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산성비도 땅에 내려오면 ‘쓸모 많은 중성비’가 된다

더샵스타시티에서 배우는 빗물의 과학

등록 : 2021-09-02 17:26 수정 : 2021-09-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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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더샵스타시티, 분수대 4개를

충분히 돌려도 월 공동수도료 200원

중성이 된 빗물을 받아 쓰는 게 비결

서울 빗물, 타 도시보다 산성 강하지만

콘크리트에 섞인 석회 만나면 중성 돼

빛 없는 지하에 저장하면 썩지도 않아

서울시가 ‘저장된 중성비’를 구매해서

소방용수, 청소용수 등에 사용한다면


빗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 될 것

서울 광진구의 더샵스타시티는 빗물로 4개의 분수와 실개천을 가동하고 메타세쿼이아 등 여러 수종의 나무를 조경한다.

8월 하순. 이레 동안 비를 뿌리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면 받으실래요? 안 받으실래요?”

그는 “어떤 주상복합아파트에선 빗물을 모아 쓰는데, 한 가구 공동수도료가 한 달 평균 200원밖에 안 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빗물을 쓰레기 취급해요. 내리자마자 마구 버려요. 사람들이 잘못 배워서 그래요.”

우리가 뭘 잘못 배운 걸까? 한 교수는 ‘산성비는 해롭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상식’을 지목한다. 한 교수는 “내리는 빗물은 산성, 모은 빗물은 중성”이라며 “햇빛을 막으면 고인 물도 썩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짜일까? 그가 “빗물을 잘 활용해서 전국에서 배우러 온다”고 소개한 서울 광진구 더샵스타시티의 빗물이용시설을 찾아가 봤다.

여느 건물과 같은 모습의 더샵스타시티 옥상 빗물받이. 여기서 모은 물은 가라앉혀 생활용수로 쓴다.

울타리 문을 밀고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입이 딱 벌어졌다. 계단 분수가 청량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잘 닦인 벽돌길 양옆으로는 수풀이 우거졌다. 네 동짜리 단지의 가운데에는 메타세쿼이아 따위 온갖 나무가 울창한데 그 사이로 실개천이 흘렀다. 물 많이 쓰겠다 싶었다. 더샵스타시티 방재실의 김영제 과장이 설명했다.

밸브가 붙은 장치는 빗물의 위치에너지를 줄여줘 침전물이 다시 떠오르는 걸 막아준다.

“분수대가 4개, 실개천이 2개 있습니다. 여름에는 한 달에 물 사용량이 2만7천t쯤 됩니다. 세대별 사용량까지 합쳐서요. 그중 2천~3천t은 빗물로 써요. 그래서 조경 면적이 넓어도 공동수도료가 거의 안 나오죠.”

이곳은 3천t짜리 저류조에 빗물을 모아 쓴다. 여기서 빗물은 ‘과학적’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우선, 옥상의 빗물과 땅의 빗물은 두 개 탱크에 따로 담긴다. 옥상의 빗물은 깨끗해 여과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둘째, 물탱크는 햇빛이 차단된 지하 4층에 설치됐다.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부패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미생물, 유기물, 태양광. 한 교수는 “물이 썩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산소가 모자란 상태에서 혐기성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메탄이나 황화수소와 같은 냄새나는 부산물을 발생시키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미생물, 유기물, 태양광 중 하나만 차단하면 물이 썩지 않습니다. 깊은 동굴이나 우물 속의 물, 지하 암반수가 고여 있어도 썩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죠. 미생물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요. 따라서 햇빛을 차단하면 됩니다. 그러면 최소한 1년 이상은 수질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더샵스타시티 저류조가 그러했다. 3개의 탱크를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 4층에 둔 이유다. 김 과장은 그것들을 ‘A탱크, B탱크, 비상용 탱크’라고 불렀다. A탱크엔 지표면의 빗물받이에서 모은 물이 담겼다. 옥상 빗물이 담긴 B탱크와 A탱크 사이에는 여과기가 있었다. 뚜껑이 열린 여과기 안에서 물은 칸막이를 힘차게 넘어가며 콸콸 소리를 냈다. 썩은 내나 잡내는 풍기지 않았다.

