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경춘선 숲길의 나무들, 시간 머금어 추억 돌려준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㉛ 서울시 노원구2

등록 : 2021-08-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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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멈춰선 곳에 조성된 숲길에서는

건널목 차단기, ‘땡땡땡’ 소리 안나지만

숲에 온 사람을 ‘고향행 버스’에 태운다


태릉 가는 길 나무들은 꼭 의장대 같다

소나무 가지 높이 얽어 손님 맞이하니

불어가는 바람도 살랑, 알은체를 한다

경춘선 숲길.


조선시대 능역은 보물 같은 숲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 숲에서 보내는 시간은 숲 밖의 시간보다 여유롭고 한가하다. 능의 주인공이 살다 간 내력보다 지금 그 숲에 피어난 꽃 한 송이,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에 마음이 실린다. 태릉의 소나무 숲, 강릉의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숲이 인상적이다. 경춘선 숲길, 철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미루나무 길은 어린 시절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내달리던 추억 속 그 미루나무를 닮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태릉. 능 앞에 커다란 향나무가 세 그루 있다. 100~200년 정도 됐다고 추정한다.

태릉의 소나무와 향나무

태릉을 다시 찾은 건 가을의 문턱, 입추날이었다. 기상청의 폭염특보는 계속됐지만 벌겋게 달군 작살로 정수리를 녹이는 것 같은 햇살과 폭염은 없었다. 햇빛의 색온도가 적당해서 맑고 화사한 빛이 공중에 퍼진 오전 태릉은 파란 하늘빛과 초록빛 숲으로 가득했다. 능역은 보물 같은 숲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능으로 가는 길, 벌개미취가 발치에 펴 반긴다. 능으로 곧장 가는 길과 돌아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두 줄로 늘어선 의장대가 하늘 높이 칼을 치켜들어 길을 만들고 귀빈을 맞이하듯 공중에서 얽힌 소나무 가지의 호위를 받으며 숲길을 지나간다. 그곳을 지나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솔숲에 도착했다.

숲 그늘은 선선했다. 간혹 불어가는 바람이 살랑거린다. 솔숲에 띄엄띄엄 놓인 의자에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그냥 멍하니 숲을 바라본다. 솔숲을 이리저리 거닐다 눈에 띈 나무가 기이하다. 땅에 낮게 엎드려 가지를 퍼뜨린 나무의 정체는 알고 보니 눈개비자나무였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은 정자각 옆에도 있었다. 세 그루의 향나무가 정자각 옆에 서서 능을 지키는 것 같았다. 늠름한 모습과 풍채로 봐서 수령이 꽤 된 것으로 보였다. 다른 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관련기관에 물어봐도 그곳에 향나무가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태릉에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인 홍살문 옆 향나무의 수령이 154년 정도 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나무들의 수령이 100년~200년 정도 됐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향나무 줄기에 불거진 커다란 옹이 뒤로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 보인다. 그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아들 명종의 뒤에서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면서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등 격동의 역사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남편인 중종 임금 옆에 묻히고 싶었으나 끝내 이곳에 홀로 묻혔다. 훗날 명종 임금의 능인 강릉을 태릉 옆에 만들면서 엄마와 아들이 함께하게 됐다.

크고 작은 소나무가 모여있는 태릉 소나무숲.

나무야, 나무야, 소나무야

예로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삿된 기운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금줄을 쳤다. 금줄에 빠지지 않았던 게 솔가지다.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듯 봄이 되면 소나무의 송화와 암꽃이 만나 솔방울을 만든다. 흐르는 세월 속에 마르고 갈라진 소나무 껍질처럼 사람도 늙는다. 세상을 떠나는 날,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도래솔(무덤가에 둘러 심은 소나무)의 품으로 돌아간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살며 죽어서도 소나무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한 삶을 생각하며 태릉의 소나무 숲을 걸었다.

