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권익 돌보는 캄보디아 난민

속치베네앗 타잉 촌 퀘벡원주민협동조합연합회 사무총장

등록 : 2021-12-09 16:07 수정 : 2021-12-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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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나부트 사람들을 돕고 있지 않다면, 그건 내가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총회를 기회로 처음 한국에 온 캐나다 퀘벡원주민협동조합연합회(FCNQ) 사무총장 속치베네앗 타잉 촌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1년에 절반 이상을 북극 누나부트 지역에 출장을 다니며 힘겹게 일해야 하지만 누구보다 이 일에 헌신하고 있다.

촌 자신은 한국 땅을 처음 밟았지만, 사실 그의 외조부는 1973년 당시 한국에 영사로 와 있다가 캐나다로 망명을 신청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외조부와 함께 살던 막내 삼촌은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검은 띠를 따기도 했다고 하니 그가 한국에 온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8년 전 필자가 퀘벡 협동조합운동 연구를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흔쾌히 수락한 이유가 바로 한국에서 온 연구자라는 소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FCNQ는 1970년대 이주민으로 퀘벡 사회에서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의 가족을 보듬어준 고마운 존재다. 촌의 집안은 캄보디아의 엘리트 출신이었으나 폴 포트의 쿠데타 직후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와 중앙은행에 근무하던 이모부가 처형당하는 끔찍한 박해를 당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베트남을 통해 겨우 캐나다에 당도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피부색도 언어도 전혀 다른 사회에 떨어져 청소년 시절 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 다닐 정도로 방황하던 촌은 우연히 그의 부모가 일하게 된 FCNQ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탓시쿳(Atautsikut)! 북미 원주민어로 ‘다 함께’라는 뜻이다. 캐나다 퀘벡 북쪽 이누이트 공동체에는 “그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고 함께 가는” 전통이 있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는 빙하 지역에서 뒤에 오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발자국을 챙기며 함께 가는 것은 생존 전략이었다. 1967년 설립된 FCNQ도 바로 이런 아탓시쿳 철학을 조직의 모토로 삼고 있다. 갈 곳 없던 아시아계 이주민 가족에게 처음 손길을 내밀었던 원주민협동조합을 이제 촌이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운명 같은 우연이 아닐 수 없다.

FCNQ는 누나부트 지역 이누이트 마을들을 기반으로 한 14개 협동조합 연합체다. 1959년 당시 이 지역 유일한 상업 기관이던 허드슨베이 회사의 폭리에 대항하여 처음으로 밀가루와 설탕을 팔던 소매협동조합이 그 시작이었다. 현재 약 1만5천 명의 조합원과 14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최근 5년간 7600만달러를 14개 회원 조합에 배당할 만큼 성장했다.

FCNQ는 누나부트 지역에서 정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최대 고용주로서, 지난 50여 년 동안 이 지역 선주민인 이누이트와 크리족을 고용하면서 경제사회공동체를 만들어왔다. 종사하는 사업은 생활용품 소매, 호텔, 석유와 가스 판매, 케이블 티브이(TV), 식당, 배달, 편의점, 우편 서비스, 부동산, 은행, 여행업 등을 망라하고 있다. 회원사 협동조합들은 이누이트 수공예품 판매와 건설업 등을 통해 원주민 생활의 대부분을 커버하고 있다.


FCNQ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누이트와 크리족의 혈통을 중시해 원주민들로 이사진을 꾸려 그들 공동체의 생활과 문화 전통이 보전되도록 힘쓰고 있다. 북극 원주민 거주지에도 여지없이 코로나19 시대가 닥쳤지만, FCNQ는 2020년도에 즉각 배당금으로 1800만달러를 개별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사회에 배분했다.

지난해에 캐나다 세인트메리대학의 협동조합경영 석사과정을 수료한 촌은 FCNQ의 비전과 미래 목표를 위해 현대적인 금융기법을 적용해 재정비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누나부트 지역에서는 건설업과 원유채굴 사업권이 가장 수익성 있는 사업이다. FCNQ는 퀘벡 정부와 협약해 이 지역의 자원 개발에 동의하되, 원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고 또 그 이익을 원주민 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하는 주체이다. 촌은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책임 경영하는 채굴업체에 사업권을 주고 관리 감독한다.”

글·사진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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