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울, 시민 문화권을 선언하다

등록 : 2016-12-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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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문화의 주인이자 권리의 주체이다.” 지난 20일에 제정한 서울시민문화권 선언(이하 문화권 선언) 전문의 첫 문장이다. 문화가 검열 대상이 되고, 사악한 비선 실세의 먹잇감이 되는 요즘 상황에서는 아주 절실하게 다가온다. 특히나 두 번의 보수정권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 시위, 의사 결정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현실은 문화 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문화권 선언은 서울시와 민간 문화정책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논의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는 문화예술 정책의 세 가지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계획을 세웠다.

첫째는 ‘비전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로, 문화도시 서울로 가는 장기 비전을 개인, 공동체, 지역, 도시, 행정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담고 있다. 문화가 시민의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고려한 계획이다.

두 번째는 지난 8월에 발표한 ‘서울예술인 희망 플랜’이다. 예술인들이 서울에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이 플랜에서는 예술인 공공임대주택 1000호 설립, 예술가 일자리 창출, 청년 예술가 최초 지원 시스템 등 구체적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문화권 선언은 시민들이 문화의 주인이자 권리의 주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문화도시 비전’과 ‘예술가 희망 플랜’을 연결하는 서울의 문화예술 정책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전문과 총 17조로 구성된 문화권 선언은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문화 권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2014 세계 주요 도시 삶의 질 평가’에 따르면, 223개 도시 중 서울은 국제경쟁력에서는 6위지만, 삶의 질에선 74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서울시민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문화권 선언의 전문은 “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와 함께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영역으로,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때문에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문화적 권리가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화적 권리는 서울시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본권으로서, 서울시와 시민은 “계층이나 연령, 지역, 성차, 인종, 종교, 국적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문화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문화권 선언은 시민의 문화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문화향수권, 문화접근권, 문화교육권, 문화표현권을 중시한다. 시민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문화 창작물을 향유할 권리, 그 창작물을 향유하는 데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음악·무용·연극·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을 받을 권리,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문화권 선언은 강조한다. 문화권 선언은 이 밖에 서울시민이 쾌적한 문화 경관을 누릴 수 있는 권리, 역사문화, 창조적 문화자원을 만들고 보존할 수 있는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다양한 문화공동체를 만들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문화권 선언은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권리만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들이 스스로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문화 권리는 시민들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화권 선언은 서울시와 시민들 사이의 문화적 협치를 강조하고, 문화권 선언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필요한 문화정책의 계획 수립과 활동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민 문화권 선언은 2002년 바르셀로나의 ‘도시의 문화적 권리와 의무에 관한 헌장’ 다음으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만들어진 문화권 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선언이 그냥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시민의 목소리로 지속해서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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