지표면에서 모은 물은 탱크와 필터를 거쳐 여과기로 보내진다. 김영제 더샵스타시티 방재실 과장은 주 1회 필터 청소만으로도 정화가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조경수나 땅으로 떨어진 빗물은 A탱크에서 침전시킨 다음에 중간 물만 유니필터로 보냅니다. 여과한 물은 B탱크로 보내서 조경이나 건물 청소에 써요. 필터 관리요? 일주일에 한 번 이온수지에 붙은 침전물을 정화하는 것 정도 해요. 옥상이나 지표면 빗물받이도 가끔 청소하죠. 그래야 물이 깨끗하게 들어오니까요.”

서울의 빗물은 다른 도시보다 산성이 강하다. 서울의 산도는 2019년 평균치가 pH4.9다. 지난해 12월엔 pH4.6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산(pH5.4)·대구(pH5.6)·광주(pH5.8)·대전(pH5.3) 등 다른 도시들보다 산성도가 높다. pH는 0에 가까울수록 강한 산성, 7이 중성, 14에 가까울수록 강한 염기성을 나타낸다. 환경부 ‘대기환경연보’에는 “산성비는 금속과 건물에 부식을 일으킨다”고 적혀 있다. 더샵스타시티는 어떨까? 김 과장은 주저 없이 답했다.

“부식이 일어난 곳은 전혀 없어요. 지금껏 본 적이 없어요. 건물 청소할 때도 그 물을 쓰는데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빗물은 원래 약산성이다.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같은 산성오염물질이 들어가지 않아도 그렇다. 이산화탄소, 즉 탄산가스(CO₂)가 대기 중의 수분에 용해되면 약산성 물질인 탄산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대기환경연보’에 따르면 “정상적 공기 중 탄산가스는 350ppm으로, 완전히 포화해 평형상태를 유지할 때의 pH를 계산하면 약 5.6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대기 속 이산화탄소는 420ppm을 기록했다. 앞으로 도시에선 산성비가 일상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도시에 떨어진 빗물은 중성 혹은 알칼리성이 된다. 건물 콘크리트에 쓰인 시멘트 때문이다. 시멘트의 주요 성분은 석회(CaO)다. 석회는 물과 혼합되면 pH값이 12~13까지 치솟는 강알칼리성 물질이다. 용인, 분당 등 수도권에서 빗물 성분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대기 중에선 약산성이었던 빗물이 홈통에선 중성(pH7) 혹은 약알칼리성(pH8)으로 변했다. 지붕 성분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창원시의 연구에서도 pH4.3의 약산성비가 저류조에 담긴 뒤 pH6으로 중화됐다.

약산성의 빗물은 인체에 해롭지 않다. 한 교수는 “빗물보다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가 더 강한 산성”이라고 지적했다. 콜라는 pH2.5, 맥주는 pH4.0이다. 심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구르트조차 산도가 pH3.6~4.6이다. 한 교수는 “산성비에 대한 오해 때문에 사람들이 귀한 빗물을 버린다”고 말했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더샵스타시티 거주자의 관리비를 보여주며 빗물 이용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빗물은 그 자체로 에너지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기에 높은 위치에너지를 가집니다.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더러워집니다. 따라서 빗물은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분산형으로 모아야 정화 등 비용이 적게 듭니다. 더구나 한국에선 비가 여름에 집중돼 다른 시기엔 일시적인 물 부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빗물을 분산형으로 관리하면 홍수와 가뭄도 해소할 수 있어요.”

서울시는 빗물이용시설을 새로 설치하면 비용의 90%를 보조금으로 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10일까지 신청서를 내면 68곳을 선정해 지원한다. 한 교수는 이걸로는 부족하단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가 빗물을 사주면 사람들 인식이 크게 바뀔 것”이라며 “구입한 빗물은 소방용수, 거리 청소용수 등 공동으로 쓰면 된다”고 말했다. 빗물이 진짜 돈이 된다면, 더샵스타시티 바깥의 빗물도 좀 더 ‘과학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자료: ‘대기환경연보’(환경부), ‘지구대기감시 보고서’(기상청),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모모모 물관리>(한무영), ‘빗물 유출면 및 빗물 침투시설이 주거단지 유출빗물의 pH에 미치는 영향’(현경학 외 2인), ‘창원지역 빗물의 계절변화 및 저류시간에 따른 수질변화’(한치복 외 1인) 자문: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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