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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개청 30주년을 맞아 지난 22일 오후 시흥동 금나래아트홀에서는 조선 정조의 ‘백성 사랑’을 주제로 한 창작 뮤지컬 ‘만천명월(萬川明月)-격쟁을 허하라’가 주민들 앞에 첫선을 보였다. 늠내국악예술단 제공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지난해 1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강성희 진보당 의원) “알앤디(R&D) 예산 복원하십시오.”(지난해 2월 한국과학기술원 졸업식, 신민기 졸업생) 연이어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나간 대통령의 ‘입틀막’ 정치의 종착역은 ‘비상계엄’이었다. 나라는 어둠과 혼란 속에 빠진 채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때 ‘금천’에선 “대왕이시여, 민생의 소리를 들으소서. 천둥·번개 울림같이 민의를 들으소서”라며 한바탕 ‘격쟁’(擊錚)이 벌어졌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시흥동 금나래아트홀에서는 금천구(구청장 유성훈) 개청 30주년을 맞아 조선 정조의 ‘백성 사랑’을 주제로 한 창작 뮤지컬 ‘만천명월(萬川明月)-격쟁을 허하라’가 주민들 앞에 첫선을 보였다. ‘천’은 백성이요, ‘월’은 왕이다. 그러니 만천명월은 만백성을 비추는 왕의 사랑이다.
당시 백성이 왕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하는 제도는 상언과 격쟁이 있었다. ‘상언'은 백성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것으로 한문으로 작성해야 했기에 주로 양반이 이용했고, 글을 모르는 백성은 왕의 행차를 막고 꽹과리나 징을 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고하는 ‘격쟁’을 통해 억울함을 전했다.
“나는 세도세자의 아들이다. 아바마마를 화성 땅 현륭원에 모시고 문안을 갈 것이니, 원행을 선포하고 행행을 준비하라. 아울러 한양과 현륭원 중간에 있는 금천 땅에 시흥행궁을 만들고 시흥대로를 닦도록 하여라.”(‘만천명월’ 중) 정조는 회갑을 맞는 어머니(혜경궁 홍씨)를 처음으로 모시고 새벽같이 창덕궁을 나서 아버지가 잠든 수원 화성으로 향했다. 150리(약 59㎞) 능행차길은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기 위해 기존의 험난한 남태령길이 아닌 새 길을 열었는데 이 길이 ‘시흥로’다. 이 행차는 1795년(즉위 20년) 윤 2월9일부터 16일까지 왕복 8일간 진행됐다. 능행차 첫날과 마지막 밤은 시흥행궁에서 머물렀다.
2022년 4월 신축 이전해 문을 연 시흥5동 주민센터(금하로24길 6) 6층에는 시흥행궁전시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금천구의 역사와 지명 변천 과정, 환어행렬도와 기록자료, 시흥행궁 모형, 능행차 길, 시흥행궁 복원 노력 등을 볼 수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시흥행궁 터와 은행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는 정적의 살해 위협 속에 아버지의 기막힌 죽음을 가슴에 묻고 33년, 왕이 되고도 21년이 지나서야 수행원 6천여 명, 말 800여 필과 함께 창덕궁을 나선 후 시흥행궁에서의 첫날밤 정조는 어떤 생각으로 잠을 청했을까.
정조대왕은 능행차 중 3천여 건의 백성들의 민원을 직접 해결했다. ‘정조실록’ ‘일성록’은 격쟁이 빈번해지자 제도 폐지를 청한 신하들에게 정조가 한 말을 적고 있다.
