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숲의 가을은 푸근하다

㊱ 중랑구1 : 봉화산 청실배나무와 숲속의 공원, 그리고 봉화산 둘레길

등록 : 2021-10-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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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자락 신내공원 작은 단풍숲.

온종일 봉화산에서 놀았다. 산기슭에 있는 봉수대공원, 신내공원, 봉화산옹기테마공원은 숲이 좋은 공원이다. 단풍 물든 나무며 하얀 억새가 어울린 풍경이 가을을 가을답게 만든다. 봉수대공원 청실배나무 앞에서 중랑구 먹골배의 역사를 더듬어본다. 봉화산옹기테마공원에서 바라보는 봉화산 자락에도 배밭이 있다. 공원 구경 끝내고 봉화산 둘레길을 걸었다. 깊어가는 가을 하루 나들이를 끝내기에 봉화산 꼭대기가 좋았다.

봉화산옹기테마공원에서 본 풍경. 사진 가운데 봉화산 자락 배밭이 보인다.

봉화산 청실배나무

마음먹고 가을을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늘은 높고 파랬다. 목적지는 중랑구에 있는 봉화산이었다. 시내버스가 가는 길, 양지바른 길가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었다. 중랑구청 뒤 봉화산 자락 봉수대공원 나무에도 단풍 물이 들었다. 단풍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가 어울린 산기슭이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푸른 잎 무성한 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나무 앞 안내판에 적힌 글 제목이 ‘먹골배 시조목(청실배나무)’이다.

중랑구 묵동의 옛 이름이 먹골이었다. 조선시대 사람 왕방연이 관직에서 물러나 터를 잡은 곳이 봉화산 아래 중랑천 가였고, 그때 그가 배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청실배나무는 산돌배나무 중 하나다. 그러니까 이른바 ‘먹골배’의 원조는 ‘청실배’였던 것이다. 청실배를 먹어본 사람들은 껍질이나 과육이 부드럽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왕실에 진상됐다고 전해진다.

봉화산옹기테마공원 조형물. 항아리를 빚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봉화산 자락 법장사 스님의 말에 따르면 묵동체육관이 들어서기 전 그 인근 과수원에 청실배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체육관이 들어서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청실배나무 중 한 그루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청실배나무를 잘 가꾸고 관리하던 과수원 주인과 오랫동안 청실배나무에 관심을 가졌던 법장사 주지 스님은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청실배나무 한 그루를 중랑구에 기증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중랑구 유일의 청실배나무가 앞으로 자손을 퍼뜨려 옛 원조 먹골배의 맥을 잇는다는 뜻에서 보면 ‘먹골배 시조목’이란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중랑구청과 법장사 스님의 말에 따르면 ‘먹골배 시조목(청실배나무)’의 수령은 약 60~70년이다.

청실배나무 위 언덕에서 봉화산 꼭대기가 보인다. 해발 160m 정도 되는 산이 펑퍼짐하게 퍼져 흘러내린다. 그 자락에 있는 또 다른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봉화산 정상 봉수대 터. 재현한 봉수대와 서울시 무형문화재 봉화산 도당굿과 연관된 건물이 있다.

산기슭 숲이 좋은 공원

봉화산 북쪽 산기슭에 신내공원과 봉화산옹기테마공원이 있다. 도로에서 봉화산 쪽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봉화산옹기테마공원을 알리는 조형물이 있다. 그 옆이 신내공원이다.

신내공원을 먼저 들렀다. 작은 공원을 화려하게 만드는 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었다. 단풍잎을 통과한 햇볕이 온화하게 화사하다. 쌀쌀한 바람을 피해 햇볕 아래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위로 그 햇볕이 내린다.

