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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예술영재교육, 가난에 묻힐 뻔한 ‘될성부른 싹’ 키우다

음악영재교육 거쳐 서울대 입학한 이재영·박진우씨 “대학 입시는 물론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

등록 : 2022-08-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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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08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예술영재교육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5년째 영재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시가 건국대에 위탁 운영 중인 음악영재교육원을 수료한 이재영(왼쪽)씨와 박진우씨가 자신들의 교육 경험을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이씨는 2014년 서울대 음대를 수석 입학했고, 첼리스트인 박씨는 2022년에 서울대 음대를 역대 최연소로 입학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시, 2008년부터 중위소득 미만 가정 예술영재에게 기회

지금까지 2300명 교육, 392명 수상

2016년부터 장애청소년 교육 지원도

올해는 취약계층 ‘여름예술캠프’ 진행



2014년 서울대 음대 수석 입학을 한 피아니스트 이재영(28)씨와 2022년 서울대 음대에 역대 최연소로 입학한 첼리스트 박진우(16)씨.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이들을 이어주는 강한 끈이 있다. 바로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을 다녔다는 점이다.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은 서울시로부터 ‘음악영재 교육’을 위탁받아 진행하는 곳이다.

사실 예술적 재능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공평하게 아이들에게 찾아온다. 다만, 높은 사교육비 등 사회의 교육 시스템 탓에 그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혹시 앞으로 만날지도 모를 미래의 쇼팽이, 21세기의 고흐가 악기를 놓고 붓을 접게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 개인의 아픔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

서울시가 이런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술영재교육’이다. 서울시는 2008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예술영재교육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서울시는 이 예술영재교육을 건국대·숙명여대·한양대에 위탁해 진행하고 있다. 세학교는 해마다 예술영재를 선발해 4월 말~5월 초에 입학식을 한 뒤 8개월 동안 체계적인 교육을 한다.

대상은 기준 중위소득 미만 가정의 학생이다. 기준 중위소득이란 모든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일렬로 세웠을 때 정확히 한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가리킨다. 세 학교는 대상 학생 중 서류전형, 전공분야 적성검사, 실기평가, 심층 면접을 거쳐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은 학생들을 선발한다.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에서는 기악뿐만 아니라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영재를 지원한다. 사진은 가야금을 전공하는 음악영재에게 일대일 수업을 하는 모습. 서울시 제공

세 학교는 맡은 교육 분야 등에서 차이가 있다.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musicnedu.konkuk.ac.kr)은 음악분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지원하고, 한양대 미술영재교육원(head-lab.org/headlab-1/main)은 미술영재를 선발해 교육한다. 두 학교 모두 매년 100명의 학생을 선발해 지원한다. 또 숙명여대 음악영재교육원(smsmc.sookmyung.ac.kr/22)은 해마다 초등학교 1~6학년 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을 한다.

이재영씨와 박진우씨는 이 가운데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을 다닌 경험이 “대학 입시는 물론 음악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피아니스트 이씨는 중학교 2·3학년 때인 2009~2010년에 영재교육원에 다녔고, 첼리스트 박씨는 초등학교 4·5·6학년 때인 2017~2019년 영재교육원에서 음악교육을 받았다.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을 수료한 박진우씨(왼쪽)와 이재영씨. 10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 모두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을 다녔다는 끈끈한 인연이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이후 이씨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뒤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현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대’를 마치고 전문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역대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박씨는 현재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재교육원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부모님의 권유 덕이다. 박진우씨의 아버지 박치혁(46)씨는 애초 서울시 광진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아버지 박씨는 3남1녀를 키우는데, 네 자녀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딸은 바이올린을, 둘째 아들은 비올라를, 그리고 셋째인 박진우씨는 첼로를 익혔고, 막내는 피아노를 잘쳤다. 아버지 박씨는 아이들의 음악교육에 도움을 주기 위해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서초구에서 기숙 음악 연습실을 운영할 정도로 자녀들의 음악 교육 뒷바라지에 열심이었다.

박씨가 운영하는 음악 연습실은 박씨 가족의 생계 터전이자 가족의 주거공간인 동시에 아이들의 연습실인 셈이다.

자녀들의 음악교육을 위해 직업까지 바꾼 박씨지만, 고액의 음악 레슨비 등은 항상 부담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에서 원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박씨는 “사실 건국대 영재교육원에 보내기 전에 진우를 다른 영재교육원에 보냈는데, 그곳에서는 방학 중에 진행하는 레슨의 경우 레슨비를 받고, 캠프 등에 갈 때도 돈을 내야 했다”며 “이에 반해 건국대는 정말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도록 운영했다”고 말한다. 이재영씨의 경우도 “신문을 통해 영재교육원생 모집 소식을 접한 아버지의 권유로”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과 인연을 맺었다.

