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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웃음 위해서면 ‘망가져도’ 기뻐”

어르신 감성 맞춤 비대면 프로그램 ‘삼선다방’의 디제이 노현태 삼선실버복지센터 이사

등록 : 2021-09-02 15:54 수정 : 2021-09-0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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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그룹 ‘거리의 시인들’ 출신 래퍼

어르신 위한 동영상, 방송댄스 강좌

노래·춤에 익살 표정·말투 더해 인기

“제 재능 필요해 부르면 기꺼이 맡아”

8월19일 오후 성북구 삼선동 삼선실버복지센터 1층 카페에서 노현태 이사가 <서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래퍼 출신인 노 이사는 센터의 비대면 프로그램 ‘삼선다방’의 ‘디제이 혀니’로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왔다. 뒤쪽 텔레비전 화면에선 삼선다방 동영상이 나오고 있다.


“으싸라으싸! 어르신” “최강! 삼선 어르신” 가수 윤수일의 ‘아파트’를 열창하며 연신 금박 수술을 흔들고 몸개그를 하던 노현태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어르신들을 응원했다. 단발머리 가발에 빨간 리본 머리띠, 주황색 선글라스에 초록색 새마을운동 티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이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하하’ 호탕한 그의 웃음소리가 시원함도 안겨준다.

삼선실버복지센터 2층 프로그램실에서 ‘삼선다방’ 동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8월19일 오후 성북구 삼선동 삼선실버복지센터 2층 프로그램실에서 ‘삼선다방’ 동영상 촬영이 한창이었다. 삼선다방은 센터가 지난해 9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어르신 감성 맞춤형 비대면 프로그램이다. 기획은 그와 나은미 센터장, 유승석 주임이 함께 하고 촬영과 편집은 유 주임이 맡고 있다. 삼선다방 동영상은 세 사람의 합작품인 셈이다.

애초 센터는 1층 카페에 디제이 박스를 만들어 어르신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었다. 코로나19로 노인복지시설이 장기 휴관함에 따라 집에만 있어 힘들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이를 동영상으로 바꿨다. 매주 1회 동영상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링크 주소를 회원 650명에게 문자로 보낸다. 지금까지 50여 편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집에만 있어 힘들지만, 이 영상 보고 그나마 웃는다”고 말하는 어르신이 늘고 있단다.

삼선다방 프로그램 콘셉트는 추억과 재미다. 어르신의 신청곡과 사연을 받고 교복, 교련복 등 의상에 단발머리 헤어스타일을 하거나 도끼빗 등 옛날 소품을 쓴다. 디제이 이름도 어르신들이 부르기 쉽게 ‘혀니’로 지었다. 멀쩡한 모습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가발을 사서 가위로 ‘알까기’의 최양락 헤어스타일을 본떠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20년 동안 해오고 있는 (머리 한쪽을 바싹 깎은)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삼선다방 촬영 땐 잠시 포기한다. 그는 “가발을 쓰면 머리가 조여 아프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참는다”고 말했다.

삼선다방 촬영엔 리허설이 없다. 망가지고 재밌게 하기 위해서다. “가사를 몰라 얼버무리며 몸으로 때우는 모습이 많이 웃긴다고들 한다”고 했다. 활기찬 분위기를 위해 높은 톤으로 힘을 줘 목소리를 내다보니 그의 목은 자주 잠긴다. “슬슬 하면 재미가 없다”며 “제가 망가져 어르신들이 즐거우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웃으며 그가 말했다.

이날 삼선다방 동영상 촬영에 앞서 그는 방송댄스 강좌 ‘실버돌 댄스 & 스트레칭’을 40분씩 다섯 차례 진행했다. 센터 개관 때부터 2년째 이어온 이 강좌는 신나는 노래에 스트레칭, 댄스를 곁들여 어르신에게 인기다. 이번 하반기 수강 신청 땐 경쟁률이 8 대 1이나 됐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수강생을 10명으로 제한하다 보니 경쟁률이 더 높아졌다. 센터는 어르신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등 무리하지 않게 한 주간 수강 신청을 받고 추첨으로 수강생을 뽑는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힙합그룹 ‘거리의 시인들’ 래퍼 출신이다. 지금은 독립해 가수활동을 이어가며 후배들을 키우는 일도 하고 있다. 청소년일 때 ‘야구선수’를 꿈꿨던 그는 연예인 야구단 ‘조마조마’에서 선발 투수 겸 타자로 활동해 왔다. 재능기부로 학교 밖·취약계층 청소년이 참여하는 야구단의 감독, 지역 여자 야구단의 코치도 맡고 있다. 그는 “저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기에, 제 재능이 필요해 부르면 기꺼이 달려간다”고 했다.

여러 활동을 하다 보니 그는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가수, 감독, 코치, 단장, 강사, 디제이, 대표 등이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디제이 혀니’다. “다른 호칭에 비해 편하게 느껴지고, 나 혼자 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어르신을 대할 때면 몇 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돈 드리는 거로 효도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고 보니 즐겁게 못 해준 게 제일 아쉽다”고 했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나이 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걸 알아가면서 부모님을 웃겨 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센터의 어르신들이 방송댄스를 하면서, 삼선다방 동영상을 보면서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들지만 재밌게 하려 에너지를 쏟는단다.

코로나19가 사라져 삼선다방이 영상이 아닌 현실 속 공간이 되길 그는 소망한다. “센터 1층 카페에 디제이 박스를 만들어 어르신들이 와서 듣고 싶은 노래 신청도 하고, 서로 얘기도 나누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래 신청하러 줄 설 정도로 어르신들에게 ‘핫’한 곳이 되면 더 좋겠죠. 하하하!”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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