“서얼도 노비도 인간이며 나는 미천한 마부에게라도 이놈 저놈 하지 않소. 모두들 나의 백성 나의 자손들이니,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의 흐름을 막는 것보다 더한 것이오. 그들이 마음껏 상언을 하고 마음껏 격쟁을 하도록 놔두시오.”(‘만천명월’ 중) 이날 공연 막바지 이르러 정조가 이 대사를 말하고 허리를 굽혀 격쟁에 나온 백성의 손을 잡자 객석 여기저기서 감동의 탄식과 훌쩍임이 들려왔고 공연을 마치자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송선원 늠내국악예술단장은 정조의 통치철학에 주목했다. “정조는 창덕궁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써 붙여 놓았다.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손자를 양자로 넣어 왕을 시켜야 했던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여러 차례 정적들에게 기습당하는 공포를 감당하고 마침내 왕이 되어 걸어둔 이 현판은 정조의 백성 사랑을 함축해 보여준다. 이 시대 정조의 ‘만천명월’ 철학은 ‘억천명월’(億川明月)로 바꿔, 우리가 전세계 수억 명의 백성을 사랑하는 문화, 경제, 군사를 아우르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 성장해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로 격쟁을 소재로 한 이번 공연이 주는 임팩트는 작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소통’이란 화두를 묵직하지만 유쾌하게 담아낸 대본, 전통민요와 창작 뮤지컬곡의 융합, 폭발하는 연기자들의 감정과 몸짓. 숨죽여 빠져들다가 눈물을 훔치고 다시 시원하게 웃고 박수를 보낸 85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작은 지역에서 초연 후 세계적인 명작 뮤지컬이 된 ‘위키드’(Wicked), ‘컴 프롬 어웨이’(Come From Away) 같은 작품이 금천에서도 나올 수 있을까. “금천구 토박이들 ‘시흥행궁 복원’ 목표로 의기투합” “최소 비용으로 어렵게 막 올려”
“3개월간 20여 차례 맹렬한 연습” 연출을 맡은 정호붕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는 “2012년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총연출을 했을 때 격쟁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고, 국악계 선배이고 격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송선원 단장의 제안으로 이번 작품에 참여했다. 특히 이번 계엄 정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천구 주민으로 은퇴 후 금천구의 역사·문화 연구와 확산에 앞장서온 송유근 ㈔문화유산환경정책연구소 회장은 “금천구에서 성장한 토박이들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공간들이 대부분 문화유산이었는데 당시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 아무렇지 않게 이용했고 도심 개발로 대부분이 소실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며 “이에 우리 지역 출신들이 뜻을 모아 정년퇴직 후 지역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사단법인을 설립해 국가유산청과 긴밀히 협의하며 시흥행궁 복원에 매진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런 의지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이 더 특별한 건 참여자들의 헌신으로 의기투합해 완성됐다는 점이다. 많은 인원과 시간, 장치 제작, 소품, 높은 수준의 연출과 연기가 필요한 뮤지컬 제작에는 큰 비용이 든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생각하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뜻을 모은 이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최소한의 비용과 제작진, 연기자들의 우정 출연, 특별 출연으로 어렵게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송선원 교수는 중앙대에서 친분을 쌓은 정호붕 교수, 오일영 작가, 김백천 작곡가, 김봉순 안무, 임하람 음악감독, 손우경 영상감독 등 활동을 함께 해온 출연자들로 팀을 구성하고 1년여간 대본과 작곡을 완성한 후 약 3개월간 20여 차례 연습했다. 또한 금천구에 있는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출신 예술가들도 적극 참여했다. 송유근 회장은 “정조대왕 능행차는 풍부한 역사 콘텐츠를 담은 최대 규모의 국가 재현행사이자 축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시흥행궁이 소실된 상태라 완전한 재현이 안 되고 있다. 시흥행궁 복원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며 “2022년 시흥행궁 전시관 개관에 이어 이번 공연을 통해 주민들이 소중한 지역 역사·문화유산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격쟁은 왕의 애민사상은 물론 한민족 백성 특유의 생명을 건 용기와 불굴의 저항정신이 우리에게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벅찬 감동과 함께 정조대왕의 마지막 어명이 귓가에 남았다. “시흥현감은 들어라. 짐이 회궁을 하는 길에 이토록 잘 보존된 금천 시흥행궁에서 많은 백성들의 고초를 듣고서 또한 많은 격쟁을 해결했으니,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도록 시흥행궁을 세세연년 잘 보존토록 하거라.” 이날 공연을 관람한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무대 인사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인 격쟁은 우리 금천구(옛시흥현)의 소중한 자산으로 금천구 문화 브랜드로 승화시켜 확대 발전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금천구민과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상시 공연을 추진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케이(K)-뮤지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얼도 노비도 인간이며 나는 미천한 마부에게라도 이놈 저놈 하지 않소. 