음악영재교육원에 들어온 연도는 달랐지만 교육원의 체계적인 교육은 두 사람을 모두 더 넓고 높은 음악세계로 이끌었다.

이재영씨는 6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09년 음악영재교육원에 들어갈 때까지 “음악 필드를 몰랐다”고 한다. 주로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예술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영재교육원에서 김재미 건국대 음대 교수와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일대일 레슨 등을 하면서 점점 음악세계를 보는 눈에 달라졌다. 이씨는 “음악교육에서 중요한 게 ‘어떤 선생님에게 배웠느냐’인데, 도제식 교육으로 좋은 교수님과 레슨을 하면서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박씨의 경우 1년에 4~6차례 진행되는 ‘마스터클래스’ 교육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마스터클래스는 국내외 정상급 연주자를 초빙해 연주도 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도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박씨는 “영재교육원 시절 마스터클래스에 초빙돼 오신 수렌 바그라투니 미국 미시간대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바그라투니 교수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다. 박씨는 “그 인연으로 바그라투니 교수가 내한할 때 지도를 받게 됐는데, 지난 7월 내한공연 때도 지도받았다”고 말했다.

음악영재교육원은 이렇게 최고 전문가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해주는 데 머물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음악을 가까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여러교육 과정이다.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은 매주 토요일 ‘융합예술교육’ ‘합창, 기악앙상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융합예술교육’은 음악무언극, 춤과 음악, 음악코딩 등을 통해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또 ‘합창, 기악앙상블’은 여러 명이 같이 참여해 화음을 맞추는 과정에서 음악적 효과와 협동심을 길러준다.

이씨는 “당시 일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그렇게 협동심 등을 기르는 경험을 처음 했다”고 말했고, 박씨도 “항상 주말마다 음악회가 열린 덕에 제가 연주할 기회를 갖는 것도 좋았지만, 다른 학생들의 연주를 보는 것도 좋았다”고 되돌아봤다.

두 사람은 모두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의 교육이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씨의 경우는 특히 예술중학교 1학년 1학기 때 자퇴하고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음대에 빠르게 입학했는데, “이 기간에도 건국대 음악영재교육원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말한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지난 15년 동안 서울시의 예술영재교육 프로그램을 거쳐간 사람은 모두 23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37명은 이씨와 박씨처럼 음대나 미대로, 혹은 예술중학교나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또 392명은 국내 각종 콩쿠르와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런데 서울시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또 있다. 바로 영재교육에 머물지 않고 햇수를 거듭할수록 다양해지고 풍성해진다는 점이다. 그 변화는 ‘약자나 취약계층과 동행’이라는 방향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난한 예술영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취약계층에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프로그램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미술+디자인 교육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발달장애청소년 대상 교육 현장. 서울시 제공

대표적인 것이 한양대 ‘미술+디자인 교육센터’에서 시행하는 발달장애청소년(만 9~24살) 대상 교육이다. 2016년 처음 시행된 이 프로그램의 경우 올해 60명을 선발해 지난 4월부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미술 이론과 실기교육, 체험활동, 작품전시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8월 8~11일 숙명여대에서 진행된 ‘2022 서울시 아동·청소년 여름방학 문화예술캠프. 서울시 제공

또한 지난 8월8~11일에 숙명여대에서 진행된 ‘2022 서울시 아동·청소년 여름방학 문화예술캠프’도 취약계층 예술교육 확대를 위한 서울시의 의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처음 실시된 이 프로그램에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사회취약계층(저소득층·장애·한부모·다문화 가정)의 아동·청소년(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3학년) 53명이 참여했다.

캠프 참석자들은 컴퓨터와 미디어 음악, 디자인 싱킹 프로젝트, 전통무용과 외고무연주, 우리들의 이야기 뮤지컬이 되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의 여러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 외부 전문 연주가 초청을 통한 한여름날의 음악회, 빛의 시어터 전시회 관람 등 수준 높은 예술 공연과 전시 체험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갖고 예술에 대한 아름다움을 경험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오는 12월 마지막 주에도 ‘겨울방학 캠프’를 1회 더 진행할 예정이다.

주용태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서울시는 예술영재교육 지원 사업과 장애청소년 미술교육 지원 사업, 서울시 아동·청소년 방학문화예술캠프 등을 더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취지에 맞게 사회취약계층 대상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더 넓혀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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