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만한 전시&공연

뱀과 여성, 교감과 소통으로 서로 ‘억압의 허물’ 벗겨주다

탈피(~13일)

등록 : 2022-02-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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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으로부터 낙인찍혀 궁지에 몰린 인간과 뱀을 낱낱이 공개하는 연극 <탈피>(脫皮)가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살아 있는 생명이 전시된 동물원이 주 무대다. 4.6m 길이의 금빛 비단구렁이가 갇혀 있다. 여기에 폭력과 고통이 쌓이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온 매니저 소진도 처지는 비슷하다.

이 둘은 원치 않는 폭력을 깨달아가며, 그 공간에서 어떻게 궁지로 내몰리는지 보여준다. 성희롱, 무시, 압박 등 수많은 폭력에 노출된 여자는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다. 그것은 평생 유리로 둘러싸인 우리에 갇혀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부감의 대상이 돼온 뱀도 다르지 않다.

<탈피>는 제대로 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까지 각자가 느꼈던 억겁의 시간을 나열한다. 인간과 동물이 처한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내몰린 이들을 바라보며 인간과 동물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누군가에겐 용기를 주고, 누군가에겐 거북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소개하는 <탈피>는 20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부문에 선정됐다.

신효진 작가는 서로 다르지만 비슷하게 고통받는 두 존재가 서로를 알아보고 구해주는 이야기라며, 그들에게 씌워진 껍데기를 벗겨내는 마음으로 썼단다. 그동안 꾸준하게 페미니즘과 관련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온 극단와이(Y)의 작품이다. 사회 제도가 억압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과 문제의식으로, 연극을 통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사회규범과 젠더(성) 질서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연극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고통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서로를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던지고 있다. 진짜 이름을 잃어버린 것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들에게 씌워진 껍데기를 벗을 수 있다는 바람을 드러내면서.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시간: 화~목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 3시 관람료: 3만원 문의: 02-3668-0007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아이티(IT)팀장

사진 유경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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