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들여 꿈을 빚던 마을로 간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서울 속 백제 흔적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등록 : 2017-01-19 15:10 수정 : 2017-01-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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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산책길
지난해 봄. 마음에 문득 바람이 불었다. 훌쩍 서울을 떠나 뉴욕에 짐을 풀었다. 어느 날은 카페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데, 맞은편의 곱슬머리 남자가 합석해도 되냐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역사작가’라고 했다. 뉴욕 토박이로 동아시아학을 공부했고, ‘백제 도공과 일본 왕녀’의 사랑 이야기를 데뷔작 삼고자 2년째 집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한국은 조금 달라졌을 거예요. 더 섬세하고, 철학적이고, 낭만과 모험을 추구하며 살았겠죠.” 그의 이름은 마크. 마크가 사랑한 백제의 흔적을 한겨울에 찾아보자.

한성백제박물관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별의별 인종이 모이는 도시라지만, ‘근초고왕’에 빠진 뉴요커는 몹시 특별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돼 기원후 660년까지 약 700년 동안 존속했다. 중국의 문화를 수용해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이를 다시 신라, 가야, 일본(왜) 등에 전파해 동아시아 고대 왕국의 문화예술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일본 국보 1호 ‘광륭사 목조미륵보살 반가상’이 백제의 유물이자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 반가상’과 똑 닮았음을,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사라져가는 백제의 흔적을 보존하고자 발굴에 열을 올렸다. 문화 전성기였던 후기 백제(475~660년) 시대의 수도 등 8개 백제 유적지를 묶어 유네스코의 문을 두드렸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7월에 열린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그 규모와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으로 확정되었다.


몽촌토성의 복원된 목책
백제의 첫 번째 도읍,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송파구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백제의 첫 도읍 터이자 중요한 역사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는 고대 기록과 유물을 바탕으로 한성백제의 도읍이 남북 2개의 성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혔는데, 북성은 지금의 풍납토성, 남성은 몽촌토성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은 한강에 접한 배 모양의 평지에 흙으로 쌓은 둘레 3.7㎞의 성이고, 몽촌토성(사적 제297호)은 남한산 끝자락 능선을 메워 쌓은 둘레 2.7㎞의 마름모꼴 성이다. 왕성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지난해 11월 몽촌토성 북문지 안쪽에서 풍납토성 방향으로 폭 18.6m의 대형 포장도로까지 발견되며 이곳이 백제의 왕성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도읍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약 493년간의 긴 세월이다. 백제의 최고 전성기를 포함해 백제사의 73%나 차지하는 공간은 지금의 송파구를 중심으로 강동구까지 분포한다.

한성백제 왕도길
백제인의 생애사를 따라 걷는 답사 기행

한성(서울)에 살던 백제인들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안팎에 모여 살다가 죽으면 구릉 넘어 지금의 석촌동 고분군에 묻혔다. 백제인들이 말을 타고 달린 길은 21세기 들어서 운치 있는 산책길로 정비됐다. 날씨 청명한 날 강동구청역 5번 출구로 나와 ‘풍납동 백제문화공원’에서 걷기 시작해 올림픽공원 방면에 있는 ‘몽촌토성’까지 갔다가,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식사를 하고 ‘석촌동 고분군’에서 여유롭게 마무리하는 데 한나절 정도가 걸렸다.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산책로와 어우러져 사계절 언제든 걷기 좋다. 둔덕을 오르면 시간이 만든 정취가 고즈넉이 밀려온다. 물을 끌어들여 만든 ‘해자’와 나무를 정렬한 ‘목책’은 왕성을 방어했던 흔적이다. 이제는 공원의 일부가 되어 약 2000년 전 땅의 주인들과 만나게 해준다. 찬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백제인들의 웃음이 겹쳐 보이는 것도 같다.

현재 송파구에서는 풍납시장까지 둘러보는 ‘한성백제 왕도길’을 주말여행 코스로 안내하고 있다. 송파구 누리집(culture.songpa.go.kr)에서 답사지도를 나눠준다. 겨울(동절기)에는 풍납 자전거대여소(풍납동 309-6)에서 저녁 6시까지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다.(문의: 02-421-0970)

한성백제박물관 내부 전시관
살아 있는 역사 ‘한성백제박물관’·‘몽촌역사관’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에서 발굴한 유적과 유물은 한성백제박물관에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2012년 개관한 박물관은 몽촌토성과 어울리며 자리를 잡아, 산책길 같은 외벽을 따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 점이 특징이다. 4D영상관에서는 백제 관련 애니메이션을 매 시각 상영해 아이들이 좋아한다. 식당과 카페를 갖춰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도 좋다. (월 휴관, 문의 02-2152-5800)

근방의 몽촌역사관은 미취학 아동을 비롯한 어린 자녀들의 체험교육에 집중한다. 아이들은 책에서만 보던 백제인들의 의식주를 직접 경험해보게 된다.(매일, 문의 02-424-5138)

박물관 답사까지 마치면 ‘풍납’과 ‘몽촌’이란 지명도 애틋해진다. 한자어 그대로 풀면 ‘바람을 들이다’, ‘꿈의 마을’이란 의미로, 왠지 백제 사회의 문화 개방성과 해상 강국으로서의 여유를 가득 품은 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백제는 풍화되어 시간 속으로 사라졌지만,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거닐면 꿈 가득했던 왕국의 이야기가 바람 한줄기에 실려오는 것만 같다.

몽촌토성 답사 도움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재) 백제세계유산센터와 함께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를 마련했다.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에 흩어져 있는 백제 웅진·사비기의 대표적인 8개 유적을 도성, 사찰, 능묘로 구분하고 관련 문화재 350건 1700여 점을 소개한다. 30일까지.

■온라인 자료관 ‘백제역사유적지구 디지털 아카이브’

‘백제역사유적지구 디지털 아카이브’(archive.baekje-heritage.or.kr)에 접속하면, 24시간 백제관련 논문과 서적, 자료 등을 받아볼 수 있으니 답사를 떠나기 전에 미리 살펴본다.

글·사진 전현주 서울앤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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