모두들 나의 백성 나의 자손들이니,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의 흐름을 막는 것보다 더한 것이오. 그들이 마음껏 상언을 하고 마음껏 격쟁을 하도록 놔두시오.”(‘만천명월’ 중) 이날 공연 막바지 이르러 정조가 이 대사를 말하고 허리를 굽혀 격쟁에 나온 백성의 손을 잡자 객석 여기저기서 감동의 탄식과 훌쩍임이 들려왔고 공연을 마치자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송선원 늠내국악예술단장은 정조의 통치철학에 주목했다. “정조는 창덕궁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써 붙여 놓았다.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손자를 양자로 넣어 왕을 시켜야 했던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여러 차례 정적들에게 기습당하는 공포를 감당하고 마침내 왕이 되어 걸어둔 이 현판은 정조의 백성 사랑을 함축해 보여준다. 이 시대 정조의 ‘만천명월’ 철학은 ‘억천명월’(億川明月)로 바꿔, 우리가 전세계 수억 명의 백성을 사랑하는 문화, 경제, 군사를 아우르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 성장해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로 격쟁을 소재로 한 이번 공연이 주는 임팩트는 작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소통’이란 화두를 묵직하지만 유쾌하게 담아낸 대본, 전통민요와 창작 뮤지컬곡의 융합, 폭발하는 연기자들의 감정과 몸짓. 숨죽여 빠져들다가 눈물을 훔치고 다시 시원하게 웃고 박수를 보낸 85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작은 지역에서 초연 후 세계적인 명작 뮤지컬이 된 ‘위키드’(Wicked), ‘컴 프롬 어웨이’(Come From Away) 같은 작품이 금천에서도 나올 수 있을까. “금천구 토박이들 ‘시흥행궁 복원’ 목표로 의기투합” “최소 비용으로 어렵게 막 올려”
“3개월간 20여 차례 맹렬한 연습” 연출을 맡은 정호붕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는 “2012년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총연출을 했을 때 격쟁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고, 국악계 선배이고 격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송선원 단장의 제안으로 이번 작품에 참여했다. 특히 이번 계엄 정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천구 주민으로 은퇴 후 금천구의 역사·문화 연구와 확산에 앞장서온 송유근 ㈔문화유산환경정책연구소 회장은 “금천구에서 성장한 토박이들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공간들이 대부분 문화유산이었는데 당시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 아무렇지 않게 이용했고 도심 개발로 대부분이 소실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며 “이에 우리 지역 출신들이 뜻을 모아 정년퇴직 후 지역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사단법인을 설립해 국가유산청과 긴밀히 협의하며 시흥행궁 복원에 매진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런 의지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이 더 특별한 건 참여자들의 헌신으로 의기투합해 완성됐다는 점이다. 많은 인원과 시간, 장치 제작, 소품, 높은 수준의 연출과 연기가 필요한 뮤지컬 제작에는 큰 비용이 든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생각하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뜻을 모은 이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최소한의 비용과 제작진, 연기자들의 우정 출연, 특별 출연으로 어렵게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송선원 교수는 중앙대에서 친분을 쌓은 정호붕 교수, 오일영 작가, 김백천 작곡가, 김봉순 안무, 임하람 음악감독, 손우경 영상감독 등 활동을 함께 해온 출연자들로 팀을 구성하고 1년여간 대본과 작곡을 완성한 후 약 3개월간 20여 차례 연습했다. 또한 금천구에 있는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출신 예술가들도 적극 참여했다. 송유근 회장은 “정조대왕 능행차는 풍부한 역사 콘텐츠를 담은 최대 규모의 국가 재현행사이자 축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시흥행궁이 소실된 상태라 완전한 재현이 안 되고 있다. 시흥행궁 복원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며 “2022년 시흥행궁 전시관 개관에 이어 이번 공연을 통해 주민들이 소중한 지역 역사·문화유산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격쟁은 왕의 애민사상은 물론 한민족 백성 특유의 생명을 건 용기와 불굴의 저항정신이 우리에게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벅찬 감동과 함께 정조대왕의 마지막 어명이 귓가에 남았다. “시흥현감은 들어라. 짐이 회궁을 하는 길에 이토록 잘 보존된 금천 시흥행궁에서 많은 백성들의 고초를 듣고서 또한 많은 격쟁을 해결했으니,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도록 시흥행궁을 세세연년 잘 보존토록 하거라.” 이날 공연을 관람한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무대 인사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인 격쟁은 우리 금천구(옛시흥현)의 소중한 자산으로 금천구 문화 브랜드로 승화시켜 확대 발전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금천구민과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상시 공연을 추진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케이(K)-뮤지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