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산은 낮지만 숲은 깊고, 옛이야기는 더욱 웅숭깊다

㉞ 서울시 양천구1 : 용왕산과 갈산의 숲길

등록 : 2021-09-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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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정. 살구나무가 정자와 어울려 자란다.

뒷동산 같은 산속에 자리잡은 숲들

마을 사람들, 마실 다니듯 숲에 간다

노모의 보폭 맞춘 딸, 걸음을 늦출 때

하늘을 가린 숲 뚫고 햇살이 비쳐든다

양천구에는 보호수가 없다. 150년 정도 됐다는 목4동 느티나무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나무다. 양천구에는 어릴 때 뛰어놀던 마을 뒷동산 같은 산이 많다. 옛 달마을 뒷동산 달마을공원이 그렇다. 옛 엄지미마을을 품었던 엄지산은 지금은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용왕산이다. 갈산에는 안양천 오목교의 전설을 증명하듯 오동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100m가 안 되는 낮은 산들이지만 숲이 깊다.

달마을 뒷동산

달마을공원 숲길을 걷는다.


조선시대 ‘나말’마을은 용왕산 서쪽에 있었다. 지금의 목4동 북쪽과 목3동 남쪽 언저리였다. 나말마을 사람들이 심었다고 알려진 느티나무가 목4동 760-28에서 150여 년 동안 살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철책을 만들어 나무를 보호하고 안내판도 만들어 놓았다. 안내 글에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고사할 뻔했으나 죽지 않고 새순이 움터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용한 주택가 여러 골목이 만나는 곳을 지키고 있는 이 나무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무로 알려졌다.

양천구에는 달과 관련된 옛 마을이 몇 곳 있었다. 지금의 용왕산 북쪽 언저리는 달거리마을이었다. 용왕산에서 떠오르는 달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고, 마을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서서울호수공원 언저리에는 달빛이 곱게 비친다는 뜻의 곰달래마을이 있었다. 신월마을의 ‘신월’은 새 달, 다시 차오르는 달, 초승달을 뜻한다. 목동 달마을공원 언저리에는 달마을이 있었다.

150년 느티나무에서 북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달마을공원이 있다. 이곳이 옛 달마을의 뒷동산이다. 목동문화체육센터 옆 계단으로 올라간다. 산은 낮지만 숲은 깊다. 곳곳에서 만나는 갈림길은 숲 안으로 이어져 발길을 유혹하지만 숲 둘레를 가장 크게 도는 길을 따랐다. 하늘이 열려 숲길로 빛이 든다. 숲길 옆은 주택가다. 숲과 주택가의 경계에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마다 새소리에 눈을 뜨고 계절마다 다른 숲의 향기 속에서 일상을 보낼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마실 다니듯 달맞이공원 숲길을 드나든다. 숲에서 만난 이웃은 싱그럽게 인사를 나눈다. 노모의 보폭에 맞춰 걷는 딸은 이 숲길에 익숙해 보였다. 작정하고 운동하는 청년들은 숲길을 뛰듯 걷는다. 오가며 만난 강아지 두 마리가 떨어질 줄 모른다. 그 덕에 강아지 주인들은 숲에서 첫인사를 나눈다. 옛날에 달맞이마을이 이 숲 기슭 어딘가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저씨를 만난 곳이 달맞이언덕이었다.

용왕산의 전설

달맞이공원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거리에 용왕산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옛날에는 용왕산을 엄지산이라고 했다. 엄지산은 해발고도 78m와 68m의 봉우리 두 개를 아울렀다. 산에 오르면 너른 들판 목초지에 방목하는 말들을 잘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엄지산 아래 너른 목초지는 말을 방목하던 곳이었다. 목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이기도 하다.

용왕산 동쪽 기슭 우성아파트 자리에 엄지미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소쿠리처럼 생겼다.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 얽어서 위가 트이고 테를 둥글게 만든 생활도구인 소쿠리는 곡물이나 채소 등을 담아 말리거나 보관하는 데 주로 쓰였다. 그래서였을까? 보따리 하나 달랑 메고 엄지미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됐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우성아파트 옆에 난 길을 따라 용왕산으로 올라간다. ‘용왕산 숲이 좋은 길’ 이정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용왕산 숲이 좋은 길은 용왕산 전체를 한 바퀴 도는, 2.6㎞ 정도의 숲길이다.

