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

국립극단의 올해 작품개발 사업인 ‘창작공감’ 연출부문에 선정된 이진엽 연출의 작품활동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그의 ‘도전과 실험 정신’은 2009년 연출을 시작한 뒤 만든 작품 중 ‘극장’에서 공연한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올해 국립극단과 함께 작품을 개발해 11월에 쇼케이스 공연을 하고 내년 상반기 극장에 정식 작품을 올리는 ‘창작공감’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큰 도전이다.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극장 무대를 고려한 연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7월 28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이 연출을 만나 국립극단과 함께 진행 중인 그의 새 작품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연출은 2009년 창작 집단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결성한 뒤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2014)에서처럼 자신이 사는 빌라를 공연 무대로 삼거나, <입정동 바람, 바람>(2009), <동네박물관 시리즈 1 청계>(2012), <동네박물관 시리즈 2 원곡>(2012), <안녕, 광명>(2019)에서처럼 재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도시가 은폐한 지역’을 찾아 “공연을 본 적도 없다”는 그곳 주민을 직접 배우로 출연시켜왔다.

이에 따라 이 연출의 공연은 ‘장소 특정적 공연’이나 ‘이동형 공연’으로 불린다. 그가 이렇게 극장이 아닌 ‘현장’을 강조하는 것은 관객들의 역동성을 중시하는 그의 연출관과 관련이 깊다.

이 연출은 “제가 연출을 할 때 관심을 두는 것은 작품의 미장센이 아니라 관객 참여가 가능한 환경”이라며 “배우들에게도 연기를 주문하기보다는, 관객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진행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극장을 벗어난 공연’ 외에도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왔다. 가령 2015년에 그가 연출한 두 작품 <볼 것이 없다>와 <몸의 윤리>를 살펴보자. <볼 것이 없다>는 서촌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관객을 이끌고 동네를 산책하는 것을 뼈대로 삼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도 사회와 별다를 게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고 하지만 예술이 말하는 ‘모두’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시각장애인을 만나면서 “내 작업의 관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고, “그 이전에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많은 소수자가 내 삶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몸의 윤리>는 차단된 캄캄한 환경을 만든 뒤 그 안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몸과 낯선 사람의 몸을 접촉하는 공연이다. 암흑 속에서 진행되는 이 공연 또한 시각이 아닌 청각을 주된 소통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장애인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해오던 그가 왜 올해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프로젝트에 참가 신청을 한 것일까? 물론 올해 ‘창작공감’ 연출부문의 공통 주제가 ‘장애와 예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가 올해 국립극단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하는 작품은 <목소리>(가제)다. 이 작품에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시각장애인이 출연한다. 공연은 전체 암전이 된 상태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즉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관객들이 공연을 경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연출은 “어둠 안에서 육체와 소리로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관객과 배우들이) 이 자극들로 서로를 기억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목소리>가 이 연출이 지금까지 해왔던 공연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의 이전 작품들과 큰 차이가 있다. 바로 국립극단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국립극단과 함께한다는 것은 국립극단이 가진 극장에서 공연한다는 의미와 함께 국립극단의 스태프 역량을 활용하고, 또 국립극단의 네트워크에도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달라진 조건들은 그에게 ‘도전과 실험’의 의미로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그는 왜 이런 도전과 실험을 택한 것일까?

“올해가 저에게는 큰 전환점이 되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작업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을 그려보고 싶은 해입니다. 지난 2~3년 동안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이 컸는데, 비슷한 환경에서 지속적인 창작을 하다보니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한 것 같아요.”

이에 따라 이 연출은 올해는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 연출은 더 나아가 “기존의 작업과 달리, 결과에 도달하는 데도 최대한 돌아가는 길을 찾으며 과정 중심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예술가들을 만나며 서로의 예술적 언어와 공연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접근법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고, 시각장애인분들과도 장기적인 만남을 통해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11월로 예정된 쇼케이스 공연에서 이진엽 연출은 과연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그것은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장소 특정적 공연’과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지만 그의 이번 도전과 실험 결과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이 연출 본인조차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4인의 시각장애인 ‘커뮤니티 배우’(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 시민 배우)와 3명의 비시각장애인 예술가, 그리고 조연출과 함께 일주일에 세 차례씩 만나는 워크숍을 강행하고 있다. 이 연출은 “이 워크숍에서 9월까지 발견한 생각과 활동들을 가지고 공연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시각장애인과 함께 ‘연극적 표현 방법’ 찾기

“줄이 처지거나 당겨져서는 안 됩니다. 팽팽한 느낌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에너지를 느껴보세요.”

7월28일 오후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 박한희 안무가의 구체적인 지시가 떨어지자 이진엽 연출을 비롯한 예술가 그룹과 4명의 시각장애인 배우가 두 사람씩 짝지어 줄을 움켜쥐었다. 예술가들도 눈을 감고 단지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시각장애인 배우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동작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7월 초부터 매주 월·수·금 오후에 모여 다양한 움직임을 실험하고 있다. 이날도 줄다리기 외에 △각자 가져온 물건 2개씩을 상자에 넣고 촉감으로 물건의 종류와 주인 알아맞히기 △‘자연’ ‘사랑’ 등의 주제에 맞춰 돌아가면서 한 소절씩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게임’을 진행했다. 이진엽 연출과 워크숍 팀은 이후 ‘시를 감상하고 이를 동작으로 표현하기’ 등 조금 더 난도 높은 게임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게임을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게임을 통해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예술가가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동작들을 했을 때 에너지가 크고, 또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지 탐구하는 기능도 있다.

이진엽 연출은 “7월에 시험한 다양한 소통방식을 8~9월에 더 깊이 탐구할 예정”이라며 “이렇게 3개월 동안 찾아낸 표현방식을 모아 11월의 쇼케이스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쇼케이스라는 결과뿐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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