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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키운 아이들, 마을을 키운다

6년 전 시작한 양천구 ‘모기동 마을학교’…동아리와 봉사활동 단체로 확산, 삶의 지혜 배워

등록 : 2016-08-04 13:14 수정 : 2016-08-0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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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저녁 양천구 목2동의 청소년 문화공간 ‘청청청’에서 영일고 댄스 팀 ‘에스티엠(STM)’이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 앞에서 ‘칼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양천구 목2동 주택가 골목에 있는 천주교 수도회 아델수녀원 지하 1층에는 청소년 문화공간 ‘청청청’이 있다. 지난달 16일 이곳에서는 ‘모기동(목2동의 별칭) 청소년 판(pan)’축제가 펼쳐졌다. 축제 마당으로 꾸며진 청청청 식당 무대에서는 등촌동 영일고 댄스 팀 ‘에스티엠(STM)’이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히트곡 ‘불타오르네’에 따라 거침없는 칼군무를 힘 있고 화끈하게 선보였다. 마을 주민과 아이들 80여 명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축제장은 떠나갈 듯했다.

이번 축제에 춤을 선보인 5개 댄스 팀은 영일고와 명덕여고 등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연초에 발표 계획을 세우고 축제 기획, 공연 준비, 홍보를 스스로 해냈다. 직접 팀 소개를 하면서 아이들은 응원을 부탁한다. 신입회원을 소개하며 재미있게 봐 달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모기동 마을학교 요리반 교실에서 정영석(17) 군이 감자크로켓을 튀기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서로 돕는 봉사활동으로 아이들도 성장

30도를 넘는 후텁지근한 날씨도 아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쏟아내는 열정을 어쩌지는 못했다. 명덕여고 댄스 동아리 단미 팀 리더 문환희(17) 양은 “뜨겁게 호응해 줘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이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청청청 대표를 맡고 있는 강로사 수녀는 “발표회 뒤 성취감을 맛보면서,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던 친구들도 자존감이 높아지고 한층 성장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며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치켜세웠다.

2010년 시작한 모기동 청소년 판축제는 올해로 6회째다. 지역 청소년들이 마을학교 안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축제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선보인다. 모기동 마을학교는 가르치는 방식의 교육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동아리나 봉사활동으로 마을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을 지향한다. 강 대표는 수녀원 지하가 지역의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되도록 발 벗고 나섰다.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뭘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댄스·드럼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을활동가와 의논해서 댄스실, 밴드실을 꾸몄다. 하고 싶은 것이 하나둘 생기면서 그냥 놀러만 오던 친구들이 요리반, 목공예반, 도자기공예반 등 대안 교실을 청청청 선생님들과 만들었다. 이제는 150~200명가량의 지역 청소년들이 늘 드나들 정도로 청청청 공간은 인기가 많다.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놀며 배우는 자리를 주니 아이들도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손을 보탰다. 댄스 동아리 팀들은 마을축제 공연뿐 아니라 초등생 동생들에게 춤을 가르쳐 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아동센터의 초등 남자 고학년들에게 든든한 형 노릇을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영일고에서 2012년부터 지역체험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이금천 교사는 “아이들에게 생활인으로서 필요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마을이 학교와 함께 아이들에게 삶의 기술과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 줘야 한다”며 “지역체험봉사단에 참가한 아이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훌쩍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학교에서 나눔 문화를 배운다


모기동 마을학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아이들이 참여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라고 강 대표는 말한다. 간사를 하고 있는 유다원 씨는 “모기동 마을학교 활동이 학교의 정규 과정, 방과 후 교실, 자유학기제 등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자연스레 나왔다”고 전했다. 변화를 모색하다가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의 마을과 학교 상생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다. 마을 주민·교사·활동가 등 21명이 참여해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더 많은 마을 아이들이 참여하고, 꾸준히 마을학교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모기동 마을학교는 학교와 마을, 각자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마을학교는 교육부 인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 학교 방과 후 교실, 창의체험활동에 함께한다. 마을은 아이들과 주민들이 모여서 즐겁게 놀 수 있는 마을 놀이터를 만든다. 무엇보다 마을학교의 뜻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마을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유 간사는 “모기동 마을학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과 지혜를 이웃과 나누는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게 마을학교라고 덧붙였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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