농구장 옆 커다란 왕벚나무를 보며 화사했던 지난봄을 떠올려본다. 높이가 100m도 안 되는 낮은 산인데 숲이 깊다. 하늘을 가린 숲으로 햇볕이 걸러든다. 숲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다시 농구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대문 기둥처럼 숲길 양쪽을 지키는 굴참나무 두 그루를 보았다. 열매는 산짐승이 먹고, 껍질은 너와집 지붕을 만드는 데 쓰이고,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고 하니, 참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목4동에 있는 150년 정도 된 느티나무.

농구장을 지나 다시 넓은 길을 만났다. 용왕산 숲이 좋은 길은 넓은 길 건너편으로 이어진다. 성기게 자란 나무 사이로 도심의 풍경이 보인다. 숲길을 벗어나면 다목적운동장이 나온다. 아직 해가 넉넉하게 남은 운동장에 사람들이 많다. 용왕산 정상, 용왕정으로 간다. 정상 바로 전 소나무 숲 쉼터는 그야말로 쉼터다. 보고 있으면 쉬고 싶어지는 곳이다.

용왕정은 1994년에 지어진 정자다. 옛날에는 용왕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과 북한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보였다는데, 지금은 나무가 자라서 시야를 가린다. 정자에 올라가면 시야가 트일 것 같은데, 코로나19 때문에 정자는 폐쇄됐다.

죽어서 용으로 변신해서 왕이 되려 했던 박씨 노인의 전설이 전해지는 용왕산은 지금은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쉬게 하는 숲이다.

메타세쿼이아 푸른 장벽 앞 오동나무 한 그루

안양천과 갈산.

용왕산 동쪽은 안양천이다. 안양천 물길을 거슬러 남쪽으로 약 4㎞ 가면 갈산이 나온다. 안양천의 옛 이름은 오목내였다고 한다. 오목내에 놓인 오목교에 대한 옛날얘기가 전해진다. 마을 앞 오목내에 놓인 다리가 번번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것을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한 노승이 물길 윗마을에서 오동나무를 베어 멈추는 곳에 다리를 놓으라고 했다.

물에 떠내려보낼 오동나무를 찾아 헤매던 마을 사람들은 칼산에서 간신히 오동나무를 발견하고 노승의 말대로 했다. 그 이후로 다리는 유실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설 속 마을 사람들이 오동나무를 찾았다던 칼산이 지금의 갈산이다. 지금도 칼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안양천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산 동쪽이 벼랑처럼 깎이고 정상으로 가는 길이 칼날 같다고 해서 칼산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안양천 오금교를 먼저 찾았다. 안양천과 갈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잘 꾸민 안양천 둔치와 산 아래 건물을 지우면 갈산의 동쪽 사면은 지금도 가파른 벼랑의 형국이다.

갈산초교삼거리에서 양천구 어린이 교통공원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갈산 입구가 나온다. 계단에 다 올라서서 ‘갈산 숲이 좋은 길’과 정상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쪽으로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산 숲이 좋은 길과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갈산 숲이 좋은 길로 접어들었다. 오금교에서 보았던 갈산 동쪽 사면 숲이다. 그곳에 데크 길을 냈다. 우거진 숲을 편하게 걷는다.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어 잠시 길을 벗어나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은 너른 마당이다. 한쪽에 갈산정이 있고 정자 옆에 1910년 일제가 토지조사 사업을 위해 설치한 시설물인 ‘칼산 대삼각본점’이 남아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간신히 안양천, 여의도 일대,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왔던 길로 내려가 데크 길을 걷는다. 숲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안양천 건너 도심과 멀리 관악산까지 펼쳐지는 전망을 즐긴다.

갈산 정상에 있는 ‘칼산 대삼각본점’. 1910년에 일제가 토지조사 사업을 위해 만들었다.

갈산 또한 높이가 100m도 안 되지만 숲은 깊다. 향림사를 지나 넓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피톤치드원이 나온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는 곳이다. 그 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걷다가 오동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오목내 오목교의 전설이 떠올랐다. 메타세쿼이아 숲 푸른 장벽 앞에 우뚝 선 오동나무 한 그루였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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