태릉 왼쪽 소나무 숲은 그동안 일반인들이 볼 수 없었는데, 2021년 5월16일에 개방했다. 리기다소나무 등 외래 수종을 없애고 우리나라 전통 소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키 작은 소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그 풍경에 멋을 더한다. 길지 않은 소나무 숲의 오솔길을 따라 굽이굽이 걷는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고 홍살문으로 가는 길에 두 줄기가 얽혀 하나로 자라는 것 같은 나무를 보았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 조선시대 명종 임금이 묻힌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은 출입문에서 홍살문으로 이어지는 길 오른쪽에 있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이룬 숲이 인상적이다. 능역이 작아 느리게 걸으며 돌아보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돌아 나오는 길에 들어올 때 보았던 그 숲이 배웅한다.

강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춘선 숲길이있다. 화랑로를 따라 태릉선수촌 쪽으로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경춘선 숲길로 드나드는 입구가 그 길 어디쯤에 있다. 하늘 높이 자란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다. 도로 양쪽 옆에 줄지어 섰다. 강릉 앞부터 옛 경춘선 화랑대 역사가 있는 화랑대 철도공원까지 약 2.3km 구간에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쭉 이어진다. 이 길은 연인들의 길이었다. 특히 가을이면 단풍과 함께 플라타너스 낙엽이 쌓인 거리에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그 길 언저리에 있었던 레스토랑, 카페가 미팅 장소로도 유명했다. 80년대 초반에는 나무가 이렇게 안 컸다는 그곳 주민의 말로 보아 그때에도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길은 지금도 매년 각종 매체에 가을에 걷고 싶은 길로 소개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릉. 조선시대 명종 임금의 능.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태릉선수촌 앞 도로 건너편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걷다가 경춘선 숲길로 접어들었다. 1939년 7월부터 기차가 다니기 시작해서 2010년 12월에 마지막 기차가 운행을 마친 철길이 2017년 11월 경춘선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청춘과 낭만의 상징이었던 경춘선, 이제는 그 철길을 걷는 사람들에 의해 걷고 싶은 길이 됐다.

철길도, 그 옆에 나란히 이어지는 화랑로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먼 곳에서 하나로 모여 소실점을 만든다. 그곳으로 걷는 것이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춘들, 운동 나온 주변 마을 사람들,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나온 엄마와 아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나무처럼 푸르고 추억처럼 낭만적이다. 나무가 만든 그늘이 철길을 덮고 사람들은 햇빛을 피해 그 길로 걷는다. 철길 아래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수양버들 가지가물에 닿을 듯 늘어졌다. 데크길과 철길 사이에 피어난 벌개미취 덕에 잠시 앉아 쉬며 꽃과 철길을 한눈에 바라본다. 햇살은 따가운데 그늘로 불어가는 바람은 시원하다. 건널목 차단기가 ‘땡땡땡’ 울리는 종소리의 옛 추억을 되살린다. 그렇게 걸어서 옛 화랑대 역사가 있는 화랑대 철도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 머물며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던 옛 기차처럼 잠시 머물기로 했다. 옛 화랑대 역 건물 그늘에 앉았다. 화랑대 역은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기차 차량이 옛 철길 위에 놓였다. 그 옆을 지나 철길 위로 걸었다.

경춘선 숲길은 사람 사는 마을 사이로 이어진다. 40년 정도 됐다는 공릉동 도깨비시장 앞을 지난다. 철길 바로 옆에 시장 입구가 있어 잠시 시장에 들러 ‘장 구경’을 한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심심한 입을 달랠 것을 사 먹는다. 장 구경은 먹으면서 하는 것이다.

다시 철길 위에 섰다. 산사나무, 팥꽃나무, 불두화, 쪽동백, 왕벚나무, 산수유나무, 숙근 코스모스, 느티나무, 도라지꽃, 기린초, 섬잣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꽃이 철길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그중 추억을 소환하는 나무가 있었으니, 키가 삐쭉하게 큰 미루나무였다.

70년대 시골 마을, 하루에 완행버스가 네댓 번 들어오던 마을, 대처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고향의 마음 같은 신작로 가로수가 미루나무였다. 그르렁거리는 완행버스는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더디게 신작로를 달렸다. 한여름 오후 두 시, 땡볕 아래 미루나무 그림자가 송곳처럼 박힌 신작로를 달려 누군가의 기쁜 손님이 타고 있을 완행버스를 마중하던 어린 시절 추억이 경춘선 숲길 철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미루나무에 맺혔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렸다.

화랑대 철도공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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