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입주자대표자회의 ‘전횡’에 제동 건 세 주역

올림픽아파트 무인경비 시스템 추진·경비원 전원 해고 막은 주민과 경비원, 송파구청

등록 : 2017-04-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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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아파트에서 최낙연 송파구 공동주택관리팀장(사진 왼쪽부터), 구자복 경비조장, 주민 이준근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상근부회장이 손을 맞잡고 활짝 웃고 있다. 송파구 제공
‘주민과 경비원, 그리고 구청 3박자가 만들어낸 아파트 관리의 새 전환점.’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가 내린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 철회 결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결정은 입대의가 지난 2월10일 내렸던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 결정과 이에 따른 경비원 전원 해고 결정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들과 283명에 이르는 경비원들 그리고 송파구청이 힘을 모아 뒤집은 것이다.

이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결정되던 현재의 아파트 관리 시스템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번 결정의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서울&>이 주민인 이준근(68)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상근부회장과 이 아파트의 구자복(63) 경비조장 그리고 최낙연(54) 송파구 공동주택관리팀장을 지난 24일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이 짚은 변화의 핵심은 ‘당사자 간 소통의 강화’다.

구 경비조장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지난 2월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을 때,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결정으로 경비원 전원이 직장을 잃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동안 경비원들이 주민들에게 제공했던 서비스가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 경비조장은 “자영업을 하다 많은 고민 끝에 2015년 9월부터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뒤 1분 1초도 아껴가며 주민들을 위해 애썼다. 2016년 3월에는 근무하던 동에 불이 났는데, 초기에 진압해 큰 피해를 막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경비원들은 2월26일 경비원 전체가 어깨띠를 두르고 나서서 주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런 호소에 귀 기울인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올림픽아파트에 산 이 부회장은 “무인경비 시스템이 경비원들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택배를 받아주는 간단한 일뿐 아니라 눈비 올 때 노인과 장애인을 돌봐주고,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지낼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그런데 입대의에서는 입주자들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은 채 이런 삶의 질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결정해버렸다”고 비판했다. 관심을 가진 주민들이 곧 구청에 사건 해결을 위한 문의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송파구청도 수백통의 문의전화에 친절하게 답하면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최 팀장은 “때마침 박춘희 구청장이 2017년 핵심 사업의 하나로 ‘이웃 간 소통’의 문제를 강조해 아파트단지 내 소통 문제에 대한 공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송파구청은 이에 3월8일 올림픽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주민들의 정확한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주민설명회를 열 것을 촉구하는 협조공문을 보냈다. 구청은 더 나아가 3월10일에는 송파구 내 모든 아파트단지에 ‘입주자대표회의와 주민 간 원활한 소통 방안’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내 “앞으로 입대의 회의 때 주민 방청을 필히 안내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소통에 대한 이런 노력 덕에 입주민들이 자체적인 모임을 조직하게 됐다”고 한다. 주민들은 3월12일 45명이 참가한 첫 모임을 가진 데 이어, 같은 달 17일에는 20여명이 모여 도입 반대 집회를 열었다. 26일에는 일요일인데도 오륜초등학교 집회에 1200여명이 모였다. 주민들은 또 커뮤니티 앱인 ‘밴드’에 모임을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계속 이어갔다. 결국 입대의의 무인경비 시스템 백지화 결정은 이런 여러 가지 소통 요구에 대한 대답이었던 셈이다.


경비원들의 자구 노력, 소통을 강조하는 구청의 중재 노력, 그리고 주민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 참여가 ‘소통 중심의 새로운 아파트 관리 시스템’을 요구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백지화 이후에도 주민들의 온라인 활동은 여전히 지속 중이다. 이제 청춘 남녀에겐 교재의 장으로, 중장년층에겐 막걸리모임 약속의 장으로 계속 소통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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