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치구 문화재단 톺아보기

“지역민·청년 의견 수렴하며 문화 사업 ‘지속적 변화’ 추구”

서울 자치구 문화재단 톺아보기④ 현장 경험 바탕으로 예술과 행정 경계를 오가는 중구문화재단 이준희 사장

등록 : 2022-05-26 16:44 수정 : 2022-10-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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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충무아트센터로도 불리는 중구문화재단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준희 중구문화재단 사장. 예술인과 행정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 사장은 늘 ‘어떤 방식의 지원이 예술인에게 적합할까’를 고민한다.

한예종 졸업 뒤 공연 기획 등 현장 경험

각종 생활전선 뛰며 예술인 어려움 느껴

‘공론회’ 방식 등 통해 실질적 도움 추구

재단 방향성 이어가려고 사장직 도전

서울 자치구 중 최다 객석 대극장 보유

창작뮤지컬 지원해 예술생태계 구축

세대특성 고려, ‘생활모임’ 지원 다양화


‘을지아트페어’, 시민 컬렉터 모집 성과

충무아트센터로도 불리는 중구문화재단은 공연장으로 유명하다. 서울 자치구 문화재단 중 최다 객석 대극장(1250석)을 보유하며, 다양한 뮤지컬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연장을 넘어 지역문화의 장으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문화재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역 특성을 살린 축제, 을지페어 시리즈, 두 배 이상 늘어난 도서관, 약 1500명이 참여하는 150여 개의 가지각색 모임 등이 그 예이다. 지난 2월 취임한 이준희 사장은 그 이동의 중심에 있다.

‘2021 을지아트페어’에 전시된 작품.

중학생 시절 극단에 들어가 20대를 대학로에서 보낸 이 사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뒤 공연 기획, 제작, 연출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예술생태계 특성상 하나의 작업만 할 수 없었기에 강의, 커피·옷 판매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다른 예술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교류하며 ‘어떻게 하면 예술인의 생활이 더 안정적일 수 있을까’ ‘어떤 방식의 지원이 예술인에게 적합할까’ 등의 고민을 갖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문화재단에 발을 디디면서는 “서류 10장 미만으로 사업을 심사”하는 대신 “공론회 방식으로 예술인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지원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2021년 을지아트페어’에 참여한 시민들.

2019년 중구문화재단 본부장 직무를 맡은 뒤부터는 공연 중심을 넘어 지역 문화재단의 역할을 확장하려 힘을 다했다. 그 방향성을 이어가고자 새 사장직에 도전했다. 초석을 다져놓은 지역문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목표를 위해 이제는 행정 절차를 최소화, 시스템화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중구는 크게 도심지역과 생활지역으로 나뉜다. 오래된 소상공인 상점 거리에 특징적인 식당·카페가 들어선 도심 을지로는 ‘힙지로’(힙+을지로)라고도 불리며 엠제트(MZ)세대가 찾아들고 있다. 지역이 되살아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염려되지만 막을 수 없는 것에 힘쓰기보다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방안’을 모색한다. 이 역시 젊은 세대의 시각과 이슈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청년예술인 등과의 대화의 장을 활용할 것이다.

‘2021 을지리빙페어’ 모습.

지역민, 예술인, 청년 직원 등의 의견이 모여 시작한 도심지역 문화 사업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2019년에 시작한 ‘을지아트페어’는 젊고 유망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10만원 균일가로 선보였다. 신진작가의 시장 진출을 돕고 시민을 컬렉터로 모집·육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 2회차는 완판, 3회차에도 90% 이상 판매됐다. 뒤이어 2021년 출발한 ‘을지리빙페어’는 조명, 타일, 포장, 가구 등 중구 소상공인의 제품을 이케아 시스템처럼 ‘스타일링’ 방식으로 전시해 새로운 판로 개척을 도왔다. 올해는 일인가구의 원룸을 꾸민 ‘원룸페어’를 준비 중이다. 원룸페어에는 황학동 가전제품과 중고가구를 디자이너가 리사이클링해 활용하려 한다. 상인들을 설득하는 등의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런 과정에서 본질적인 의미의 시민 참여가 일어나리라 여겼다.

생활지역의 주민을 위해서는 도서관을 양적·질적으로 확대했다. 4년 전에는 ‘작은도서관’을 포함해 4개뿐이던 구립도서관이 3년 만에 9개로 늘어났다. 이 사장은 “도서관이야말로 주민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시설”이라며, 새로 생긴 도서관들의 매력을 소개했다. 다산성곽을 끼고 지어진 다산성곽도서관은 책장과 건물 내부는 곡선으로 이어진데다 실내외 공간이 통창으로 연결된 독특한 형태이다. 이런 독특한 구조 등 덕에 구민이 “집에 손님이 오면 데려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도서관 때문에라도 이사 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자랑거리다.

독립서점 스타일의 장충동작은도서관에는 청년 독서모임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 36개 독서모임에 최근 11개가 추가됐다. 앞으로는 책 읽기를 넘어 책 쓰기로 확대된 시민의 욕망을 따라 글쓰기, 출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자연친화적 도서관인 다산성곽도서관에서 2021년 진행된 선셋버스킹 모습.

도서관뿐 아니라 세대 특성과 수요에 따른 생활문화 모임을 다양하게 지원한다. 이 사장은 악기를 배우거나 하는 기성세대 동아리를 기능형으로, 산책·비건·애견·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취미를 반영한 모임을 욕망형으로 구분했다. 그는 벽에 가득한 포스터를 가리키며 “40~50대의 눈으로는 포스터 자체도 이해 안 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재단이 시대의 흐름을 뒤따르지 않고, 반박자 앞서나가려면 “끊임없이 프레임을 바꾸며 출발 지점을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중장기 계획보다는 단기 계획 중심으로 빠르게 옷을 바꿔 입고 새로운 영역을 찾는 중이다.

중구문화재단의 강점인 공연 분야 역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고 있다. 예술인·단체를 발굴하고 제작사와 소통창구를 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중심이 돼서는 예술 종사자,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생각에서 작은 규모일지라도 창작뮤지컬을 꾸준히 지원했다. 공연 시장에서 “대형 공연에만 투자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신진 창작자를 양성하고 우수 창작 작품 개발을 목표로 지난해까지 8회째 진행됐다. ‘창작뮤지컬어워드 NEXT’는 창작뮤지컬 발굴 프로그램으로 작품개발비와 공간, 시장 진출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한다. 더불어 그 무대가 해외로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중국·일본·영국 등의 지자체와의 연계를 모색 중이다. 제작과정에서부터 투자자나 해외 국장과 연결해 국내 뮤지컬이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한편 중구는 중구청과 충무아트센터가 서로 자리를 바꿀 계획이다. 문화예술 공간은 직장인이 모이는 도심지역(을지로 일대)으로, 구청은 구민 대다수가 거주하는 생활지역(신당역 일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이에 1500석 공연장을 포함한 새 문화예술 공간인 서울메이커스파크(SMP)가 내년 하반기 착공을 바라보고 있다. SMP는 인쇄종합타운과 공연장, 청년 공간과 주거 공간 등이 합쳐진 복합문화 공간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 사장은 재단이 현장과 시민에게 더 다가서며 ‘반민반관’의 기관이 되길 바랐다. “50%의 활동가, 50%의 행정가로서 경계를 오가는 전문성을 지니길 바랍니다. 최고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가지고서요.”

유진아 객원기자 jina6382@naver.com

사진 중구문화재단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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