신내공원을 지나 산 쪽으로 더 들어가면 산기슭 비탈에 자리 잡은 봉화산옹기테마공원이 나온다. 신내동 일대에는 옛날에 옹기를 빚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현재 중화초등학교 동쪽에 있었던 옛 마을 이름이 독점마을이다. 독(옹기)을 굽는 가마가 있었던 곳이다. 1990년대 초까지도 신내동과 망우동에 옹기점이 있었다. 여러 곳에 있던 옹기 가마의 전통을 알리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옹기테마공원을 만들었다. 공원 초입에 전래 동화 ‘콩쥐 팥쥐’와 ‘우렁각시’에 나오는 인물의 조형물과 항아리가 있다. 동화 속 옹기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복원된 전통 옹기가마 옆에는 장 담그는 날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있다. 장을 담가 옹기에서 숙성 보관하는 모습이다.

옹기테마공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에 폭약과 도화선 등을 보관하던 건물이 있었다. 10t가량의 화약류가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 마음을 졸이게 했던 화약 보관소에서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벌써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두 그루 나무 아래 의자가 놓였다. 햇볕이 고이는 곳이다. 가을 햇볕을 즐기던 중년의 부부가 자리를 양보하고 위에 있는 카페 쪽으로 걷는다. 카페 앞은 전망대다.

산기슭에 놓인 길을 따라 카페까지 올라갔다.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바라본 풍경에 봉화산에 들어선 배나무 과수원이 보인다. 꽃 피는 4월, 흐드러지게 피어난 배꽃이 산자락을 하얗게 물들인 풍경을 상상해본다. 그곳에 서서 봉화산 자락과 그 품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오래 바라보았다.

봉화산 둘레길과 산꼭대기 봉수대 터

봉화산옹기테마공원에서 나와 신내공원 다목적 체육관 옆 숲으로 들어갔다. 봉화산을 한 바퀴 도는 봉화산 둘레길을 걷고 봉화산 꼭대기까지 갈 작정이었다. 이내 봉화산 둘레길 이정표가 나왔다. 묵동체육관 방향으로 걸었다.

숲길 바로 옆이 배나무 과수원이다. 봉화산옹기테마공원 전망대에서 본 배밭과 다른 밭이다. 중랑구의 꽃이 배꽃인 이유다. 산기슭에 난 길이라 어렵지 않게 걷는다.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활엽수 잎마다 햇볕이 비친다. 잎이 갈빛으로 빛난다. 움푹 파인 골짜기에 커다란 나무들이 높은 곳에서 가지를 퍼뜨려 하늘을 가렸다. 숲이 허공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적막을 깨뜨리는 것은 반대편 고갯마루를 넘어 이 숲으로 드는 사람들의 말소리였다. 적막도 이 숲에선 평온이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있어 적막이 더 깊어진다. 머물고 싶은 곳이었지만 오래 머물 수 없어 다시 걷는다.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 사이로 숲길은 이어진다. 길은 산속의 숲, 소나무 숲에 닿았다. 숲속 넓은 터에 구불거리며 자란 소나무가 빼곡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소나무들이 부정형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그 숲을 서성였다. 작은 석인상 하나가 무슨 이야기를 전할 듯 소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봉수대 공원에 있는 ‘먹골배 시조목(청실배나무)’

소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서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는 너럭바위를 만났다. 숲 밖 세상이 빼꼼 보인다. 잠시 쉬었다 간다. 너럭바위를 지나면 길은 다시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중랑구청 방향과 봉화산 정상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봉화산 정상 쪽으로 걷는다.(봉화산 둘레길은 계속 이어져 출발했던 곳까지 갈 수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기존의 길과 새로 놓인 데크길이 있다. 앞으로 보행 약자도 정상까지 갈 수 있게 데크로 길을 계속 놓고 있다. 지금까지 놓인 데크 길로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아이들이 그 길을 뛰어가다가 돌아보고 엄마를 부르며 다시 뛰어온다. 아이들이 신났다. 옛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계단이다. 꼭대기를 앞두고 마지막 계단 길에 올라선다.

꼭대기는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그 터에 봉수대를 재현했다. 봉화산 도당굿과 연관된 건물도 있다. 봉화산 도당굿은 무형문화재다. 400여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주던 ‘마을굿’이자 대동제였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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