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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 우이그린빌라 지하의 버섯 재배시설에 모인 최재식 도시농업전문가(맨 왼쪽)와 어르신들. “다른 공동 주택들에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도시농업을 성공시키겠다”는게 이정민 경로당 회장(앞줄 오른쪽 세번째)의 포부다.
“뭔 소리여~. 일자리 그런 거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매일 만난다는 거예요. 단합이 잘되잖아.” 도봉구 해등로 337 우이그린빌라(이하 빌라)의 경로당에 모여 앉은 20여명의 어르신들은 장윤정(67) 할머니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양봉과 버섯농사를 시작한 뒤 빌라 경로당은 늘 어르신들로 붐빈다.
3층 높이 6개 동에 114세대로 이뤄진 빌라는 북한산 능선이 보이는 조망과 교육환경 등이 좋아 한때 고급주택 단지로 손꼽혔다. 1986년 준공 이후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은 낡았고, 입주민 3분의 1 이상이 고령자로 구성된 늙은 마을로 전락했다. 홀몸 어르신도 적지 않아 도봉구청에서도 늘 신경 쓰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4월 벌통 10개로 시작한 도시양봉으로 올린 매출은 300만원이 넘는다. “여기가 쌍문근린공원이에요. 밤나무와 아카시나무가 많아요.” 양봉 사업을 제안해 성사시킨 이정민(72) 우이그린빌라 경로당 회장이 2.4kg짜리 꿀을 90병 넘게 수확했다고 자랑한다. 꿀은 인근 주민들에게 모두 판매됐다.
빌라에는 유사시 대피소로 쓸 수 있는 지하공간을 갖추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임대를 걱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관리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하공간에서도 녹각영지버섯이 자라고 있다. 9월이면 또 한번의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로 어르신들은 시간만 되면 삼삼오오 경로당에 모여 영지버섯을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벌통을 돌보는 어르신들. 양봉으로 올해 3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빌라의 이러한 변화는 지난 1월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주민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정민 회장은 도시농업을 제안했고 이 구청장은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회장과 빌라 어르신들은 구청의 지원만 기다리지 않았다. 45명의 등록회원이 쌈짓돈을 털어 365만원을 모았다. 이 회장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정덕진 당회원(60)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봉전문가였던 정씨는 자신의 비법을 할아버지들에게 전했다. “날씨만 더 도와줬더라면….” 몇몇 할아버지가 계속되는 가뭄으로 꿀 수확량이 기대에 못 미친 데 아쉬워했지만, 빌라 어르신들이 거둔 수확은 첫 도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공적이다.
도봉구는 버섯 재배를 위해 서울시로부터 2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최재식(57) 도시농업전문가를 초청했다. 최씨는 빌라 어르신들에게 버섯 재배 방법을 전수했다. 키우기 쉽고 판로 확보에 용이한 녹각영지버섯으로 재배 품목을 정했다. 빌라 지하공간 2곳에 습도·온도 자동 조절 시스템을 갖췄다. “어르신들이 단체여행 등으로 자리를 비우더라도 안정적으로 버섯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였죠. 녹각영지버섯은 사슴뿔을 닮아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어 판로 확보도 쉬운 편입니다.”
어르신들은 조를 짜 버섯을 돌봤다. 1차로 도입한 버섯 종균을 배양한 ‘배지’ 1100포트는 무사히 성장했다. 버섯은 이번 달 말부터 1포트당 1만원 안팎에 판매될 예정이다. 도봉구와 인근 시민사회단체들도 마을축제나 플리마켓(벼룩시장) 등을 통해 버섯 판매를 돕는다. 빌라 어르신들은 9월에 노루궁뎅이버섯, 느타리버섯으로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활용 가치 없던 지하공간에 버섯 재배시설을 만들어 도시농업을 하게 돼 기쁘다”며 “시설을 잘 운영해 다른 공동주택들에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양봉과 버섯재배 사업은 수익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양봉과 버섯재배 사업은 수익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